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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710
한자 權得平
영어공식명칭 Gwon Deuk-pyeong
이칭/별칭 회봉(檜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46년연표보기 - 권득평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62년 - 권득평 진사시 급제
추모 시기/일시 1499년 - 권득평 정려
추모 시기/일시 1688년 - 권득평 효자비 개립
추모 시기/일시 1728년 - 권득평 이사 건립
추모 시기/일시 1982년 - 권득평 효자비각 건립
거주|이주지 권득평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동원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권득평 효자비각 -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단산로112번길 93[동원리 554]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안동(安東)

[정의]

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효자.

[개설]

권득평(權得平)[1446~?]은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으로 1499년(연산군 5) 정려되었다.

[가계]

권득평의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회봉(檜峰)이다. 아버지는 권효건(權孝蹇), 어머니는 지평을 지낸 황전(黃銓)의 딸 평해황씨(平海黃氏), 할아버지는 선교랑 권옹(權雍), 증조할아버지는 좌우위보승낭장을 지낸 권지(權祉)이다. 부인은 민집권(閔執權)의 딸 영천민씨(榮川閔氏)이다.

[활동 사항]

권득평은 경상도 순흥도호부 동원(東園)의 등영[지금의 영주시 단산면 동원리 일대] 출신으로 1462년(세조 8)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앞을 못 보는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외출 때마다 부축하였으며, 음식은 반드시 직접 받들었다고 한다. 나흘 사이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이어 돌아가셨는데, 3년 동안 여막에 거처하며 아침저녁으로 전(奠)을 올렸다. 아버지 대상(大祥)이 끝나자 바로 어머니를 위해 3년 복을 입었다. 또 가묘의 조석전도 폐하지 않았으며, 외출하러 나갈 때와 돌아올 때 반드시 참배했다고 한다.

한편, 권득평의 지극한 효성과 관련하여 복숭아씨로 만든 술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하루는 병환 중이던 아버지가 한겨울인데도 복숭아를 먹고 싶어 하였다. 권득평은 복숭아를 구하지 못해 마을 앞 냇가에서 근심하고 있었는데, 마침 얼음 구멍 사이로 푸른 잎이 달린 나뭇가지가 내려와서 건져보니 복숭아였다. 권득평은 하늘에 감사드리고 아버지에게 드렸더니 신기하게도 병환이 나았다고 한다. 또 복숭아씨를 쪼개어 술잔을 만들었는데 하나는 풍기군수가 가져가고, 나머지 하나는 권득평에게 돌려주었다. 권득평 후손들은 지금도 복숭아씨 술잔으로 제향을 지내고 있다.

[상훈과 추모]

권득평은 1499년(연산군 5)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되었다. 1982년 현 영주시 단산면 동원리에 권득평 효자비각이 건립되었는데, 비각 안의 효자비는 무너져 있던 것을 1688년(숙종 14)에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1728년(영조 4) 후손들이 권득평을 추모하기 위하여 효자비 근처에 이사(里祠)를 건립하였으나, 철폐된 후 복설하지 않았다. 1514년(중종 9) 편찬된 『속삼강행실도(續三綱行實圖)』에는 권득평의 효행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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