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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966
한자 陣月寺
영어공식명칭 Jinwolsa Temple
이칭/별칭 무근사(無根寺)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납들고개길 119[용혈리 1104]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수|중창 시기/일시 1720년 - 진월사 무량보전 중수
중수|중창 시기/일시 1971년 - 진월사 중수
최초 건립지 진월사 -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납들고개길 119[용혈리 1104]
현 소재지 진월사 -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납들고개길 119[용혈리 1104]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의상
전화 054-637-5636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개설]

진월사(陳月寺)는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의상(義湘)이 창건했다고 한다. 진월사는 학가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서북 방향으로는 멀리 소백산 연봉을 마주하고, 절 아래로는 내성천이 흐르고 있다. 진월사는 현재 경상북도 3대 기도 도량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진월사는 신라 문무왕 때 창건되었다고 하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유물이나 유적은 남아있지 않다. 이후 조선 전기까지 기록이 없으며, 선조 연간 ‘무근사(無根寺)’라 불렀다고 하는데, 그 이후 어느 시점부터 ‘진월사’라 불렸다.

1720년(숙종 46) 설신(雪信)과 계원(戒元)이 법당을 중건하고 무량보전(無量寶殿)이라 이름한 뒤, 진월사의 주불을 지장보살에서 아미타삼존불로 바꾸어 봉안하였으며, 노전(爐殿)을 신축하였다. 1758년(영조 34) 체붕(體鵬) 등이 법당을 중수하고 심원각(心遠閣)을 신축한 뒤, 칠성탱화를 봉안하였다. 1797년(정조 21) 계문(戒文)이 심원각을 중수하였고, 1807년(순조 7) 시임(時任)과 정신(定信)이 무량보전을 중수하였으며, 1810년 응향각(凝香閣)을 중수하였다. 이어 1865년(고종 2) 원담(圓潭)이 심원각, 1891년(고종 28) 희민(曦玟)이 산신각을 중수하였다. 보정(普貞)이 1919년에 법당, 1922년에 요사를 각각 중수하였다.

1959년에 심원각을 중수하였으며, 1971년 진월사 중수, 1974년 범종 주조, 1975년 법당 단청, 1979년 개금불사, 1986년 삼성각 신축, 1990년 진월사 중수, 1991년 개금불사, 2001년 향로전 중수, 2011년 심검당(尋劍堂) 신축이 차례대로 진행되었다. 2013년에는 무량보전을 중건하고 석조아미타불좌상을 봉안하였으며, 아미타불 비석도 세웠다. 2014년에는 ‘진월사 법당 낙성식 및 부처님 점안식’을 거행하였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진월사의 불전은 무량보전, 심검당, 향로전, 삼성각, 범종, 가정집 같은 요사로 구성되어 있다. 진월사는 2층의 심원루(心遠樓)를 통과하면 정면에 무량보전이 있고, 좌측에 심검당, 우측에 향로전이 있으며, 무량보전 후방 좌측에 삼성각이 있다. 중심 불전인 무량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되어 있으며, 아미타불을 단독으로 봉안하였다. 아미타불 오른쪽에는 자그마한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들 불상 뒤에는 후불탱·지장탱·약사탱이 봉안되어 있다. 무량보전 현판은 1948년에 영주 출신 서예가 석당(石堂) 김종호(金宗鎬)가 썼다.

심검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로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한 선방(禪房)으로 현판은 영주 출신 서예가 과정(果丁) 김동진(金東鎭)의 글씨이다. 향로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로 주지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으며, 현판은 김종호의 글씨이다. 심원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현판은 본사인 고운사 조실 현봉근일(玄峰勤日)의 글씨이다. 심원루 입구 쪽에 있는 ‘학가산진월사(鶴駕山陳月寺)’ 현판 역시 1959년에 김종호가 썼다. 삼성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칠성·독성·산신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범종은 심원루 2층 구석진 곳에 걸어 두었다. 특히 심검당 주련(柱聯)에 ‘무소의 뿔처럼 가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등 4개 글귀를 한글로 써서 걸어 둔 점이 특이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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