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452
한자 榮州迎薰亭
영어공식명칭 Yeonghunjeong Pavilion, Yeongju
이칭/별칭 남정자(南亭子)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광복로 65[영주동 19-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태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468년연표보기 - 영주영훈정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644년 - 영주영훈정 중건
이전 시기/일시 1910년 - 영주영훈정 현 위치로 이건
문화재 지정 일시 2002년 2월 14일연표보기 - 영주영훈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14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영주영훈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재지 영주영훈정 - 경상북도 영주시 광복로 65[영주동 19-1]지도보기
원소재지 영주영훈정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문단리
성격 정자
양식 겹처마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영주시
관리자 영주시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영주동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

[개설]

영주영훈정(榮州迎薰亭)정종소(鄭從韶)가 외부에서 오는 사신을 맞이할 목적으로 건립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현 위치인 영주시 영주동으로 이건하였다.

[위치]

영주영훈정영주시청에서 북쪽으로 3.29㎞ 거리에 있는 영주시의회 안에 있다. 영주시청 정문에서 시청로를 따라 약 1.6㎞ 이동 후, 영주우체국과 구성오거리를 지나 번영로를 타고 약 400m 직진하면 정면에 영주초등학교가 나온다. 영주시의회영주초등학교 오른쪽 뒤에 있으며, 영주영훈정영주시의회 사무실 서쪽에 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변천]

영주영훈정은 1468년(세조 14) 군수 정종소가 건립하였는데, 처음에는 ‘남정자(南亭子)’로 불렸다. 영훈정은 중간에 폐지되었다가 1644년(인조 22) 신숙(申淑)이 농한기를 틈타 선비 박문범(朴文范)·송영발(宋榮發)·권창업(權昌業)·이문욱(李文郁) 등에게 공사 감독을 명령하여 중건하였다. 1910년 현재 위치로 옮겨 세웠다.

[형태]

영주영훈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사방이 개방되어 있으며 마루의 바닥은 우물청판을 깔았고 마루 끝 가장자리는 난간을 설치하였다. 오른쪽 뒤 칸에 중층에 오를 수 있는 가파른 사다리 계단을 설치하였다. 중층의 하부 기둥은 덤벙주초 위에 12개의 원주(圓柱)를 3열로 배치하였고, 상부는 가운데 기둥 없이 10개의 원주를 세웠다. 천장은 서까래를 노출시키고 연등천장으로 꾸몄으며, 건실한 목재를 사용하여 당시의 투박한 치목 수법이 돋보인다. 김응조(金應祖)가 쓴 「영훈정중건기(迎薰亭重建記)」에 따르면 ‘영천(榮川)의 누정 가운데 그 아름다움이 영훈정을 따를 데가 없다’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매우 아름다운 정자였다.

[현황]

영주영훈정은 2002년 2월 14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1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이 밖에 「쌍청당(雙淸堂)」·「범향정(泛香亭)」 등의 현판과 정종소의 「향서당기(鄕序堂記)」가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영주영훈정은 조선 후기 보편화되었던 각 문중의 정자와는 달리 관청용으로 건립하였던 점이 특이하다. 비록 건물이 일제강점기 이후 관청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하여 칸막이를 한 흔적들로 가구의 결구가 다소 이완되고 일부 퇴락하였지만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당시의 건축양식을 이해하고 건축 수법을 연구함에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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