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602
한자 金龍範
영어공식명칭 Kim Yong-beom
이칭/별칭 천서(天敍),묵재(默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55년연표보기 - 김용범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98년 - 김용범 식년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810년 - 김용범 예조좌랑 제수
몰년 시기/일시 1810년연표보기 - 김용범 사망
거주|이주지 김용범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묘소|단소 김용범 묘소 -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연안(延安)
대표 관직 성균관전적|예조좌랑|사직서령

[정의]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개설]

김용범(金龍範)[1755~1810]은 1798년(정조 22)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예조좌랑·사직서령 등을 지낸 문신이다.

[가계]

김용범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천서(天敍), 호는 묵재(默齋)이다. 아버지는 김택연(金宅延), 어머니는 생원 전필기(全必錡)의 딸 옥천전씨(沃川全氏), 할아버지는 김수규(金守槼), 증조할아버지는 김식(金㵓)이다. 부인은 김용한(金龍漢)의 딸 예안김씨(禮安金氏)이다.

[활동 사항]

김용범은 문장이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1779년(정조 3) 고향 영천(榮川)에서 향시를 치러 떠날 때 아버지 김택연이 뒤를 따랐는데, 냇물을 건너다 갑자기 내린 폭우로 물이 넘쳐 휩쓸려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김용범은 여러 날 동안 밤낮으로 물과 모래를 더듬으며 아버지를 찾았다. 그러는 동안 손가락의 손톱이 모두 없어지고 몸이 약해졌지만, 주위의 만류에도 그치지 않았다. 결국, 1780년 6월에야 아버지 김택연의 시신을 찾은 후 장사를 지낼 수가 있었다. 당시 영천군수는 홍대용(洪大容)[1731~1783]이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부의를 후하게 하고, 역군(役軍)을 보내 장사를 도와주었다고 한다.

김용범은 1798년(정조 22)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승문원부정자·성균관전적·사직서령을 거쳐 1810년(순조 10) 예조좌랑에 임명되었다.

[학문과 저술]

김용범의 문집으로 2권 1책의 『묵재집(黙齋集)』이 전한다.

[묘소]

김용범의 묘소는 영주시 평은면 돌고개[석현(石峴)]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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