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471
한자 榮州浮石寺無量壽殿
영어공식명칭 Muryangsujeon Hall of Buseoksa Temple, Yeongju
이칭/별칭 부석사 무량수전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48]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376년 -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16년 -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해체·수리
문화재 지정 일시 1962년 12월 20일연표보기 -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국보 제18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국보 재지정
현 소재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48]지도보기
원소재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48]
성격 불전
양식 주심포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부석사
관리자 부석사
문화재 지정 번호 국보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소재 부석사 경내에 있는 고려 후기 불전.

[개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榮州浮石寺無量壽殿)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주심포식 팔작지붕으로 배흘림기둥 구조로 되어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부석사의 중심 건물이다.

[위치]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영주시 부석면 북지리에 소재한 부석사 경내에 있다.

[변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신라 문무왕 때 짓고 고려 현종 때 고쳤으나, 1358년(공민왕 7)에 불에 타 버렸다.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는데, 이때 발견된 묵서명에는 원융국사(圓融國師)[964~1053]가 1376년(우왕 2)에 중수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연대상 서로 차이가 난다. 이는 당시 주지로 있었던 원응국사(圓應國師)를 오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미루어 보아 대략 1376년 이전에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7세기 전반의 광해군 연간에 새로 단청하였다.

또 기단의 동쪽 석면에 새겨진 명문에는 충원적화면(忠原赤花面)의 석공인 김애선(金愛先)이 기단석을 정리했다고 되어 있다. 1916년 무량수전의 해체 수리 때 대들보에서 금동약사불입상을 비롯한 20여 구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13구의 불상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형태]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는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善妙)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 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앉았다고 전한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 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지대석·면석·갑석 등을 잘 다듬어 조성한 가구식(架構式)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화강석의 높은 기단 위에 남쪽을 향해 서 있는데, 정면 중앙의 3곳에 돌계단을 두었다. 평면구조는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이며 배흘림이 뚜렷한 기둥이 받치고 있다. 정면에는 칸마다 살창을 달고, 측면은 벽으로 막았으며 뒷벽에는 가운데에 판문과 그 좌우로 붙박이 살창을 달았다. 공포는 기둥 위에 첨차와 살미[山彌]를 층층이 짜 올린 주심포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첨차 끝부분이 쌍‘S’자형의 곡선으로 된 것이 특징이다.

가구 구조는 2고주 9량 형식이다. 툇보는 고주의 머리 부분에 결구 되어 헛첨차가 받치고 있으며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가늘어진다. 툇보 머리는 소첨차와 십자로 짜이면서 짧은 장여와 외목도리를 받도록 했다. 고주 위에는 공포를 짜서 충방(衝枋)을 결구하고 그 위에 초공(草工)을 놓은 후 대들보를 걸었다. 대들보 위에는 충방과 초공을 놓고 종보[마룻보]를 걸었으며, 소슬합장이 종보 위에서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추녀 하부에는 활주를 세워 받쳤다. 천장은 상부의 부재들을 모두 노출한 연등천장이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전돌을 깔고, 불상 위에는 닫집[唐家]을 설치하여 장엄하다.

[현황]

일반적인 불전은 건물 중심에 불단을 놓고 불상을 건물의 방향과 같게 한다. 그러나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불단을 건물 서쪽에 치우쳐 배치하고 불상이 동쪽을 향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내부 바닥에는 본래 녹유전[유약을 바른 전돌]을 깔았었다. 이것은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에 있고 극락세계는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불경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8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 공포의 구성 형식, 가구재의 구성 등에서 주심포 건물의 기본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과 비교할 때 장식적인 요소가 적으면서 목조 건축의 형태미와 비례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고려시대 건물 중 하나로서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 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과 함께 고려시대 불전 연구에 중요한 건축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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