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737
한자 金聲振
영어공식명칭 Kim Seong-jin
이칭/별칭 명옥(鳴玉),야옹(野翁),어야(於野)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7년연표보기 - 김성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2년 - 김성진 혜민원주사 제수
몰년 시기/일시 1915년연표보기 - 김성진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김성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김성진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김성진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지도보기
활동지 김성진 활동지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혜민원주사

[정의]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성진(金聲振)[1857~1915]은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전해 듣고 통분하였으며, 1915년 단식·순국하였다.

[가계]

김성진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명옥(鳴玉), 호는 야옹(野翁)·어야(於野)이다. 김륵(金玏)[1540~1616]의 후손으로 1857년 11월 29일 지금의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김성진은 1902년 혜민원주사에 제수되었다.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전해 듣고 통분하여 자결을 기도하며 식음을 전폐하였으나,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로 단식을 중지하였다. 1912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삼년상을 치렀고, 이후 서간도 망명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서간도 망명 역시 주위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성진은 1915년 2월 마침내 “전날에는 어버이로 하여 죽지 못했고, 오늘은 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노라 죽지 못하면, 이러다가 내 죽을 날이 없으리라”라는 자만시(自輓詩) 한 수를 남겨놓고 단식·순국하였다. 이때 영주군수 장윤규(張潤圭)와 헌병분대장이 의사를 대동하고 적극적으로 만류하였으나 저지하지 못했다. 김성진의 단식·순국에 대해 송상도(宋相燾)[1871~1946]는 『기려수필(驥驢隨筆)』에서 “어느 사람은 말하기를 ‘성진은 임금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바도 없었고, 또 평소에 볼만한 행실도 없는 터에, 죽지 않아도 될 처지에서 죽었으니 허망한 일이 아닌가’라고 하였다. 처음에 성진이 나라를 강탈당했음을 듣고, 통곡하고 곧 자결하려 했으나 어버이로 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복상을 벗고 조용히 죽었으니 이는 진실로 의로운 죽음이거늘 어찌 허망하다 이를 것인가!”라고 평가하였다. 김성진은 큰 벼슬은 하지 않았으나 일제의 침략에 대한 저항 의지를 자결·순국으로 표출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성진의 저서로 『어야집(於野集)』이 전한다.

[상훈과 추모]

김성진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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