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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777
한자 全正錫
영어공식명칭 Jeon Jeong-seo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3년 3월 4일연표보기 - 전정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8년 1월 6일 - 전정석 경북기자대회 집행위원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30년 - 전정석 영주 4차 격문 투쟁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72년 12월 30일연표보기 - 전정석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9년연표보기 - 전정석 건국포장 추서
출생지 전정석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상망동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전정석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활동지 전정석 활동지 - 경상북도 영주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경북기자대회 집행위원

[정의]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전정석(全正錫)[1913~1972]은 광주학생운동에 영향을 받아 1930년 영주 지역에서 격문 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가계]

전정석은 1913년 3월 4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상망동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전정석은 1928년 1월 6일 영주 언론인을 대표해 김천청년동맹회관에서 개최된 경북기자대회에 참석한 뒤,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경북기자대회는 “급속하는 조선의 현실이 요구하는 언론의 신장과 공정을 도(圖)하며 항상 민중의 전위에서 여론을 대표하여 투쟁하는 전위분자의 친선을 도(圖)키 위하여”라는 명분으로 개최된 행사이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은 영주의 사회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영주청년동맹신간회 영주지회의 구성원들은 일제의 한국 식민지배의 부당성에 토로하고, 일제에 대한 투쟁을 촉구하는 격문 투쟁을 수차례 전개하였다. 이에 영주청년동맹원 전정석을 비롯한 23명은 1930년 4월 23일 영주 장날을 이용하여 이른바 영주 4차 격문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날 전정석 등은 ‘약소민족해방만세’ 등을 외치며 격문 10,000여 장을 살포하다가, 그 자리에서 일제 관헌에 의해 대부분 체포되었다. 전정석은 이때 체포를 피했으나 수사망이 좁혀 오자 1930년 5월 4일 영주경찰서에 자수하였다.

전정석은 1930년 5월 13일 열흘간 조사를 마치고 동지들과 함께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30년 6월 6일 대구지방법원 제4호 법정에서 전정석은 「출판법」 위반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언도받았다. 전정석은 이에 불복해 상고하였지만, 1930년 10월 15일 열린 대구복심법원 재판에서 징역 10월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상훈과 추모]

전정석은 2009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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