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3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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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韓光復團 |
영어공식명칭 | Daehangwangbokdan(Corps for the Restoration of Korean Independence) |
이칭/별칭 | 풍기광복단,광복단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설립 시기/일시 | 1913년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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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15년 7월 15일![]() |
개칭 시기/일시 | 1915년 7월 15일![]() |
최초 설립지 | 대한광복단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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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독립운동단체 |
설립자 | 채기중|전원식|정성산 등 |
1913년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채기중을 중심으로 설립된 항일 비밀결사.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은 1913년 1월 채기중(蔡基中)을 비롯해 전원식(全元式)·정성산(鄭星山) 등 10여 명이 경상북도 풍기군[지금의 영주시 풍기읍]에서 결성한 비밀결사조직이다.
1910년 한일합방과 함께 의병투쟁이나 계몽운동을 전개했던 민족지사들은 국권 회복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기반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따라서 1910년 이후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참여하려는 민족지사들의 만주 이주는 계속 이어졌고, 한편으로는 만주로 건너갔던 민족지사들이 국내로 잠입하여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따른 인적·물적 지원을 목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과정에서 대한광복단을 비롯해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 민단조합(民團組合),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등과 같은 비밀결사조직이 국내에서 결성되었다.
대한광복단은 풍기에서 결성한 비밀결사 조직으로 전국의 의병장 및 용력(勇力)을 갖춘 인사들이 참여하였다. 주요 단원으로는 채기중[상주]·유창순(庾昌淳)[천안]·류장렬(柳璋烈)·한훈(韓焄)[청양]·강순필(姜順必)[혹 강병수(姜秉秀), 풍기]·김병렬(金炳烈)·정만교(鄭萬敎)·김상오(金相五)·정운홍(鄭雲洪)[괴산]·정진화(鄭鎭華)[예천]·장두환(張斗煥)[천안]·황상규(黃尙奎)[밀양]·이각(李覺) 등이 있다. 이들은 대한광복단 결성 초기 단원들로 의병 출신 인물이거나 『정감록(鄭鑑錄)』에서 십승지지로 지목한 풍기를 찾아 우거한 인사들이다. 특히 의병 출신의 강순필·정진화 등 경북 북부 지역 출신자들은 이강년 의진의 의병이었고, 유창순·한훈 등은 민종식(閔宗植)의 홍주의진(洪州義陣) 출신의 의병이었다. 대한광복단은 1915년 7월 15일 대구에서 결성된 조선국권회복단의 일부 인사와 결합하여 대한광복회로 발전하였다.
대한광복단은 혁명기관을 표방하였다. 혁명기관이란 무력투쟁을 통해 독립을 달성하겠다는 독립운동 단체를 뜻한다. 1911년 전개된 중국의 신해혁명과 같이 새로운 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았다. 이에 대한광복단은 국내에서 군자금 및 청장년을 모집하여 만주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지원하였다. 특히 이들은 서간도에 독립운동기지를 개척하던 망명 지사들과 직접 연락을 취하며 왕래하였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광산이나 친일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것은 국내에 기반을 둔 독립운동 단체가 비밀결사활동을 통해 국외의 독립운동기지를 지원함으로써 항일독립운동의 국민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투쟁 방략에 따른 것이었다.
1910년대 만주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국외 독립운동 세력과 연락을 취하며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국외의 독립운동기지를 지원함으로써 항일독립운동의 국민적 기반을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