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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379
한자 榮州浮石寺塑造如來坐像
영어공식명칭 Clay Seated Buddha of Buseoksa Temple, Yeongju
이칭/별칭 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여래상,부석사 소조여래좌상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48]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보수|복원 시기/일시 1376년 -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개금
보수|복원 시기/일시 1723년 -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개금
문화재 지정 일시 1962년 12월 20일연표보기 -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국보 제45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0년 -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을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으로 개칭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국보 재지정
현 소장처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48]지도보기
원소재지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48]
성격 불상
재질 점토
크기(높이) 높이 278㎝
소유자 부석사
관리자 부석사
문화재 지정 번호 국보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에 봉안된 고려 전기 불상.

[개설]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榮州浮石寺塑造如來坐像)영주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의 주존(主尊)으로 봉안되어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안에서 동남쪽을 향하여 결가부좌(結跏趺坐) 자세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수인(手印)을 취하고 있다.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의 높이는 278㎝, 무릎 폭은 206㎝, 광배 높이는 380㎝로 고려시대 유일의 소조불상(塑造佛像)이다.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는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45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주존으로 불단 위에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으며, 그 모습은 안정감과 엄숙함을 더해 준다. 수인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놓은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소조불상으로는 최대 규모인데 나발의 머리 위에는 큼직한 육계가 있으며 얼굴은 풍만하다. 정면을 주시하는 두 눈에는 위엄이 있고 두꺼운 입술에서 고려 불상의 특징이 엿보인다. 양쪽 귀는 긴 편이며 목에는 과장된 삼도(三道)가 보인다.

왼쪽 어깨와 팔을 덮은 우견편단(右肩偏袒)의 법의(法衣)는 전면에서 평판을 겹친 것 같이 평행선을 그리며 흘러내렸고, 두 무릎의 의문(衣紋)은 평행선으로 각각 밖을 향하여 흘러내리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강원도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到彼岸寺鐵造毗盧遮那佛坐像)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온화함이 사라진 근엄한 모습이나 형식화로 흐른 옷 주름 등은 고려 초기 불상 양식에서 점차 후기 양식으로 변모되어 가는 형태로 보인다.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뒤에는 당초문과 불꽃무늬가 조각된 목조 광배가 따로 조성되어 있는데, 원형의 두광과 신광 안에 각기 3구와 4구씩의 화불(化佛)을 부착시켰던 흔적이 남아 있다. 광배 안에 새겨진 치밀한 당초문이나 광배 밖으로 활활 타오르는 듯한 불꽃무늬는 불상의 위엄을 강조하는 동시에 정교한 고려시대 불교 미술의 한 단면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대좌는 전면 너비 237㎝, 측면 너비 200㎝, 높이 105㎝의 토석(土石)을 혼용한 것으로 수미단의 원형이 남아 있고, 상면(床面)의 주위에는 신라시대의 녹유전이 깔려 있다.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의 무릎 아래로는 후세에 첨가한 목조 불단이 가설되어 있어 밖에서는 볼 수 없다.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1916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해체 수리 당시에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1358년(공민왕 7) 적병에 의한 화재로 불상의 두부가 분리되어 1376년(우왕 2)에 원융국사(圓融國師)가 개금개조(改金改造)하였으며, 「무량수전불상개금문(無量壽殿佛像改金文)」 기록에는 1723년(경종 3)에 통정 정상주(鄭尙周)를 비롯한 74명의 정성으로 불상을 개금하기도 하였다.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조형을 충실히 계승하였지만, 도식적이고 상징적인 일면을 감출 수 없어 시대적인 양식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조성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 불상 조형을 충실히 계승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온몸에 금빛이 화려하며, 고려시대 불상으로서는 상당히 정교한 수법을 보이는 걸작이다.

[특징]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석가모니불의 특징인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구전에서는 두 손이 파손되는 등 손상을 입어 조선시대에 보수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원래 모습이 항마촉지인이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불상이 봉안된 전각의 명칭이 무량수전이고, 부석사 경내에 있는 부석사 원융국사비(圓融國師碑)[1054년]의 비문에 보처(補處)[주불의 좌우에 모신 보살]가 없는 아미타불을 조성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불상의 명칭은 아미타불로 추정된다.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45호로 지정되었는데, 지정 당시 명칭은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이었다가 2010년 6월 28일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의의와 평가]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의 전통을 이어 제작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불상으로서의 위엄이 잘 배어 있으며 정교한 제작 기법을 보이는 우수한 예에 속한다.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유일의 소조불상으로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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