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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1294
한자 栢巖集
영어공식명칭 Baegamjip(Literary Work)
이칭/별칭 백암선생문집,백암문집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772년연표보기 - 『백암집』 간행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0년 - 『백암집』 『한국문집총간』50에 영인 수록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시문집
저자 김륵
편자 김위
간행자 김위
권책 7권 4책
행자 10행 22자
규격 크기: 세로 30.6㎝, 가로 18.9㎝|반곽: 세로 20.4㎝, 가로 13.8㎝
어미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
권수제 백암선생문집
판심제 백암선생문집

[정의]

1722년 간행된 조선시대 영주 출신 문신인 김륵의 시문집.

[개설]

『백암집(栢巖集)』김륵(金玏)[1540~1616]의 시문집으로 1772년(영조 48)에 간행되었다.

[저자]

김륵의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柏巖), 본관은 예안(禮安), 시호는 민절(敏節)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76년(선조 9) 문과에 급제한 후 경상우도관찰사·승정원도승지·성균관대사성·이조참판·안동부사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안집사로 있으면서 경상도 북부 지역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영주 구산서원(龜山書院)에 제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백암집』은 1772년 6대손 김위(金㙔) 주도로 편찬·간행되었다. 당초 김륵의 저술은 병란과 화재로 상당 부분 소실되었었는데, 김위김약련(金若鍊)·김세련(金世鍊)의 도움을 받아 흩어져 있던 유고를 수습하여 6권으로 편집하였다. 여기에 김륵의 외손 김휴(金烋)와 종손 김선(金鍌)이 편찬한 연보 등을 부록으로 엮어, 총 7권 4책으로 정리하였으며, 이상정(李象靖)의 교정을 거친 뒤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백암집』은 7권 4책의 목판본으로, 표제와 판심제, 권수제는 ‘백암선생문집’이다. 크기는 세로 30.6㎝, 가로 18.9㎝이며, 반곽은 세로 20.4㎝, 가로 13.8㎝이다. 사주쌍변 유계(有界)에, 행자수는 10행 22자이다.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구성/내용]

『백암집』 권수에 이상정의 서문이 있으며, 권말에는 김위의 발문이 있다. 권1에는 사 1편, 부 1편과 시 98수가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에는 94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기행시가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권3에는 교서 2편, 소 8편, 차 5편, 권4에는 차 4편, 계사 3편, 권5에는 장계 10편과 정문 7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권3~5에 수록된 글들은 임진왜란 전후 김륵이 관직에 있으면서 국정 방향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것이다. 권6에는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書) 10편, 임진왜란 당시 지은 초모문(招募文)과 서(序)·전·상량문·제문 등 총 19편의 잡저가 수록되어 있다.

부록은 김휴가 쓴 연보를 비롯해 부록 상·하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편에는 1624년(인조 2) 국왕이 내린 사제문, 김륵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제문 6편, 정구(鄭逑)·이호민(李好閔)·이항복(李恒福) 등이 찬술한 만사 33편, 김영조(金榮祖)가 지은 향현사(鄕賢祠) 봉안문과 상향축문 등 42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하편에는 권해(權瑎)와 조현명(趙顯命)이 지은 신도비명 2편, 권두인(權斗寅)과 이광정(李光庭)이 지은 묘지명 2편, 김륵과 관련된 일화들을 모아 놓은 기문록을 비롯하여, 「도내유생소(道內儒生疏)」, 「증행편(贈行篇)」, 「의김모사제강릉부사전(擬金某謝除江陵府使箋)」 등 벗들이 김륵에게 지어준 3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백암집』김륵의 생애와 사상뿐만 아니라, 17세기 전후 정국 동향과 국제 정세를 살펴보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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