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공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551
한자 康公萱
영어공식명칭 Gang Gong-hwon
이칭/별칭 공훤(公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위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929년 - 강공훤 왕건 구원을 위해 출정
활동 시기/일시 936년 - 강공훤 일리천 전투 출정
거주|이주지 강공훤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지도보기
부임|활동지 강공훤 활동지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지도보기
성격 호족
성별
대표 관직 지기주제군사상국|시중|대장군

[정의]

남북국시대 영주 출신의 호족.

[개설]

강공훤(康公萱)은 남북국시대 풍기 지역 호족으로 왕건(王建)[877~943]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웠다.

[가계]

강공훤의 생몰 연대와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강공훤은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공훤(公萱)’이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939년(태조 22)에 세워진 「보리사대경대사탑비(菩提寺大鏡大師塔碑)」에는 기주(基州)의 지주제군사(知州諸軍事)로 ‘강공훤’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강공훤공훤과 동일 인물로 해석하고 있다.

[활동 사항]

강공훤은 통일신라 말기 풍기 지역에서 지기주제군사상국(知基州諸軍事相國)을 지낸 호족이었다. 선종 9산문 중 하나인 성주산문(聖住山門)의 여엄(麗嚴)이 909년(효공왕 13) 당나라에서 귀국한 후 전란을 피해 소백산에 은거하고 있을 때, 여엄의 덕을 흠모하여 귀의했다고 한다. 이후 강공훤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여엄을 추천하였고, 태조는 여엄을 경기도 양평의 보리사(菩提寺)에 주석하게 하였다.

927년(태조 10) 9월 견훤(甄萱)이 갑자기 신라를 습격하여 경주 가까이에 이르자, 신라 경애왕이 사람을 보내 태조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태조는 당시 시중(侍中)이었던 강공훤을 비롯해, 대상(大相) 손행(孫幸), 정조(正朝) 연주(聯珠) 등과 군사 1만을 거느리고 출정하였다. 929년 12월에는 견훤이 고창군(古昌郡)[현 안동시]을 포위하자 태조가 이를 구하기 위해 출정하였다. 이때 강공훤도 참전하였는데, 태조는 만약 싸움에서 질 경우를 대비해 퇴로를 묻자 대상 강공훤과 홍유(洪儒)[?~936]는 미리 샛길을 닦아두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으나, 유금필(庾黔弼)[?~941]은 싸우지도 않고 패할 것을 염려하는 것은 잘못이며, 급히 진군하여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935년(태조 18) 4월 나주의 사십여 군이 후백제의 침략을 받아 해로가 막히자, 태조는 신하들에게 이곳을 진무할 사람을 천거하게 했다. 이에 강공훤은 여러 공경과 함께 유금필을 천거하여 나주 지역을 경략하게 하였다. 936년 9월 일리천(一利川)[현 구미시 일대]에서 태조 왕건이 후백제 신검(神劒)[?~936] 군과 맞붙었을 때, 대장군이자 대상이었던 강공훤도 함께 전투에 참전하여 신검 군의 항복을 받는 데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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