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549
한자 眞空
영어공식명칭 Jingong
이칭/별칭 진공대사(眞空大師),보법지탑(普法之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방용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855년 4월 18일연표보기 - 진공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874년 - 진공 구족계 수계
몰년 시기/일시 937년연표보기 - 진공 사망
추모 시기/일시 939년 8월 15일 - 진공 증시
출생지 진공 출생지 - 경상북도 경주시
학교|수학지 진공 수행처 -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100-2
활동지 진공 활동지 - 경상남도 김해시
활동지 진공 활동지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지도보기
성격 승려
성별

[정의]

통일신라시대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개설]

진공(眞空)[855~937]은 속성이 김씨(金氏)이다. 아버지는 김확종(金確宗), 어머니는 설씨(薛氏)로 경주 출신이다.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활동했던 승려이며, 고려 태조에게 설법하였다. 입적 후 진공대사(眞空大師)로 추증되었다.

[활동 사항]

진공은 874년(경문왕 14) 선융(善融)의 제자가 되어, 가야산 수도원(修道院)에서 구족계를 받고, 삼장(三藏)을 공부하였다. 이후 선법(禪法)을 찾아 여러 곳을 탐방하다가, 설악산 진전사(陳田寺)에서 인연을 만나 도의선사(道義禪師)의 영탑(靈塔)에 제자가 되는 예를 올리고, 혼자 수도생활을 하였다.

진공은 김해에서 제자를 받아들이고 후학을 양성하던 중 후백제와 태봉[후고구려]이 세력을 일으키며 정세가 혼란해지자 소백산으로 옮겨 수도 생활에 전념하였다. 후삼국 통일 직후 고려의 태조 왕건이 직접 요청하자 설법을 베풀었다. 왕건이 자신 곁에 머무르기를 요청했으나 진공은 끝내 사양하고 소백산으로 돌아가 입적하였다. 현양(玄讓), 행희(行熙) 등 문하에서 400여 명 제자가 배출되었다.

[묘소]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毘盧寺眞空大師普法塔碑)의 비문에 따르면, “진공대사는 고려 태조의 요청으로 여러 차례 설법을 베푼 이후 소백산으로 돌아와 입적했다”라고 한다.

[상훈과 추모]

진공이 입적한 2년 뒤인 939년(태조 22) 고려 태조는 ‘진공’이라는 시호와 함께 ‘보법지탑(普法之塔)’이라는 탑호를 내렸다. 이에 939년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호]가 비로사에 건립되었다.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의 비문은 당시 최고 문장가로 손꼽히던 최언위(崔彦僞)[868~944]가 지었으며, 이환추(李桓樞)가 글씨를 썼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