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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흠(黃政欽)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805
한자 黃政欽
영어공식명칭 Hwang Jeong-heum
이칭/별칭 도민(道敏),황정흠(黃正欽)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1년연표보기 - 황정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황정흠 풍기면 만세시위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황정흠 태형 90도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49년연표보기 - 황정흠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황정흠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황정흠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생현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황정흠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생현리 지도보기
활동지 황정흠 활동지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성내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 독립운동가.

[개설]

황정흠(黃政欽)[1881~1949]은 1919년 4월 9일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헌병들에게 체포되었다.

[가계]

황정흠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도민(道敏), 이명은 황정흠(黃正欽)이다. 아버지는 황재훈(黃在薰)이다. 황정흠은 어려서부터 신체가 강건하고 힘이 매우 세었으며, 무인의 기질이 있었다고 한다.

[활동 사항]

황정흠은 1881년 11월 9일 지금의 영주시 안정면 생현리에서 출생하였다. 일제강점 후 평소 일제 식민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던 안용호(安容鎬)[1884~1942]가 1919년 4월 9일 오후 3시 30분경 영주군 풍기면의 풍기장날 최성원(崔盛源)[1894~1926]·남영진(南永鎭)[1894~1920]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키자 참여하였다. 안용호 등이 만세운동을 일으키고 시위 군중 10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풍기주재소를 향해 행진하였다. 그러나 출동한 풍기주재소 헌병들에 의해 안용호·최성원·남영진 등이 주재소로 잡혀갔다.

안용호, 최성원, 남영진 등은 같은 마을 사람들로 풍기장터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한 중심인물들이었다. 이들이 붙잡혀 가는 것을 보고 황정흠은 같은 마을의 김용준(金容俊)[1873~1932]·황정흠(黃鼎欽)[1889~1955]·남상필(南相弼)[1891~1972]·이화백(李和伯)[1884~1968] 등과 함께 다시 시위 군중 50여 명을 안내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풍기주재소 앞으로 나아가 만세시위를 펼쳤다.

그러나 풍기장터 만세운동의 주역인 안용호 등 3인을 체포하고 철수하려던 일본군 헌병들에 의해 김용준·황정흠(黃鼎欽)·남상필·이화백 등과 함께 주동자로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도를 받고 풀려났다.

[상훈과 추모]

황정흠은 1995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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