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740
한자 金致順
영어공식명칭 Kim Chi-su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김치순 이강년 의진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김치순 김상태 의진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09년연표보기 - 김치순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1년연표보기 - 김치순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김치순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김치순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지도보기
활동지 김치순 활동지 - 경상북도 영주시|경상북도 봉화군|충청북도 제천시|충청북도 단양군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개설]

김치순(金致順)[?~1909]은 1907년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과 김상태(金尙台)[1864~1912] 의진에서 활동한 의병이다.

[가계]

김치순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 거주하였다.

[활동 사항]

김치순은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 되고, 군대마저 해산당하는 등 일제의 침략이 갈수록 심해지자, 충청북도 제천에서 일어난 이강년 의진에 참여하여 충청북도 제천·영춘·단양, 경상북도 순흥·봉화 등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7월 2일 충청북도 청풍 작성전투(鵲城戰鬪)에서 이강년이 중상을 입고 체포되자, 김상태가 의진을 이끌었다. 김상태는 이강년의 중군장으로서 본진과 연합하여, 태백산·소백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이강년이 체포된 뒤에는 의진을 정비하여 1911년 여름까지 태백산·소백산 일대에서 친일분자를 처단하며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김치순도 이강년 의진에 이어 김상태 의진 참여하여 영춘·단양·풍기·순흥·봉화 등지에서 계속 활동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강화된 의병 토벌작전을 이겨내지 못하고 1909년 11월 17일 제천경찰서와 영주수비대의 공동수색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김치순은 함께 붙잡힌 김두갑(金斗甲)[?~1909]·윤영석(尹永錫)[?~1909]·김봉정(金鳳政)[?~1909]·윤우석(尹遇錫)[?~1909]·윤영구(尹永九)[?~1909]·김수갑(金守甲)[?~1909] 등과 같이 영주수비대로 압송되던 중 탈출을 시도하다 총살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치순은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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