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우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557
한자 安于器
영어공식명칭 An U-gi
이칭/별칭 허중(虛中),죽옥(竹屋),문순(文順)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위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265년연표보기 - 안우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282년 - 안우기 과거 급제
활동 시기/일시 1282년 - 안우기 한림원비서 및 통례문지후 임명
활동 시기/일시 1301년 - 안우기 국학좨주 임명
활동 시기/일시 1304년 - 안우기 우부승지 역임
활동 시기/일시 1305년 - 안우기 우승지 및 밀직부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316년 - 안우기 파직
몰년 시기/일시 1329년연표보기 - 안우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22년 - 안우기 용연사 제향
거주|이주지 안우기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지도보기
묘소|단소 안우기 묘소 -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눌목리
사당|배향지 용연사 -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용산리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순흥(順興)
대표 관직 밀직부사|대사헌|검교찬성사

[정의]

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개설]

안우기(安于器)[1265~1329]는 밀직부사 겸 대사헌, 검교찬성사 등을 지낸 문신으로 아버지 안향(安珦)[1243~1306]을 이어 문재(文才)로 명성이 높았다.

[가계]

안우기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허중(虛中), 호는 죽옥(竹屋), 시호는 문순(文順)이다. 할아버지는 주리(州吏)로 의업에 종사하다가 밀직부사에 오른 안부(安孚)이며, 아버지는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전래한 문성공 안향이다. 어머니는 한남김씨(漢南金氏)로 우사간 김녹연(金祿延)의 딸이다. 첫 번째 부인은 전첨 최충약(崔冲若)의 딸로 두 아들을 두었는데, 큰아들은 혜감국사 만항(萬恒)[1249~1319]에게 출가해 대선사가 된 정음(頂音)이며, 둘째 아들은 밀직부사를 역임한 안목(安牧)[1290~1360]이다. 두 번째 부인인 이씨와 사이에서는 노부도감판관을 지낸 안신(安愼)과 이름이 전하지 않는 아들 하나를 두었다.

[활동 사항]

안우기는 1282년(충렬왕 8) 18세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282년 한림원비서를 거쳐 통례문지후에 임명되었다. 그 후 5년간 고공정랑, 비서, 소윤, 지제고, 병조총랑, 사림원대제, 보문각대제, 국학전주, 판내영비서시사 겸 한림시강사학, 지제지 등을 역임하였다. 1301년(충렬왕 27) 국학좨주로 있으면서, 최응(崔凝)과 함께 생원을 뽑는 승보시(升補試)를 주관하였다. 1304년 우부승지를 거쳐, 곧 우승지에 올랐다. 1305년 국자감시를 주관하였으며, 얼마 후 밀직부사 문한사학승지로 승진하였다.

안우기는 1314년(충숙왕 1) 지밀직을 지내고 있을 때, 박사 류연(柳衍), 학유 유적(兪迪) 등이 중국 강남에서 새로 사들여온 경적 1만 800권을 검열하였고, 또 성균관의 유생들에게 경학시험을 치르게 하였다. 1316년 당시 왕위에서 물러나 있던 충선왕에 의해 밀직부사 겸 대사헌에서 파직되고, 후임으로 충선왕이 총애하던 조후(趙珝)[1278~1325]가 임명되었다. 충선왕은 예전에 안향이 자신을 호종해서 원나라에 갔다가 곧 귀국해 버린 것에 대하여 불쾌한 감정이 있었는데, 그것을 빌미로 안향의 아들 안우기를 파직시켰다. 이때 많은 식자가 안우기의 파직을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 후 복귀하여 합포[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군대를 지휘하였는데, 청렴하고 재간이 있다는 칭송을 받았다. 1329년(충숙왕 16) 검교찬성사 재임 중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안우기의 묘소는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눌목리 대덕산에 있는데, 아버지 안향의 묘소 오른편에 있다.

[상훈과 추모]

안우기는 1822년(순조 22) 지금의 영주시 안정면 용산리에 건립된 용연사(龍淵祠)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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