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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548
한자 神琳
영어공식명칭 Sinlim
이칭/별칭 신림(神林),부석적손(浮石嫡孫)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방용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학교|수학지 부석사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48]지도보기
활동지 부석사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48]지도보기
활동지 불국사 -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385[진현동 15-1]
활동지 세달사 - 강원도 영월군
성격 승려
성별

[정의]

통일신라시대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개설]

신림(神琳)[?~?]은 통일신라시대 승려로서 8세기 중엽 의상(義湘)[625~702] 계열 화엄학의 중추를 이루었다. 또 영주 지역의 고찰 부석사(浮石寺)에서 활동하며, 부석적손(浮石嫡孫)으로 평가받았다.

[활동 사항]

신림의 생몰 연도와 구체적인 활동 시기를 언급하고 있는 자료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다만 신림의 대표적 제자로 알려진 순응(順應)이 766년(혜공왕 2)에 당나라로 유학하였으므로, 그 이전인 8세기 중엽에 주로 활동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국 화엄종의 개조(開祖)인 의상의 직계제자 상원(相元)에게 수학하였고, 당나라에 유학하여 융순(融順)에게도 가르침을 받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김대성(金大城)[700~774]이 현세와 내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佛國寺)와 석불사(石佛寺)를 창건하고, 신림과 표훈(表訓)에게 요청하여 주석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지만, 불국사, 세달사(世達寺), 월유사(月瑜寺) 등에서 법회를 주관하였던 사실이 전한다. 법융(法融), 숭업(崇業), 융수(融秀), 질응(質應), 순응 등이 신림의 문하에서 화엄학을 계승하였다.

한편, 신림은 영주의 부석사에서도 법회를 열고, 천여 명의 대중에게 『화엄교분기(華嚴敎分記)』를 강의하였다. 이전까지 소규모였던 부석사가 완연한 사찰의 규모를 갖춘 것도 신림 때부터였다고 한다.

[사상과 저술]

신림의상 계열의 화엄학을 주도하였기에 세간에서는 신림을 ‘부석적손’으로 칭송하였다. 또, 부석사에서 법장(法藏)[643~712]이 저술한 『화엄교분기』를 강의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법장 계열의 화엄학도 계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훈과 추모]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쓴 「흥교사예신림조사영(興敎寺禮神林祖師影)」이라는 찬(讚)의 제목으로 보아, 고려 전기까지 신림의 진영(眞影)이 흥교사[본래는 세달사]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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