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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739
한자 金時伯
영어공식명칭 Kim Si-baek
이칭/별칭 삼궁(三弓),김현세(金顯世)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7년연표보기 - 김시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김시백 김상태 부대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13년 - 김시백 피체
활동 시기/일시 1915년 - 김시백 징역 10년 선고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김시백 만기 출옥
몰년 시기/일시 1950년연표보기 - 김시백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김시백 건국포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김시백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김시백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지도보기
활동지 김시백 활동지 - 경상북도|충청북도|강원도
묘소 김시백 묘소 -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내덕리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김상태 의진 소모장

[정의]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개설]

김시백(金時伯)[1887~1950]은 1907년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 중군장 김상태(金尙台)[1864~1912] 진영의 좌선봉에 이어 김상태 의진의 소모장으로 활동하였다.

[가계]

김시백의 본관 김해(金海), 자는 삼궁(三弓), 본명은 김현세(金顯世)이다. 본적지는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이며, 1887년 10월 27일 아버지 김예식(金禮植)의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김시백이 의병활동을 전개할 무렵의 거주지는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외룡리로 확인된다.

[활동 사항]

김시백은 1907년 이강년 의진 중군장 김상태의 진영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김상태는 1905년 정운경(鄭雲慶)[1861~1939]과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1907년 창의한 이강년 부대의 중군장으로 참가하여 강원도·경상북도·충청북도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김시백은 형제들과 함께 김상태 휘하에서 활동하였는데, 포수 생활을 하던 맏형 김현갑(金顯甲)이 적에게 잡히자 이를 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둘째 형 김현장은 의병활동 중 순국하고 말았다. 이에 김시백은 형 대신 종군하여 김상태의 좌선봉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1908년 7월 2일 충청북도 청풍 작성전투(鵲城戰鬪)에서 이강년이 부상을 당하고 붙잡히자, 김상태는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이끌고 영천(榮川)·안동·봉화·예천·영월 등을 중심으로 소백산과 태백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김시백은 김상태의 소모장을 맡았다.

1913년 김시백은 강원도 영월군 상동면 내덕리에서 체포되었다. 김시백은 3년간 미결수로 갇혀 있다가 1915년에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른 뒤 1924년에 출옥하였다. 그러나 옥고와 고문 후유증으로 힘든 만년을 보냈다.

[묘소]

김시백의 묘소는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내덕리 금당골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시백은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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