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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임곡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 마구령(馬駒嶺)[820m]은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임곡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장사꾼들이 말을 타고 다녔던 고개라 하여 마구령이라 전해지며, 경사가 심하여 논을 매는 것처럼 힘들다 하여 매기재라고도 불린다.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의 의풍계곡에서 백성들이 부석장에 나가기 위해 마구령을 넘어 다닌 것으로 전해진다. 마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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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를 연결하는 고개. 마당치는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서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를 잇는 고개로,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1,439.5m]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횡단하는 고개이다. 마당치는 과거 신라시대에 군마를 기르던 곳이라 하여 ‘마당모기’ 또는 ‘마당재’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마당치 남쪽의 유역분지를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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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전해지는 민요. 「지신밟기 노래」는 가정의 곳곳에 깃들어 수호해준다고 믿어지는 가신들을 차례대로 청해 모시고 가정의 기복을 축원하는 노래이다. 영주의 「지신밟기 노래」는 영주시 상줄동, 단산면 마락리, 부석면 용암리에서 채록되었다. 「지신밟기 노래」는 2010년 영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주시사』2에 「지신밟기 노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제보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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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를 연결하는 고개. 마당치는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서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를 잇는 고개로,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1,439.5m]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횡단하는 고개이다. 마당치는 과거 신라시대에 군마를 기르던 곳이라 하여 ‘마당모기’ 또는 ‘마당재’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마당치 남쪽의 유역분지를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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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를 연결하는 고개. 마당치는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서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를 잇는 고개로,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1,439.5m]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횡단하는 고개이다. 마당치는 과거 신라시대에 군마를 기르던 곳이라 하여 ‘마당모기’ 또는 ‘마당재’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마당치 남쪽의 유역분지를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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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락리(馬落里)는 영주시 단산면 8개 법정리 중 하나로 행정리는 마락리 하나이다. 자연마을로는 홈통골, 법수동, 도화동, 섶밭[신전], 성재 등이 있다. 마락리 명칭은 마을의 설화에서 유래했다. 옛날에 상인이 말에 짐을 싣고 이곳에 있는 큰 바위로 된 절벽을 지나다 광풍으로 절벽에서 굴러떨어졌는데도 말이 죽지 않았다 하여 ‘말굴’이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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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 마주바위마을에서 마을의 평안을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마락리 마주바위 동제는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의 마주바위마을 주민들이 음력 1월과 10월에 마락청소년야영장 근처 개울의 서낭당과 소백산맥 고갯마루 정상에 있는 고치재 성황당에서 지내는 동제이다. 마락리 마주바위 동제를 지내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서낭당이 1969년에 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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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순흥면, 안정면에서 전해지는 장례식을 치를 때 부르는 민요. 「상여 소리」는 상여꾼들이 상여를 매고 나갈 때 부르는 장례의식요이다. 「상여 소리」는 「만가」, 「상두소리」, 「향두가」로도 불린다. 영주 지역에서는 영주시 순흥면·부석면·안정면에서 전하는 네 가지 「상여 소리」가 있다. 순흥면의 「상여 소리」는 죽음에 대한 짧은 노래이다. 안정면의 「상여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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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만방리(萬芳里)는 영주시 문수면 9개 법정리 중 하나로 행정리는 만방1리, 만방2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한정[한정이], 종릉, 우무실[우곡], 자마이[자만], 아랫마, 양지마, 음지마, 새배이[쇄배이, 새뱅이, 신방] 등이 있다. 만방리 명칭은 자만동(者萬洞)과 신방동(新芳洞)에서 유래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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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조와동에 있는 노인주거복지시설. 영주시립양로원 만수촌은 1999년 「노인복지법」[법률 제5851호, 1999년 2월 8일 개정] 제33조 제1항 규정에 따라 영주시에서 설립한 무료 노인주거복지시설로 2019년 현재 사회복지법인 이래마을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다. 영주시립양로원 만수촌은 영주시 관내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무의탁·무연고 국민기초생활 보장수급대상자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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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가옥. 영주수도리김뢰진가옥(榮州水島里金賚鎭家屋)은 김휘걸(金輝杰)[1864~1937]이 건립하였다. 김휘걸의 호를 따 ‘만운 고택(晩雲古宅)’이라고도 한다. 영주수도리김뢰진가옥은 문수면행정복지센터에서 남쪽으로 약 5.36㎞ 떨어진 영주 무섬마을에 위치한다. 문수면행정복지센터 정문에서 문수로1363번길을 따라 3.5㎞ 이동 후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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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출신의 교육자이자 정치가. 이정희(李正熙)[1903~1981]는 일제강점기 때에는 교육자, 대한민국 건국 후에는 관료와 정치인으로 활동한 재선 국회의원이다. 이정희의 본관은 우계(羽溪), 자는 맹실(孟實), 호는 효산(曉山)·만정(晩汀)이다. 도촌(桃村) 이수형(李秀亨)[1435~1528]의 16대손으로, 아버지는 이원춘(李元春)이다. 1903년 12월 9일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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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가옥. 만죽재고택(晩竹齋古宅)은 무섬마을 반남박씨(潘南朴氏) 입향조인 박수(朴檖)[1641~1729]가 건립하였다. 박수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문중(文仲)이다. 충의위를 지냈다. 현 영주시 문수면 머럼에서 살다가 내성천 건너 무섬마을을 처음으로 개척하였다. 만죽재고택은 문수면행정복지센터에서 남쪽으로 약 5.36㎞ 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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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욱(安頊)[1581~1649]은 문과 급제 후 상원현감·흥양현감 등을 지냈다. 안욱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근재(謹哉), 호는 만지정(萬枝亭)이다.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지를 역임한 안거(安璖)[1519~?], 아버지는 효행으로 공조참의에 증직된 안응일(安應一)[1549~?], 어머니는 생원 김윤찬(金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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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학자. 이여빈(李汝馪)[1556~1631]은 문과 급제 후 벽사도찰방, 성균관전적 등에 제수되었으나, 광해군 연간 대북 세력이 권력을 잡자 고향에 은거하였다. 이여빈의 본관은 우계(羽溪), 자는 덕훈(德薰), 호는 취사(炊沙)·감곡(鑑谷)·도촌(道村)·만취(晩翠)이다. 아버지는 군자감참봉을 지낸 이효신(李孝信), 어머니는 사직을 지낸 이귀윤(李貴胤)[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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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 만취당(晩翠堂)은 김개국(金盖國)[1548~1603]이 세운 정자이다. 김개국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제(公濟), 호는 만취당이다. 김개국은 1591년(선조 24) 문과에 급제하고, 예조좌랑, 충청도도사, 강원도도사를 지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큰 공을 세워 예빈시주부가 되고, 1650년(효종 1) 승정원좌승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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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개국(金盖國)[1548~1603]은 강원도도사·옥천군수 등을 지낸 문신이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김개국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제(公濟), 호는 만취당(晩翠堂)·양진재(養眞齋)·노봉(蘆峰)이다. 아버지는 김산훈도를 지낸 김몽득(金夢得), 어머니는 진사 이극온(李克溫)의 딸 공주이씨(公州李氏)이다. 할아버지는 가인의를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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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간행된 조선 전기 영주 출신 문신인 김개국의 시문집. 『만취일고(晩翠逸稿)』는 김개국(金蓋國)[1548~1603]의 시문집으로 1774년(영조 50)에 간행되었다. 김개국의 자는 공제(公濟), 호는 만취당(晩翠堂),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1591년(선조 24)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정랑을 거쳐 군수에 이르렀으며, 영주 삼봉서원(三峯書院)에 제향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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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간행된 조선 전기 영주 출신 문신인 김개국의 시문집. 『만취일고(晩翠逸稿)』는 김개국(金蓋國)[1548~1603]의 시문집으로 1774년(영조 50)에 간행되었다. 김개국의 자는 공제(公濟), 호는 만취당(晩翠堂),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1591년(선조 24)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정랑을 거쳐 군수에 이르렀으며, 영주 삼봉서원(三峯書院)에 제향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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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간행된 조선 전기 영주 출신 문신인 김개국의 시문집. 『만취일고(晩翠逸稿)』는 김개국(金蓋國)[1548~1603]의 시문집으로 1774년(영조 50)에 간행되었다. 김개국의 자는 공제(公濟), 호는 만취당(晩翠堂),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1591년(선조 24)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정랑을 거쳐 군수에 이르렀으며, 영주 삼봉서원(三峯書院)에 제향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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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용암리 망감마을에 있는 학바위에 관련된 이야기. 「망감마을 학바위 이야기」는 영주시 부석면 용암리 망감마을의 부자로 살고 있는 윤첨지(尹僉知) 집에 끊임없이 손님이 찾아오자, 그 며느리가 부엌일이 너무 고되어서 어떻게 하면 손님이 오지 않을까 방법을 찾다가 결국 집안이 망해버렸다는 내용이다. 「망감마을 학바위 이야기」는 2010년 영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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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용암리와 봉화군 물야면 압동리를 연결하는 고개. 망갑고개는 영주시 부석면 용암리와 봉화군 물야면 압동리를 잇는 고개이다. 봉황산[822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능선을 가로지르는 고개로, 해발고도 350m 내외 구릉성 산지이다. 영주시 부석면 용암리 망갑마을에서 봉화군으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망갑고개라고 부른다. ‘망갑’이라는 지명은 이곳에 만갑상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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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거주한 문신. 김영조(金榮祖)[1577~1648]는 문과 급제 후 형조정랑·길주목사·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김영조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중(孝仲), 호는 망와(忘窩)이다. 아버지는 산음현감을 지낸 김대현(金大賢)[1553~1602], 어머니는 충의위 이찬금(李纘金)의 딸 증 정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 할아버지는 장예원사의를 지낸 김농(金農)[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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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전익희(全益禧)[1598~1659]는 문과 급제 후 병조정랑·선산부사 등을 지냈다. 형제간에 우애가 두터웠으며, 청렴한 관직 생활로 칭송을 받았다. 전익희의 자는 자수(子綬), 호는 망일당(望日堂)·설월당(雪月堂), 본관은 옥천(沃川)이다. 옥천전씨 영주 입향조인 상장군 전희철(全希哲)[1425~1521]의 5세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생원 전응두(全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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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전해지는 민요. 「지신밟기 노래」는 가정의 곳곳에 깃들어 수호해준다고 믿어지는 가신들을 차례대로 청해 모시고 가정의 기복을 축원하는 노래이다. 영주의 「지신밟기 노래」는 영주시 상줄동, 단산면 마락리, 부석면 용암리에서 채록되었다. 「지신밟기 노래」는 2010년 영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주시사』2에 「지신밟기 노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제보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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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임곡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 마구령(馬駒嶺)[820m]은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임곡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장사꾼들이 말을 타고 다녔던 고개라 하여 마구령이라 전해지며, 경사가 심하여 논을 매는 것처럼 힘들다 하여 매기재라고도 불린다.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의 의풍계곡에서 백성들이 부석장에 나가기 위해 마구령을 넘어 다닌 것으로 전해진다. 마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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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공신(安公信)[1496~1561]은 문과 급제 후 성균관직강·홍문관교리·청풍군수 등을 지냈다. 안공신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대보(大寶), 호는 매담(梅潭)이다.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부사를 지낸 안계문(安季文), 아버지는 진사 안영(安瑛)[?~1592], 어머니는 진사 박경원(朴慶元)의 딸 문의박씨(文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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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거주한 문신. 김난상(金鸞祥)[1507~1570]은 사간원정언·홍문관응교·사간원대사간 등을 지냈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가 일어났을 때 파직당하였으며, 1547년 양재역벽서사건으로 장기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김난상의 본관은 청도(淸道), 자는 계응(季應), 호는 병산(缾山)·매양(梅陽)·운계(雲溪)이다. 아버지는 강예원습독관을 지낸 김현(金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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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나이준(羅以俊)[1602~1676]은 문과 급제 후 공조좌랑, 병조좌랑, 고부군수, 홍문관수찬 등을 지냈으며, 수성나씨(壽城羅氏) 가문의 영주 입향조이다. 나이준의 본관은 수성(壽城), 자는 택우(宅于), 호는 매음(梅陰)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나경문(羅景文), 증조할아버지는 영릉참봉을 지낸 나응두(羅應斗), 할아버지는 나세겸(羅世謙),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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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선(金鍌)[1596~1660]은 1625년(인조 3) 문과에 급제한 이후 형조좌랑·황해도도사·당진현감·흥해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김선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여정(汝精), 호는 고산(孤山)·매학당(梅鶴堂)이다. 아버지는 승사랑 김수선(金首善), 어머니는 여절교위 이희열(李希說)의 딸 단인 진성이씨(眞城李氏), 할아버지는 부사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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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출신의 교육자이자 정치가. 이정희(李正熙)[1903~1981]는 일제강점기 때에는 교육자, 대한민국 건국 후에는 관료와 정치인으로 활동한 재선 국회의원이다. 이정희의 본관은 우계(羽溪), 자는 맹실(孟實), 호는 효산(曉山)·만정(晩汀)이다. 도촌(桃村) 이수형(李秀亨)[1435~1528]의 16대손으로, 아버지는 이원춘(李元春)이다. 1903년 12월 9일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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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2리에 있는 연안김씨 집성촌. 연안김씨(延安金氏)는 황해도 연안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인 김섬한(金暹漢)은 고려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감 사문박사를 지냈다. 영주시 이산면 신암2리에 이주한 김세형(金世衡)으로부터 세거가 시작되었다. 영주시 이산면 신암2리 머름마을은 머름에서 삼봉골 방향 100m 지점 산자락에 말[斗]을 닮은 바위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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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조제리에 있는 교회. 멱실교회(覓室敎會)는 대한예수장로회 통합 영주노회 영남시찰회 소속 교회이다. 멱실교회는 문수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멱실교회는 영주중앙교회 여전도회로부터 1931년 복음을 전파받아 1932년 영주군 문수면 조제리에 기도실로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1942년 일제의 교회 말살 정책으로 기도실이 강제 철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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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조제리에 있는 교회. 멱실교회(覓室敎會)는 대한예수장로회 통합 영주노회 영남시찰회 소속 교회이다. 멱실교회는 문수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멱실교회는 영주중앙교회 여전도회로부터 1931년 복음을 전파받아 1932년 영주군 문수면 조제리에 기도실로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1942년 일제의 교회 말살 정책으로 기도실이 강제 철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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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이유(李愉)[1365~1423]는 형조참판·함길도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동북면 지역에 있는 백성들을 교화하고, 여진족들을 회유하는데 힘썼다. 이유의 본관은 덕산(德山), 자는 명보(明普), 호는 은재(隱齋)이다. 아버지는 판도판서를 지낸 이영(李英), 어머니는 정부인 여흥민씨(驪興閔氏), 할아버지는 집현전대제학을 지낸 이사목(李思牧), 증조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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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김농(金農)[1534~1591]은 음직(蔭職)으로 동부참봉·용궁현감·장예원사의 등을 역임하였으며, 풍산김씨(豊山金氏)의 영주 입향조이다. 김농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명보(明甫), 호는 화남(華南)이다. 아버지는 훈련원부정을 지낸 김의정(金義貞)[1495~1547], 어머니는 평양부서윤을 지낸 김번(金璠)[1479~1544]의 딸 정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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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학자. 손흥경(孫興慶)[1543~1611]은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이황(李滉)[1501~1570]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손흥경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여(景餘), 호는 명암(鳴巖)이다. 아버지는 기자전참봉을 지낸 손난(孫蘭), 어머니는 숙부인 원주변씨(原州邊氏), 할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을 지낸 손의형(孫義亨), 증조할아버지는 회령판관을 지낸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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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성진(金聲振)[1857~1915]은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전해 듣고 통분하였으며, 1915년 단식·순국하였다. 김성진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명옥(鳴玉), 호는 야옹(野翁)·어야(於野)이다. 김륵(金玏)[1540~1616]의 후손으로 1857년 11월 29일 지금의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서 출생하였다. 김성진은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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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지역에서 불교 교리에 따라 예배 대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조형물. 불상(佛像)은 석가여래의 모습을 조형적인 형상으로 표현한 상(像)을 의미하나 넓은 의미에서는 부처의 상은 물론 보살상(菩薩像)·천왕상(天王像)·명왕상(明王像)·나한상(羅漢像) 등을 모두 포함한다. 불상은 기원전 2세기경에 인도의 간다라 지방에서 처음 만들어져,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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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고현동에 살았던 명의 이석간과 관련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명의 이석간과 천도」는 영주시 고현동 출신의 명의 이석간(李碩幹)[1509~1574]이 인술을 베풀고자 하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이야기이다. 명의와 관련된 인물 전설이면서, 천도배에 얽힌 사물 전설이기도 하다. 이석간은 참봉을 지냈고, 이황(李滉)의 문인이지만, 유학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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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소수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명종의 친필 현판. 명종어필‘소수서원’현판(明宗御筆紹修書院懸板)은 1550년(명종 5)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사액 될 때 받은 현판으로 명종이 직접 썼다. 원래 영주 소수서원 강학당 내부에 걸려 있었으며, 현재 진본은 소수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명종어필‘소수서원’현판은 2001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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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순흥면 내죽리에서 전해지는 모를 논에 옮겨 심을 때 부르던 민요. 「모심기 노래」는 「모내기 노래」라고도 불리는 농산노동요이다. 영주 지역에서는 두 종류의 「모심기 노래」가 전하는데, 한 편은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서, 다른 한 편은 영주시 풍기읍에서 채록하였다. 순흥면 내죽리의 「모심기 노래」는 ‘앞뒤 앞뒤’ 네 번 소리가 하나의 내용을 완성하는 구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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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순흥면 내죽리에서 전해지는 모를 논에 옮겨 심을 때 부르던 민요. 「모심기 노래」는 「모내기 노래」라고도 불리는 농산노동요이다. 영주 지역에서는 두 종류의 「모심기 노래」가 전하는데, 한 편은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서, 다른 한 편은 영주시 풍기읍에서 채록하였다. 순흥면 내죽리의 「모심기 노래」는 ‘앞뒤 앞뒤’ 네 번 소리가 하나의 내용을 완성하는 구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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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거주했던 효자. 송순령(宋舜齡)[1536~1575]은 효행으로 천거되어 전연사직장을 지냈다. 지금의 예천군 개포면 풍정리 송포 출신으로 아버지 송규(宋珪)와 함께 지금의 영주시 장수면 호문리 토계로 이주하였다. 송순령의 자는 요상(堯相), 호는 모암(慕巖), 본관은 양주(楊州)이다. 송순령의 선대는 양주 지역에 세거하다, 고조할아버지 송이권(宋以權) 대에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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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장진(張瑱)[1635~1707]은 문과 급제 후 사헌부장령·진주목사·강계부사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향촌에 있을 때는 영주 지역의 명유들과 교유하며 학문 활동을 전개하였다. 장진의 자는 군옥(君玉), 호는 모암(茅菴),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적개공신 장말손(張末孫)[1431~1486]의 6대손으로 고조할아버지 장응필(張應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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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득오가 영주 지역 죽령과 관련 있는 죽지랑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향가.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는 통일신라시대 효소왕 대에 득오(得烏)가 죽지랑(竹旨郎)[?~?]이 세상을 떠나자, 죽지랑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지은 8구체 향가이다. 향가의 주인공인 죽지랑은 삼국통일 시기에 활동했던 명장으로 죽령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모죽지랑가」는 『삼국유사(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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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인공 저수시설. 저수지는 농어촌 용수를 확보할 목적으로 하천, 하천 구역 또는 연안 구역 등에 물을 가두어 두거나 관리하기 위한 시설과 홍수위(洪水位)[하천의 최고 수위] 이하 수면 및 토지를 말한다. 「농어촌정비법」 제2조에 따라 저수지는 농업생산기반시설로 분류된다. 영주시의 저수지는 전통시대부터 축조되었으며, 농업의 발달에 따라 저수지의 수도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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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장후상(張后相)[1677~1742]은 문과 급제 후 성균관박사·예조정랑·양산군수 등을 지냈으며, 1728년(영조 4) 무신난 때 의병을 일으켰다. 장후상의 자는 몽여(蒙予), 호는 석문(石門),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인 장수희(張壽禧)[1516~1586], 증조할아버지는 진사 장여화(張汝華)[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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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전구리와 봉현면 두산리에 걸쳐 있는 산. 묘적봉(妙積峰)[1,149.1m]은 영주시 풍기읍·봉현면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이다. 고리목재에서 오른편 등산로를 따라 약 3.2㎞를 올라가면 묘적봉이 있고, 도솔봉[1,314m]과 50분 거리에 있다. 등산 들머리인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 마을은 동학군이 관군에 쫓겨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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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진월사(陳月寺)는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의상(義湘)이 창건했다고 한다. 진월사는 학가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서북 방향으로는 멀리 소백산 연봉을 마주하고, 절 아래로는 내성천이 흐르고 있다. 진월사는 현재 경상북도 3대 기도 도량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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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이징도(李徵道)[1652~1737]는 문과 급제 후 성균관전적·도원도찰방·성균관직강 등을 지냈으며, 무신난(戊申亂) 때 의병을 일으켰다. 이징도의 본관은 우계(羽溪), 자는 이시(以時), 호는 무릉(武陵)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이성명(李聖命)이고 어머니는 도사를 지낸 이시암(李時馣)[1607~?]의 딸 원주이씨(原州李氏)인데, 중부(仲父)인 호군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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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문신. 주세붕(周世鵬)[1495~1554]은 1541년(중종 36)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향교를 수리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하는 등 향촌 교화에 힘썼다. 주세붕의 자는 경유(景遊), 호는 신재(愼齋), 시호는 문민(文敏),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고조할아버지인 진사 주유(周瑜)가 고려 멸망 이후 합천에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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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에서 개최되는 전통놀이 재현 축제. 무섬외나무다리축제는 2005년 9월에 시작한 지역 대표 문화축제로 무섬마을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져 내려오던 전통놀이를 재현하기 위해 시작된 행사이다. 무섬마을을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인 외나무다리에 얽힌 마을 사람들의 애환을 기리며 뭍과 섬을 잇는 다리처럼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축제이다. 물 위에 떠 있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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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승문리와 수도리를 연결하는 교량. 무섬교는 내성천을 남북 방향으로 건너는 문평로의 교량이다. 교량 남쪽 부분은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북쪽 부분은 문수면 승문리에 속한다. 다리를 통과하여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로 진입할 수 있으므로 ‘무섬교’라 부르게 되었다. 무섬교의 총길이는 170m이며, 총폭은 9m, 유효 폭은 8m, 높이는 6.5m이다. 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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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의 전통마을이자 체험마을. 영주 무섬마을은 하천, 백사장, 숲과 전통가옥, 선비문화로 유명한 전통마을이다. 영주 무섬마을에는 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350여 년 동안 세거해오고 있어 전통적인 집성촌, 양반 촌락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조선 중·후기에 건축된 전통가옥들이 마을을 감싸 흐르는 내성천과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영주 무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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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에서 개최되는 전통놀이 재현 축제. 무섬외나무다리축제는 2005년 9월에 시작한 지역 대표 문화축제로 무섬마을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져 내려오던 전통놀이를 재현하기 위해 시작된 행사이다. 무섬마을을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인 외나무다리에 얽힌 마을 사람들의 애환을 기리며 뭍과 섬을 잇는 다리처럼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축제이다. 물 위에 떠 있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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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무속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토착신앙 및 의례. 무속(巫俗)은 무당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제의와 신앙체계를 말한다. 무속의 체계 속에서 무당은 초자연적 존재와 인간 사이의 매개 역할을 한다. 무당이 교감하는 대상은 자연물이나 인공물에 깃든 신령(神靈), 조상, 역사적 인물과 한국 민간신앙의 고유 신격들이다. 이러한 한국 무속의 기원은 고조선시대로 여겨진다. 무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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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담(金淡)[1416~1464]은 세종 연간 문과 급제 후 집현전에서 활동한 문신이다. 왕명을 받아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 등을 편찬하였다. 김담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거원(巨源), 호는 무송헌(撫松軒),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아버지는 영유현령을 지낸 김소량(金小良)[1384~1449],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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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년 초간된 조선 전기 영주 출신 문신인 김담의 시문집. 『무송헌집(撫松軒集)』은 김담(金淡)[1416~1464]의 시문집으로 1644년(인조 22)에 초간되었다. 김담의 자는 거원(巨源), 호는 무송헌(撫松軒),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1435년(세종 17)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에서 활동하였으며, 이후 이조정랑·경주부윤·이조판서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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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년 초간된 조선 전기 영주 출신 문신인 김담의 시문집. 『무송헌집(撫松軒集)』은 김담(金淡)[1416~1464]의 시문집으로 1644년(인조 22)에 초간되었다. 김담의 자는 거원(巨源), 호는 무송헌(撫松軒),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1435년(세종 17)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에서 활동하였으며, 이후 이조정랑·경주부윤·이조판서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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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년 초간된 조선 전기 영주 출신 문신인 김담의 시문집. 『무송헌집(撫松軒集)』은 김담(金淡)[1416~1464]의 시문집으로 1644년(인조 22)에 초간되었다. 김담의 자는 거원(巨源), 호는 무송헌(撫松軒),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1435년(세종 17)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에서 활동하였으며, 이후 이조정랑·경주부윤·이조판서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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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영주 지역에서 이인좌·정희량 등이 영조와 노론을 타도하기 위해 일으킨 난과 영주의 의병활동. 무신난(戊申亂)은 1728년(영조 4)에 발생하였는데,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의 이름을 따서 ‘이인좌(李麟佐)의 난’, 또는 ‘정희량(鄭希亮)의 난’이라고도 한다. 1724년 영조 즉위 후 노론(老論)이 정국을 장악해 가기 시작했고, 반면에 소론(少論)의 입지는 약화되어 갔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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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영주 지역에서 이인좌·정희량 등이 영조와 노론을 타도하기 위해 일으킨 난과 영주의 의병활동. 무신난(戊申亂)은 1728년(영조 4)에 발생하였는데,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의 이름을 따서 ‘이인좌(李麟佐)의 난’, 또는 ‘정희량(鄭希亮)의 난’이라고도 한다. 1724년 영조 즉위 후 노론(老論)이 정국을 장악해 가기 시작했고, 반면에 소론(少論)의 입지는 약화되어 갔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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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영주 지역에서 이인좌·정희량 등이 영조와 노론을 타도하기 위해 일으킨 난과 영주의 의병활동. 무신난(戊申亂)은 1728년(영조 4)에 발생하였는데,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의 이름을 따서 ‘이인좌(李麟佐)의 난’, 또는 ‘정희량(鄭希亮)의 난’이라고도 한다. 1724년 영조 즉위 후 노론(老論)이 정국을 장악해 가기 시작했고, 반면에 소론(少論)의 입지는 약화되어 갔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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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에 있었던 무신탑과 관련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무신탑」은 가흥동에 있었다고 전하는 무신탑(無信塔)의 내력에 대한 사물 전설이면서, 소지왕(炤知王)에 얽힌 인물 전설이기도 하다. 2010년 영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주시사』2에 수록되어 있다. 영주시 가흥동의 서귀대(西龜臺) 위에 무신탑이 있었는데, 그 탑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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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묵리(墨里)는 영주시 안정면 14개 법정리 중 하나로 행정리는 묵리 하나이다. 자연마을로는 까막골[가막골, 묵리], 노루모기[장현], 새터마[새마, 신기동, 새마을], 항고개[한고개], 반지미[반산, 윗반지미, 안정반지미] 등이 있다. 묵리 명칭은 까막골에서 유래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풍기군 용산면 묵동이 영주군 안정면 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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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용범(金龍範)[1755~1810]은 1798년(정조 22)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예조좌랑·사직서령 등을 지낸 문신이다. 김용범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천서(天敍), 호는 묵재(默齋)이다. 아버지는 김택연(金宅延), 어머니는 생원 전필기(全必錡)의 딸 옥천전씨(沃川全氏), 할아버지는 김수규(金守槼), 증조할아버지는 김식(金㵓)이다.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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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종원(安宗源)[1325~1394]은 문과 급제 후 양광도안렴사, 전법총랑, 판삼사사 등을 지냈다. 조선왕조 개창 후에는 판문하부사에 임명되었다. 안종원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청(嗣淸), 호는 쌍청당(雙淸堂),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할아버지는 안석(安碩)인데 현리로 있으면서 과거에 급제하였지만,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첨의찬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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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보(安輔)[1302~1357]는 고려 문과와 제과(制科)에 급제하였으며, 경주사록, 밀직제학, 정당문학, 동경유수 등을 지냈다. 안보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원지(員之),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안득재(安得財), 할아버지는 안희서(安希諝)로 모두 흥녕현(興寧縣)[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호장(戶長)을 지냈다. 부친 안석(安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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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문경동(文敬仝)[1457~1521]은 양산군수·사옹원정·청풍군수 등을 지낸 문신이다. 삼포왜란 때 왜적을 방어하였다. 문경동의 본관은 남평(南平), 자(字)는 흠지(欽之), 호는 창계(滄溪)인데, 문경동의 문집인 『창계집(滄溪集)』에는 본관이 감천(甘泉)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는 전연사직장을 지낸 문속명(文續命), 어머니는 소윤을 지낸 진유경(秦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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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문신. 주세붕(周世鵬)[1495~1554]은 1541년(중종 36)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향교를 수리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하는 등 향촌 교화에 힘썼다. 주세붕의 자는 경유(景遊), 호는 신재(愼齋), 시호는 문민(文敏),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고조할아버지인 진사 주유(周瑜)가 고려 멸망 이후 합천에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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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향(安珦)[1243~1306]은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도입한 문신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제향되었다. 안향의 본관은 순흥(順興), 초명은 안유(安裕),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훗날 이름을 ‘안향’으로 고쳤지만, 조선의 5대 임금 문종과 휘가 같아 조선시대 저서에는 ‘안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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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송광벽(宋光壁)[1628~1701]은 문과 급제 후 청송부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숙종 연간 상소를 올려 인현왕후 복위를 청원하였으며, 낙향한 후에는 축대를 쌓고 매월 초하루에 분향망배 했는데, 그 자리를 ‘공진대(供辰臺)’라고 부른다. 송광벽의 자는 문성(文星), 호는 응봉(鷹峯), 본관은 야성(冶城)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김종직의 문인인 송석충(宋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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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영주 소수서원 경내 사당.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榮州紹修書院文成公廟)는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 문정공(文貞公) 안축(安軸), 문경공(文敬公) 안보(安輔), 문민공(文敏公) 주세붕(周世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순흥면행정복지센터 정문에서 순흥로 북쪽 방면으로 275m 이동한 뒤, 읍내교차로에서 소백로 북동쪽 방면으로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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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3년 최초 간행된 고려 후기 영주 출신 문신인 안향의 실기. 『회헌실기(晦軒實記)』는 안향(安珦)[1243~1306]의 행적을 엮은 실기이다.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간행이 이루어졌는데, 1922년에 마지막으로 간행된 것이 많이 알려져 있다. 안향의 초명은 유(裕),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 본관은 순흥,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1260년(원종 1) 문과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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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3년 최초 간행된 고려 후기 영주 출신 문신인 안향의 실기. 『회헌실기(晦軒實記)』는 안향(安珦)[1243~1306]의 행적을 엮은 실기이다.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간행이 이루어졌는데, 1922년에 마지막으로 간행된 것이 많이 알려져 있다. 안향의 초명은 유(裕),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 본관은 순흥,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1260년(원종 1) 문과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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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적동리에 있는 교회. 문수교회(文殊敎會)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영주노회 영남시찰회 소속 교회이다. 문수교회는 문수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문수교회는 임순기·김돌이 외 7명의 신도가 1931년 3월 1일 영주군 문수면 적동리 잿마랭이에서 기도실을 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1934년 경안노회로부터 적동교회로 명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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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적동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문수초등학교는 ‘건강한 어린이[건강]’, ‘멋과 따뜻한 감성을 지닌 어린이[예술]’, ‘창조적으로 탐구하는 어린이[지성]’,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어린이[인성]’를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43년 4월 1일 적동공립국민학교가 설립 인가를 받아 1943년 5월 1일 적동공립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49년 12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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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적동리에 가설된 교량. 문수교는 문수로 상에 있는 비교적 소규모 교량이다. 문수면소재지인 적동리의 사르내마을에 위치한다. 다리가 위치한 영주시 문수면의 이름을 따서 ‘문수교’라 명명하였다. 문수교의 총길이는 25m이며, 총폭은 12.5m, 유효 폭은 10.5m, 높이는 3m이다. 경간 수는 1개, 최대 경간장은 25m에 달한다. 상부구조 형식은 PSC I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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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권선리 일원에 조성된 농공단지. 영주문수농공단지는 2006년 영주시 문수면 권선리에 조성되었다. 농공단지는 1984년 시행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법률 제3689호, 1983년 12월 31일 제정]에 따라 농촌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과 소득 증대를 위하여 조성된 산업단지를 뜻한다. 영주 지역 농촌 유휴인력 활용과 시가지 환경개선 등을 통해 지역 경제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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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 속하는 법정면. 문수면(文殊面)은 영주시 남쪽에 있는 면으로 안동시 북후면, 예천군 보문면과 이어져 있다. 9개 법정리[승문리, 만방리, 적동리, 권선리, 월호리, 대양리, 탄산리, 수도리, 조제리]와 16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문수면행정복지센터는 적동리에 있다. 문수면 명칭은 조선시대 문수원(文殊院)에서 유래했다. 문수면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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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적동리에 있는 문수면 행정을 관할하는 공공기관. 문수면행정복지센터가 관할하는 행정구역은 16개 행정리와 48개 반이고, 법정리는 9개[적동리·승문리·만방리·권선리·월호리·대양리·탄산리·수도리·조제리]이다. 문수면행정복지센터는 영주시 문수면의 행정사무를 관장함으로써 행정의 능률과 주민 편의를 도모하고자 설립되었다. 문수면행정복지센터는 1914년 「도의위치관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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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적동리에 있는 문수면 행정을 관할하는 공공기관. 문수면행정복지센터가 관할하는 행정구역은 16개 행정리와 48개 반이고, 법정리는 9개[적동리·승문리·만방리·권선리·월호리·대양리·탄산리·수도리·조제리]이다. 문수면행정복지센터는 영주시 문수면의 행정사무를 관장함으로써 행정의 능률과 주민 편의를 도모하고자 설립되었다. 문수면행정복지센터는 1914년 「도의위치관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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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월호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문수사(文殊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며, 비구니 사찰이다. 문수사의 전신인 방석사(方石寺)의 창건 경위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통일신라시대 때 의상(義湘)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방석사는 부석사(浮石寺)·응석사(凝石寺)와 더불어 3석사(三石寺) 중 하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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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적동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문수초등학교는 ‘건강한 어린이[건강]’, ‘멋과 따뜻한 감성을 지닌 어린이[예술]’, ‘창조적으로 탐구하는 어린이[지성]’,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어린이[인성]’를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43년 4월 1일 적동공립국민학교가 설립 인가를 받아 1943년 5월 1일 적동공립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49년 12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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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적동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문수초등학교는 ‘건강한 어린이[건강]’, ‘멋과 따뜻한 감성을 지닌 어린이[예술]’, ‘창조적으로 탐구하는 어린이[지성]’,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어린이[인성]’를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43년 4월 1일 적동공립국민학교가 설립 인가를 받아 1943년 5월 1일 적동공립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49년 12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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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목(安牧)[1290~1360]은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전래한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의 손자로 문과 급제 후 판전교시사, 밀직부사 등을 지냈다. 안목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익지(益之), 호는 겸재(謙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밀직부사에 오른 안부(安孚), 할아버지는 문성공 안향, 아버지는 검교찬성사를 지낸 안우기(安于器)[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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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서 지방관을 지낸 문신이자 학자. 이황(李滉)[1501~1570]은 조선 전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서 풍기군수와 홍문관대제학 등을 지냈다. 특히 풍기군수로 있으면서 조정에 건의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사액 받았다. 또 영주 이산서원(伊山書院) 건립에 관여하였으며, 원규를 제정하였다. 이후 이황의 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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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우기(安于器)[1265~1329]는 밀직부사 겸 대사헌, 검교찬성사 등을 지낸 문신으로 아버지 안향(安珦)[1243~1306]을 이어 문재(文才)로 명성이 높았다. 안우기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허중(虛中), 호는 죽옥(竹屋), 시호는 문순(文順)이다. 할아버지는 주리(州吏)로 의업에 종사하다가 밀직부사에 오른 안부(安孚)이며, 아버지는 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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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문개(安文凱)[1273~1338]는 문과 급제 후 좌대언, 첨의참리, 찬성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안문개의 본관은 순흥(順興), 초명은 안균(安鈞), 자는 국평(國平), 호는 질재(質齋), 시호는 문의(文懿)이다. 아버지는 상호군 안성철(安成哲)이며, 어머니는 안천부(安天富)의 딸이다. 부인은 서희량(徐希亮)의 딸 복흥서씨(福興徐氏)이다. 아들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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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담(金淡)[1416~1464]은 세종 연간 문과 급제 후 집현전에서 활동한 문신이다. 왕명을 받아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 등을 편찬하였다. 김담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거원(巨源), 호는 무송헌(撫松軒),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아버지는 영유현령을 지낸 김소량(金小良)[1384~1449],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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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년 초간된 조선 전기 영주 출신 문신인 김담의 시문집. 『무송헌집(撫松軒集)』은 김담(金淡)[1416~1464]의 시문집으로 1644년(인조 22)에 초간되었다. 김담의 자는 거원(巨源), 호는 무송헌(撫松軒),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1435년(세종 17)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에서 활동하였으며, 이후 이조정랑·경주부윤·이조판서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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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축(安軸)[1282~1348]은 고려 문과와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하였으며, 밀직부사, 정치도감판사 등을 지냈다. 안축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안득재(安得財), 할아버지는 안희서(安希諝)로 모두 흥녕현(興寧縣)[지금의 영주시 순흥면]의 호장(戶長)을 지냈다. 아버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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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문정동(文亭洞)은 영주 시내 남서쪽에 있으며, 행정동은 가흥1동에 속한다. 자연마을로는 문전, 한정, 목골[牧谷, 牧溪], 서릿골[반곡], 성지미[성짐, 성잠] 등이 있다. 문정동 명칭은 문전(文田)마을과 한정(寒亭)마을에서 유래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천군 가흥면 상초동과 하초동을 병합하여 영주군 영주면 문정리가 되었다.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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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문천서당(文川書堂)은 1727년(영조 3) 금의(琴儀)와 정운경(鄭云敬)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향현사(鄕賢祠)가 효시이다. 금의의 본관은 봉화(奉化), 초명은 금극의(琴克儀), 자는 절지(節之)이며, 1220년(고종 7) 벽상공신에 책봉되었다. 금의는 문장이 뛰어나 ‘금학사(琴學士)’라고 불렸다. 정운경의 본관은 봉화(奉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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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문천서당(文川書堂)은 1727년(영조 3) 금의(琴儀)와 정운경(鄭云敬)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향현사(鄕賢祠)가 효시이다. 금의의 본관은 봉화(奉化), 초명은 금극의(琴克儀), 자는 절지(節之)이며, 1220년(고종 7) 벽상공신에 책봉되었다. 금의는 문장이 뛰어나 ‘금학사(琴學士)’라고 불렸다. 정운경의 본관은 봉화(奉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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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지역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문신. 하륜(河崙)[1347~1416]은 고려 말 조선 초 문신으로서 정사공신과 좌명공신에 녹훈되었다. 공민왕 연간에는 지영주군사로 부임하여 영주향교를 건립하는 등 영주 지역에서 많은 치적을 남겼다. 하륜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상서좌사낭중를 역임한 하공진(河拱辰)[?~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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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활동. 영주시는 어느 지역보다 덕망있는 학자를 많이 배출한 선비의 고장이다. 소백산 자락에 펼쳐진 영주는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안향(安珦)을 받들어 모신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으로 출발하여 조선시대 최초의 사학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발전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고장이며, 고려 공민왕 때 형부상서 정운경(鄭云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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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정도전(鄭道傳)[1342~1398]은 정몽주(鄭夢周)[1337~1392]와 더불어 고려 후기 신진사대부를 대표하는 인물로 이성계(李成桂)[1335~1408]를 도와 조선 개창을 주도하였다. 분의좌명개국공신(奮義佐命開國功臣)에 녹훈되었으며, 작위는 봉화백(奉化伯)이다. 정도전의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증오(曾吾), 호는 삼봉(三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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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원숭(安元崇)[1301~?]은 문과 급제 후 밀직부사, 양광도안렴사, 정당문학 등을 지냈다. 안원숭의 본관은 순흥(順興), 초명은 안정(安靖),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 할아버지는 검교찬성사를 지낸 안우기(安于器)[1265~1329], 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안목(安牧)[1290~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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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이루어지는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영상, 공연 등의 분야에서 표현되는 모든 활동과 그 작품. 소백산 자락에 있는 영주시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문화를 형성하였다. 선사시대의 영주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가흥동 암각화와 곳곳에 분포하는 고인돌과 선돌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특히 암각화는 영주문화의 오랜 역사성을 보여준다. 삼국시대 영주는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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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내림리에서 전해지는 물레를 돌릴 때 부르던 민요. 「물레 소리」는 길쌈에서 중요한 작업인 물레를 돌려 실을 만드는 과정을 부른 노동요이다. 예로부터 여성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여공지사(女功之事)] 중 하나가 바로 길쌈을 잘하는 것이었다. 영주시 이산면 내림리의 「물레 소리」는 물레를 의인화해서 부르는 것으로 노래가 시작하며, 귀머거리 삼 년, 눈멀어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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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내림리에서 전해지는 물레를 돌릴 때 부르던 민요. 「물레 소리」는 길쌈에서 중요한 작업인 물레를 돌려 실을 만드는 과정을 부른 노동요이다. 예로부터 여성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여공지사(女功之事)] 중 하나가 바로 길쌈을 잘하는 것이었다. 영주시 이산면 내림리의 「물레 소리」는 물레를 의인화해서 부르는 것으로 노래가 시작하며, 귀머거리 삼 년, 눈멀어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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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학자. 김륭(金隆)[1549~1594]은 박승임(朴承任)[1517~1586]과 이황(李滉)[1501~1570] 문하에서 수학한 학자이다. 이산서원과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이황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김륭의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도성(道成), 호는 물암(勿巖)이다. 아버지는 사재감참봉을 지낸 김응린(金應麟), 어머니는 참봉을 지낸 곽자보(郭子保)의 딸 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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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간행된 조선 전기 영주 출신 학자인 김륭의 시문집. 『물암집(勿巖集)』은 김륭(金隆)[1549-1594]의 시문집으로 1774년(영조 50)에 간행되었다. 김륭의 자는 도성(道盛), 호는 물암(勿巖), 본관은 함창(咸昌)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며,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을 지냈다. 좌승지로 추증되었고, 영주 삼봉서원(三峯書院)에 제향되었다. 1774년 이상정(李象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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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간행된 조선 전기 영주 출신 학자인 김륭의 시문집. 『물암집(勿巖集)』은 김륭(金隆)[1549-1594]의 시문집으로 1774년(영조 50)에 간행되었다. 김륭의 자는 도성(道盛), 호는 물암(勿巖), 본관은 함창(咸昌)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며,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을 지냈다. 좌승지로 추증되었고, 영주 삼봉서원(三峯書院)에 제향되었다. 1774년 이상정(李象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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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간행된 조선 전기 영주 출신 학자인 김륭의 시문집. 『물암집(勿巖集)』은 김륭(金隆)[1549-1594]의 시문집으로 1774년(영조 50)에 간행되었다. 김륭의 자는 도성(道盛), 호는 물암(勿巖), 본관은 함창(咸昌)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며,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을 지냈다. 좌승지로 추증되었고, 영주 삼봉서원(三峯書院)에 제향되었다. 1774년 이상정(李象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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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에 속하는 법정리. 미곡리(味谷里)는 영주시 풍기읍 14개 법정리 중 하나로 행정리는 미곡리 하나이다. 자연마을로는 안마, 웃마, 안맥기실, 바깥맥기실, 거리맥기길, 목기실(木器室), 모계실(牧鷄室) 등이 있다. 미곡리 명칭은 맥기실마을에서 유래했다. ‘맥기실’을 한자로 옮기면서 ‘미(味)’자를 사용하여 ‘미곡리’라 불리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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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유정(黃有定)[1343~?]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사환하였던 문신으로 초계군수·예조판서 등을 지냈다. 황유정의 초명은 지정(知定), 호는 미균(米囷),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황지정(黃之挺), 할아버지는 영해부사 황원로(黃原老)[1270~?]로 영천(榮川) 초곡[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조암동]에 정착하였다. 아버지는 성균관사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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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행해지는 시각적 미를 표현하는 예술 활동 및 그 결과물. 미술은 시각적, 조형적 형태로 미적 표현양식을 드러내는 예술의 한 종류이다. 영주 지역은 고대사회에서부터 다양한 미술 활동의 무대가 되어 조각, 그림, 건축, 공예 등의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다. 영주시의 전통미술은 삼국시대의 작품으로부터 확인된다. 삼국시대 미술은 고분벽화와 불교미술로 대표되는데 영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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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학자. 송상도(宋相燾)[1871~1946]는 한학자로서 『기려수필(騎驢隨筆)』을 저술하였다. 송상도의 본관은 야로(冶爐), 자는 성소(聖韶), 호는 기려자(騎驢子)·미헌(眉軒)·연파(蓮坡)이다. 시조 송맹영(宋孟英)의 26세손으로 1871년 4월 12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휴천동 광승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송상도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여 권상익(權相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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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전승되는 초월적인 자연신에 대한 믿음과 의례. 민간신앙은 민간에서 전승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인식과 믿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례와 각종 행위를 가리킨다. 민간신앙은 크게 마을에서 공동의 신을 모시고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비는 마을신앙, 개인 가정의 평안을 염원하는 가신신앙, 초자연적인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무속신앙이 있다. 민간신앙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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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민간에 전승되고 있는 생활풍속. 영주 지역의 민속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전통적인 요소들부터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해온 것까지 그곳에서 살아온 영주 시민들에 의해 유지되고 이루어진 기층문화라 할 수 있다. 민속의 분야는 크게 민간신앙, 평생 의례, 세시풍속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영주 지역의 민간신앙은 마을 단위로 이뤄지는 마을신앙과 각 집안에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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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전해지는 지역의 풍습과 생활상이 반영된 놀이. 민속놀이는 지역의 풍습과 지역민의 생활상이 반영된 유희를 말한다. 흔히 전통놀이의 개념과 혼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민속’과 ‘전통’이 가리키는 개념과 범주에는 차이가 있다. 민속놀이에서 ‘민’이 가리키는 것은 국가, 관, 사족과 대비되는 대중을 의미하는 공시적 범주지만, 전통놀이에서 ‘전통’이 가리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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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지역에서 민중들이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 등을 표현한 노래. 민요(民謠)는 민중의 사상과 감정을 노래로 표현한 것으로 양반 사대부들이 한문으로 된 시가(詩歌)를 통하여 자신들의 정서를 표현하였다면, 일반 서민들이 중심이 된 기층(基層) 민중들은 문자의 습득이 거의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양반과 같은 문자 생활을 향유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그때그때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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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민응기(閔應祺)[1530~?]는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광해군의 왕자사부를 지낸 문신이다. 민응기의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백향(伯嚮), 호는 우수(尤叟)·경퇴재(景退齋)이다. 아버지는 생원 민시원(閔蓍元),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 할아버지는 진사 민우삼(閔友三), 증조할아버지는 생원 민소(閔紹)이다. 부인은 창원황씨(昌原黃氏)이다. 민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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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륵(金玏)[1540~1616]은 문과 급제 후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황(李滉)[1501~1570]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김륵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栢巖), 시호는 민절(敏節)이다. 아버지는 생원 김사명(金士明), 어머니는 창원황씨(昌原黃氏)인데, 형조좌랑을 지낸 큰아버지 김사문(金士文)[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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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열부. 민조현(閔祚顯)의 처 반남박씨(潘南朴氏)[1796~?]는 죽음을 무릅쓰고 절개를 지켰던 열부이다. 영주 선비촌에 박씨 부인의 열부각(烈婦閣)이 세워져 있다. 민조현의 처 반남박씨는 사간원대사간을 역임한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1517~1586]의 후손으로 박사건(朴師騫)[1796~1820]의 딸이다. 반남박씨는 1812년(순조 12) 17세에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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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결성된 비밀결사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광복단의 활약상. 1915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가 결성되었다. 대한광복회는 영주의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과 대구의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이 통합된 비밀결사 독립운동 단체이다. 대한광복회는 국외 독립운동 단체 지원 및 독립군 양성에 목적을 두고 군자금 모집과 무기 구입에 전력하였으며,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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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45년까지 영주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해방운동. 영주 지역의 독립운동(獨立運動)은 1895년(고종 32) 을미의병에서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1895년 을미의병기 영천(榮川)·풍기·순흥에서는 의병진이 결성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05년 이후 을사의병과 1907년 이후 정미의병에서 대일항전이 전개되었다. 1910년대 전반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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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휴천동에 있는 한국작가회의 소속 영주 지역 문학단체. 한국작가회의 영주지부는 2001년 5월 10일 설립된 영주 지역의 문학단체이다. 매년 문예지인 『영주작가』를 출간하고 있으며, 영주 지역 문학 발전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영주지부는 한국작가회의가 지향하는 문학정신을 옹호·실천하며 지역 문학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설립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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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45년까지 영주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해방운동. 영주 지역의 독립운동(獨立運動)은 1895년(고종 32) 을미의병에서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1895년 을미의병기 영천(榮川)·풍기·순흥에서는 의병진이 결성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05년 이후 을사의병과 1907년 이후 정미의병에서 대일항전이 전개되었다. 1910년대 전반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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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45년까지 영주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해방운동. 영주 지역의 독립운동(獨立運動)은 1895년(고종 32) 을미의병에서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1895년 을미의병기 영천(榮川)·풍기·순흥에서는 의병진이 결성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05년 이후 을사의병과 1907년 이후 정미의병에서 대일항전이 전개되었다. 1910년대 전반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