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527
한자 冶城宋氏
영어공식명칭 Yaseong So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기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454년 - 입향조 송석충 출생
입향 시기/일시 1498년연표보기경 - 송석충 입향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524년 - 입향조 송석충 사망
본관 야성송씨 -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입향지 야성송씨 입향조 송석충 입향지 - 경상북도 영주시 휴천동 지도보기
성씨 시조 송맹영
입향 시조 송석충

[정의]

송맹영을 시조로 하고 송석충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주시의 세거 성씨.

[개설]

야성송씨의 본관 야성(冶城)은 오늘날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陜川郡 冶爐面)이다. 야성송씨의 시조는 송맹영(宋孟英)으로 고려시대 간의대부(諫議大夫)와 총부의랑(摠部議郞)을 지내고 야성군(冶城君)에 추증되었다. 야성송씨의 영주 입향조는 송석충(宋碩忠)[1454~1524]이다.

[연원]

야성송씨 시조 송맹영은 고려 목종 시기에 간의대부와 총부의랑을 지내고 야성군에 봉해진 이후 야성현에서 9대까지 세거하면서 고려시대 주요 관직에 오르는 인물을 배출했다. 10세 송구(宋構)가 경기관찰사, 11세 송길창(宋吉昌)이 개성윤(開城尹), 12세 송천우(宋千祐)가 판결사를 역임하였으며, 13세 송수겸(宋守謙)이 현감 겸 권농병마단련관을 지냈다. 송수겸은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이로써 5개 파로 분파되어 전국적으로 세거하게 되었다.

[입향 경위]

야성송씨 송윤(宋綸)은 시조의 14세손으로 세조 때 무과에 급제해 돈녕부주부, 문의현령, 사복시주부, 개성부도사, 영유현령 등을 지냈다. 그의 아들 송석충은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의 기미가 보이자 비운을 면할 길이 없다고 판단해 한성(漢城)의 호현방(好賢坊)에서 처가가 있는 당시의 강주(剛州) 봉향면 휴천리에 은거한 것을 계기로 영주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송석충의 네 아들이 4개 파로 분파되어 영주 각지에 마을을 개척하면서 영주 지역에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야성송씨 입향조 송석충의 아들 4형제가 영주의 4개 파로 분파된 이후 영주 각지로 이거와 분촌을 거듭하여 현재는 영주시 광승·원당·문정·목동·성잠, 영주시 장수면 가천·갈산·송호·반구, 영주시 이산면 두월·창팔·원천, 영주시 부석면 도봉, 영주시 풍기읍, 영주시 봉현면 등지에 그 후손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관련 유적]

야성송씨 문중은 영주 각지에 사우와 누정을 가지고 있다. 사우로는 산천서당(山泉書堂), 산천서원(山泉書院), 세덕사(世德祠), 창계이사(昌溪里社), 누정으로는 만대정(晩對亭), 송고정(松皐亭), 심원정(心遠亭), 체락정(栘樂亭), 원천정(源泉亭), 광승정(廣昇亭)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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