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534
한자 下望洞丹陽禹氏集姓村
영어공식명칭 Danyang U Clan's Collective Village in Hamang-dong
이칭/별칭 용암대마을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하망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중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가구수 10여 가구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하망동에 있는 단양 우씨 집성촌.

[개설]

단양우씨(丹陽禹氏)는 충청북도 단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단양우씨의 시조는 우현(禹玄)으로 고려시대에 정조호장을 지냈고 문하시중평장사에 추증되었다. 단양우씨는 우중대(禹仲大)의 맏아들 7세손 우천규(禹天珪)가 문하시중평장사를, 둘째 아들 우천계(禹天啓)가 판서, 셋째 아들 우천석(禹天錫)이 문하시중에 오르는 등 모두 현달하였다.

[명칭 유래]

용암대마을의 앞산에는 집채만 한 큰 바위가 있는데 이를 ‘용암대(龍巖臺)’라고 부른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고려 말에 단양우씨 일족이 이곳에 터전을 이루어 살면서 마을 앞 산기슭에 있는 거대한 바위를 보고 ‘용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이 바위는 마치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꼬리는 남동쪽으로 길게 뻗치어 있다. 그래서 용(龍) 자와 암(巖) 자를 써서 ‘용암대’라고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단양우씨 종중에 따르면 용암대마을은 고려 말 역동(易東) 우탁(禹倬)[1262~1342]의 현손인 우숭려(禹崇呂)가 안동 예안으로 낙남(落南)하였다가 영천의 동쪽 용암대에 터를 잡고 마을을 개척하여 입향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당시의 우거진 숲을 헤치고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용암서당을 지어 자제 교육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고 한다. 마을 사람 중에는 우숭려가 마을에 처음 정착한 곳이 현 송암정사 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단양우씨가 마을을 개척한 뒤 100년 후에는 예천임씨가 들어와 함께 세거했다고 한다.

[자연환경]

영주시 하망동 용암대마을은 회명산 자락과 마을 앞을 흐르는 용암천 사이에 있으며, 회명산 중턱의 영주고등학교에 연이어 산자락을 따라 길쭉하게 자리 잡은 형태이다. 용암대마을은 육각정을 기준으로 거랫마와 안마로 구분된다.

[현황]

2015년 기준으로 영주시 하망동 용암대마을은 50여 호에 120명이 살고 있다. 그중 단양우씨의 가구는 10여 호, 예천임씨는 5~6호 정도라고 한다.

[참고문헌]
  • 『영주시사』 4(영주시사편찬위원회, 2010)
  • 영주시민신문(http://www.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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