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760
한자 金孝植
영어공식명칭 Kim Hyo-si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0년 10월 18일연표보기 - 김효식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41년 - 김효식 대구사범학교 재학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김효식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김효식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김효식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학교|수학지 대구사범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활동지 김효식 활동지 - 대구광역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 독립운동가.

[개설]

김효식(金孝植)[1920~?]은 1941년 2월 대구사범학교의 비밀결사 다혁당(茶革黨)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가계]

김효식은 1920년 10월 18일 지금의 영주시 가흥동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다혁당은 1941년 2월 15일 김효식을 비롯한 권쾌복(權快福)[1921~?]·최영백(崔榮百)·김성권(金聖權)[1922~2007]·이도혁(李道赫)·문덕길(文德吉)[1921~2001]·최태석(崔泰碩)[1920~1995]·배학보(裵鶴甫)[1920~?]·이종악(李鍾岳)[1923~?]·서진구(徐鎭九)[1921~1944]·이주호(李柱鎬)[1921~?]·박호준(朴祜儁)[1920~2007]·이홍빈(李洪彬) 등 대구사범학교 9기생이 주축이 되어 대구 대봉정 소재 유흥수(柳興洙)[1921~2016] 집에서 결성한 비밀결사조직이다. 이에 앞서 1939년 8월 왜관학생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 위해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왜관국민학교 앞 낙동강 백사장에서 백의단(白衣團)을 조직하였는데, 다혁당은 이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조직한 것이다.

다혁당의 의미는 영웅은 ‘다색(茶色)’을 좋아하는 것에서 ‘다(茶)’를 따고, ‘혁(革)’은 혁명을 뜻했다. 다혁당은 표면상으로는 문예의 창작, 학술의 연구, 사람다운 사람 등을 표방하였지만, 내면적으로는 학술을 통해 민족 독립의 역량을 확대해 독립을 쟁취하자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후 다혁당은 우리글로 된 역사 문화 서적을 읽고 토론회를 개최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으며, 군사적 행동을 대비하여 군사훈련 시행을 계획하였다. 또 축구 등 운동을 통해 학교 간의 교류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민족의식을 공유하고자 했다. 방학을 이용해서는 각자의 고향에 야학을 개설하고 문맹 퇴치와 한글 및 우리 문화 보급에 노력하였으며, 하급생 지도를 통해 민족의식을 지속해서 유지될 수 있도록 하였다.

다혁당은 1941년 여름 충남 홍성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8기생 정현(鄭鉉)이 갖고 있던 윤독 교재 『반딧불』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와해하였다. 이때부터 김효식도 약 2년 동안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으며, 1943년 2월 8일 예심이 종결되었다. 1943년 12월의 최종 판결에서 김효식은 징역 2년 6월에 언도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수감되었다. 복역 중 해방으로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효식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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