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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489
한자 南澗書堂
영어공식명칭 Namgan Village School
이칭/별칭 사계서당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남간로 51-1[휴천동 16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백지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54년연표보기 - 사계서당 건립
이전 시기/일시 1685년 - 남간서당 영주시 조와동에서 영주시 휴천동으로 이건
이전 시기/일시 1731년 - 남간서당 이건
이전 시기/일시 1749년 - 남간서당 이건
이전 시기/일시 1779년 - 남간서당 이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39년 - 남간서당 중건
이전 시기/일시 1880년 - 남간서당 이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05년 - 남간서당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4년 - 남간서당 중건
현 소재지 남간서당 - 경상북도 영주시 남간로 51-1[휴천동 162]지도보기
원소재지 사계서당 - 경상북도 영주시 조와동 지도보기
성격 서당
양식 홑처마 맞배지붕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3칸
관리자 남간서당회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휴천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개설]

남간서당(南澗書堂)은 1654년(효종 5) 사계서당(泗溪書堂)으로 건립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이건이 이루어졌으며, 오랫동안 영주 지역 유림의 강학 및 교유 장소로 활용됐다.

[위치]

남간서당영주중학교 우측 도로변 높은 대지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뒤편에는 보광사가 있다. 예로부터 이곳을 남간재라 불렀는데, 남간서당이 위치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남간서당 앞에는 ‘남간서당중수기적비(南澗書堂重修紀蹟碑)’가 세워져 있다.

[변천]

남간서당은 1654년 지역 유림의 공의에 따라 사계서당으로 건립되었다. 처음 사계서당은 조선시대 영천군(榮川郡) 망궐리[지금 영주시 조와동]의 사마소(司馬所) 터에 세워졌었다. 하지만 세월이 오래되고 불편한 점이 생겨 1685년(숙종 11) 송시의(宋時議)가 김종미(金宗漢)·민약증(閱若曾) 등 여러 선비와 상의하여 본리 안 광승촌(廣升村)[지금 영주시 휴천동]에 터를 잡아 이건하였고, 1686년 배유장(裵幼章)이 이건기를 썼다. 이때 ‘남간서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서당 아래에 남간지(南澗池)라는 못에서 따온 것이다.

1731년(영조 7), 1749년(영조 25), 1779년(정조 3)에 잇달아 서당을 이건하였으며, 1839년(헌종 5)에는 서당을 다시 지었다. 1880년(고종 17)에 권중범(權重範)이 주도하여,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 1905년과 2004년에 중건이 이루어졌다.

[형태]

남간서당은 높은 대지 위에 일곽을 구성하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며, 평면구성은 중앙 3칸 중 오른쪽 2칸은 마루방이고, 왼쪽 1칸은 마루로 꾸며 놓았다. 마루 왼쪽에 2칸의 온돌방과 1칸의 부엌이 이어져 있고, 마루방 오른쪽은 온돌방 반 칸, 부엌 반 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루방 전변은 원래 3칸 마루로 안쪽 마당으로 개방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왼쪽 온돌방 전면의 부엌에 벽장과 상부 다락을 설치한 흔적이 남아 있다.

[현황]

현재 남간서당회에서 남간서당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간서당회는 남간서당과 관련된 조선 후기 선비들의 후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현재 20여 문중이 참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남간서당은 여러 차례 이건과 중수를 거치면서 원형이 크게 변질하여 건축학적인 가치는 떨어진다. 그러나 조선시대 영주 지역 사마소 옛터에 세워져 지역 유림의 공론에 따라 운영되었고, 또 여러 문헌에 남간서당과 관련된 사적들이 전해져 역사적 의의가 큰 서당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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