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018
한자 天主敎
영어공식명칭 Catholicism
이칭/별칭 가톨릭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김창근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톨릭교회.

[개설]

영주 천주교는 홍유한(洪有漢)[1736~1785]이 단산면 구구리에서 수계 생활을 홀로 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어 대한민국 천주교 성립보다 그 역사가 앞선다. 현재 옛 영주성당인 휴천동성당을 비롯하여 풍기성당, 하망동성당, 가흥동성당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주 천주교와 홍유한]

영주시 천주교의 시작은 홍유한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홍유한은 공식적으로 천주교 신자는 아니었다. 현 단산면 구구리에서 수계 생활을 홀로 시작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천주교 성립보다 그 역사가 앞선다. 홍유한은 그의 스승 성호 이익(李瀷)[1681~1763]과 함께 당시 서학이라고 알려진 서적 『천주실의(天主實義)』·『칠극』·『직방외기(職方外紀)』 등을 연구하였다. 홍유한은 특히 대화 형식으로 유교적 교양을 바탕으로 천주교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마테오 리치(Matteo Ricci)[1552~1610]의 『천주실의(天主實義)』와 예수회 신부 판토하(Pantoja, D)가 지은 가톨릭 교리서인 『칠극』을 더욱 연구하였다. 그리고 연구로 얻은 진리를 몸소 체험하며 수계 생활하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홍유한은 문중과 주위의 반대에 부딪혔다.

홍유한은 이익이 권하는 대로 자신의 친척들이 있는 충청도 예산으로 이사해서 천주교에 대하여 더 깊은 연구를 하였다. 이곳에서 18년간 수계 생활을 한 후, 1775년(영조 51) 지금 ‘홍유한 유적지’로 이사를 와 천주교 수계 생활을 지속하였다.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수계 생활이었다. 1779년(정조 3) 권철신, 이벽, 이승훈 등 한국 천주교회 창설자들이 대부분 참가한 ‘천진암 강학회’보다 빠르다. 홍유한은 영주에서 수계 생활에 전념하였다. 자세한 천주교인의 생활을 몰랐던 홍유한은 일주일마다 주일이 온다는 것을 알고 매달 7일, 14일, 21일, 28일이면 경건한 마음으로 성스럽게 보냈으며, 금육에 대하여도 잘 몰랐기 때문에 맛나고 좋은 음식은 먹지 않는 것으로 원칙으로 삼았다.

홍유한의 성품이 자기를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고,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주위 사람들에게 천주교 전교를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홍유한의 수계 생활은 영주 지역 천주교 출발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홍유한 이후 영주 천주교]

홍유한이 죽고 난 후 영주의 천주교는 한동안 움직임이 없었다. 병인박해 다음 해인 1867년(고종 4) 풍기 다리골에 살았던 신생원이 서울로 잡혀가 순교하였다. 이후 1934년 영주군 풍기읍 성내동[현 영주시 풍기읍 성내리]에는 권대영 베드로, 한상호 바오로, 배석우 그레고리오, 최병룡 루가, 길철기 안드레아 등이 주일 첨례를 보면서 풍기공소[지금의 풍기성당]를 지켰다고 한다. 1946년에 경상남도 거창에 살았던 권용덕 원선시오가 영주군 영주읍 하망5리에 위치한 자신의 집을 영주공소[지금의 휴천동성당]로 제공하면서, 영주의 천주교는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88년 8월 28일 영주본당을 분리해 하망동성당을 설립되었고, 2018년 1월 16일 영주시 가흥동 신도시에 가흥동성당이 설립되었다.

[현황]

영주 지역 가톨릭교회는 모두 천주교 안동교구 소속으로, 휴천동성당, 풍기성당, 하망동성당, 가흥동성당이 있다.

[참고문헌]
  • 『영주시사』 3(영주시사편찬위원회, 2010)
  • 천주교안동교구 두렛배미(http://www.acatholic.or.kr)
  • 한국천주교주교회의(http://www.cbck.or.kr)
  • 휴천동성당(http://cafe.daum.net/638-1781)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