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382
한자 榮州石橋里石造如來立像
영어공식명칭 Stone Standing Buddha in Seokgyo-ri, Yeongju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회헌로1010번길 23-49[석교리 158]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제116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재지정
현 소장처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회헌로1010번길 23-49[석교리 158]지도보기
원소재지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회헌로1010번길 23-49[석교리 158]
성격 불상
재질 석재
크기(높이) 높이 2m
소유자 국유
관리자 영주시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불상.

[개설]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榮州石橋里石造如來立像)영주시 순흥면 석교리 승림사지(僧林寺址)에 있는 9세기경의 불상이다. 대형의 자연석을 깎아서 만든 입상으로 팔과 다리의 입체성이 반영되지 않은 투박한 형태의 불상이다. 승림사지에는 석조여래입상 외에도 석조물과 연화대좌, 석불좌상 1구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주변이 경작지로 변했다. 대좌석으로 알려진 석조물 1점과 용도 불명의 치석재(治石材) 1점이 확인되고 있으며, 와편이 드물게 눈에 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순흥면행정복지센터 내에 있는 머리를 잃은 석불좌상 1구와 봉서루 옆에 쌓아둔 석조물들이 승림사지에서 옮겨온 것이라도 한다.

[형태]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의 크기는 2m에 이르며, 현재 보호각에 봉안되어 있다. 보호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작은 기와집으로 벽면이 없고 4개의 기둥과 기둥 사이를 낮은 목책이 이어주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약간 경사진 지표면에 자연석으로 낮게 석축을 쌓고, 시멘트를 발라 평탄하게 하고 그 위에 보호각을 세웠다.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은 보호각 중앙에 사각형의 화강석 대좌 위에 봉안하였다.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은 머리가 절단되고 왼팔이 파손된 모습이지만, 전반적인 형태로 보았을 때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훼손은 심한 편이지만 전체적인 표현 양식과 세부 묘사는 아직도 생동감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순흥면행정복지센터 내에 보관된 영주 읍내리 석불입상(榮州邑內里石佛立像)[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과 거의 흡사한 형태를 보이는데, 가슴을 완전히 가린 통견의, 한 손을 몸에 밀착시킨 손 모양, 평행 계단식의 옷 주름 표현, 하체에 보이는 동심 타원형의 주름까지 같은 형상이다. 불두는 목 부위가 절단된 것을 보수하였다.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 머리에는 큼직한 육계가 솟아 있어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이다. 안면 각 부문과 귀에 약간씩의 손상을 입었으나 얼굴은 둥글고 복스럽다. 명확한 눈썹, 온화한 눈, 적당한 크기의 입은 석조여래입상을 원만하고 온화하게 만들고 있다. 귀는 파손되었고 목은 가는데 삼도가 뚜렷하다. 몸체는 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 양감 있는 허벅지 등 신체의 굴곡이 강조되었고 전체적인 비례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몸에 꼭 붙여 옷자락을 잡은 오른팔이나, 처진 어깨 등에서는 다소 어색하고 긴장감이 줄어든 느낌이다.

법의는 통견인데 팔에 걸친 옷자락은 유려하며 맵시 있게 처리되어 있다. 가슴을 둥글게 만들고 있는 옷깃은 굵다란 철선으로 독특한 것이며, 이런 특이한 의문은 무릎을 중심으로 한 동심 타원형에서 현저히 나타나고 있다.

[특징]

양감과 긴장감이 넘치는 신체, 유연한 자세 등의 특징을 가진 8세기 중엽의 불상 양식보다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은 신체가 경직되어 가고, 옷 주름 표현이 이완되었으며, 형식화되어 가는 점 등에서 시대적인 변모를 느낄 수 있다. 아울러 9세기 이후로 추정되는 불상들보다 덜 도식화된 양식이라는 점에서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의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16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영주에 2m 규모로 세워진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은 통일신라 후기 불교가 지방으로 보급된 결과이다. 새로운 신앙층이 대두함에 따라 불상 조성의 필요성이 생겼으나, 석조 제작기술이 아직 미숙했던 지역의 조각이기에 주목된다.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의 균형이 맞지 않는 머리와 신체, 양감이 없이 경직된 상반신, 미숙한 옷 주름 처리가 이를 말해준다. 다리에 새겨진 타원형의 주름은 신라 하대의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居昌陽平里石造如來立像)[보물 제377호]이나,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咸安大山里石造三尊像)[보물 제71호], 고려 중기의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牙山坪村里石造藥師如來立像)[보물 제536호]과 비교할 만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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