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477
한자 裵純旌閭碑
영어공식명칭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Bae Su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죽계로293번길 16[배점리 18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태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534년 - 배순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614년 - 배순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15년연표보기 - 배순 정문 건립
건립 시기/일시 1649년연표보기 - 배순정려비 건립
보수|복원 시기/일시 1695년 - 배순정려비 보수
문화재 지정 일시 1993년 2월 25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9호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배순정려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배순정려비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죽계로293번길 16[배점리 181]지도보기
성격 정려비
관련 인물 배순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93㎝[높이]|42㎝[너비]|14.5㎝[두께]
소유자 경상북도교육감
관리자 경상북도교육감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비.

[개설]

배순정려비(裵純旌閭碑)배순(裵純)[1534~1614]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정려비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고자 그들이 살았던 고을에 세운 비를 말한다. 배순은 어릴 때 예안에 거주하였으나 만년에 풍기로 옮겨와 살았다고 한다. 배순은 대장일[冶匠]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배순이 예안에 살 때부터 이황을 흠모하였는데,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소수서원에서 유생들에게 강론할 때 무릎 꿇고 뜰아래에서 참가하였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이황이 다른 제자들과 함께 가르쳤다고 한다. 그 후 이황이 세상을 떠나자 그 소식을 들은 배순은 철상(鐵像)을 만들어 기리며 삼년복을 입어 제자의 예를 다하였다. 또한, 선조의 국상 때에는 7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삼년복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건립 경위]

배순정려비는 1614년(광해군 6) 풍기군수 이준(李埈)이 정려를 올려, 1615년 5월에 정문이 세워졌다. 1649년(인조 27) 3월에 손자 배종(裵種)이 영주 지역의 문사인 단곡(丹谷) 곽진(郭晋)에게 부탁하여 비문을 쓰고 정려비를 함께 세웠다. 1695년(숙종 21)에 배순의 7대 외손 임만유(林晩維)가 ‘충신백성(忠臣百姓)’이란 말을 넣어 고쳐 세웠는데 현재 남아 있는 비석이 이것이다.

[위치]

순흥면행정복지센터에서 북쪽으로 지방도제931호선을 따라 300m가량 이동하면 읍내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서 북서쪽 도로로 3.1㎞ 정도 이동하면 순흥저수지를 지나 순흥초등학교 배점분교[폐교]가 나오는데, 배순정려비는 순흥초등학교 배점분교 동쪽 끝, 배점마을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배점마을배순이 대장간을 하던 마을이라 하여 ‘배점(裵店)’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배순정려비 옆에는 ‘삼괴정(三槐亭)’이라 불리는 느티나무가 서 있다.

[형태]

배순정려비는 높이 93㎝, 두께 14.5㎝, 너비 42㎝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사각의 대좌 위에 비신이 설치되었고 이수[용의 형체를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는 없다.

[금석문]

배순정려비 전면에는 ‘충신백성배순지려 선조대왕삼년상복(忠臣百姓裵純之閭宣祖大王三年喪服)’이라 적혀 있고, 뒷면에는 단곡 곽진의 글을 7대 외손인 임만유가 1695년 새겼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현황]

배순정려비는 1993년 2월 25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9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배점마을 주민들은 배순을 동신(洞神)으로 모시고 매년 음력 1월 14일 자정 배순 정려각에서 동제를 지내고 있는데, 그 역사가 400년에 이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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