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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598
한자 金㙔
영어공식명칭 Kim Wi
이칭/별칭 김단(金壇),공준(公準),호경(虎卿),갈수헌(渴睡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09년연표보기 - 김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50년 - 김위 식년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59년 - 김위 병조좌랑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63년 - 김위 사헌부지평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88년 - 김위 오위장 제수
몰년 시기/일시 1789년연표보기 - 김위 사망
거주|이주지 김위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김위 묘소 -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운계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선성(宣城)
대표 관직 병조좌랑|사헌부지평|오위장

[정의]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개설]

김위(金㙔)[1709~1789]는 1750년(영조 26)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사헌부지평 등을 지낸 문신이다.

[가계]

김위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초명은 단(壇), 자는 공준(公準)·호경(虎卿), 호는 갈수헌(渴睡軒)이다. 아버지는 김원렬(金元烈), 어머니는 진사 류창시(柳昌時)의 딸 전주류씨(全州柳氏)이다. 할아버지는 생원 김동주(金東柱), 증조할아버지는 김종부(金宗溥)이다. 부인은 통덕랑 김정하(金挺河)의 딸 의성김씨(義城金氏)이다.

[활동 사항]

김위는 1750년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장녕전별검·성균관전적·병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763년(영조 39) 사헌부지평으로 있으면서 나주괘서사건에 연루된 기언표(奇彦杓)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청하였다. 1763년 국정 운영과 관련된 건의 사항을 여섯 조목으로 정리해 상소하였는데, 영조는 상소를 열람한 시간이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김위를 불러 가납하였다. 1788년(정조 12) 오위장에 제수되었다.

[학문과 저술]

김위의 문집으로 4권 2책의 『갈수헌집(渴睡軒集)』이 전한다. 수록된 시문 중에는 「동경회고시(東京懷古詩)」처럼 고적을 유람하고 쓴 것이 많다. 「사지평소(辭持平疏)」는 사헌부지평을 사직하면서 국정 운영과 관련된 의견을 진달한 상소문이다.

[묘소]

김위의 묘소는 봉화군 상운면 운계리 익곡(益谷)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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