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809
한자 金榮基
영어공식명칭 Kim Yeong-gi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5년연표보기 - 김영기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6년 - 김영기 연희전문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26년 - 김영기 6.10만세운동 참여
출생지 김영기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성내리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연희전문학교 - 서울특별시
활동지 김영기 활동지 - 서울특별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6.10만세운동 참여

[정의]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영기(金榮基)[1905~?]는 1926년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순종황제 국장을 기해 일어난 6.10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가계]

김영기는 1905년 지금의 영주시 풍기읍 성내리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김영기는 1926년 연희전문학교 1학년에 재학 중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인산일을 기해 일어난 6.10만세운동에 가담하였다. 6.10만세운동은 서울의 학생층들이 주도하였는데, 주동자 이선호(李先鎬)[1902~?]·이천진(李天鎭)[1904~?] 등은 조선학생과학연구회 집행위원으로서, 이미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여 조선의 독립과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목표도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거사일 대련(大輦)[황실의 행사에 사용하는 큰 가마 또는 국장 때 사용하는 상여]이 통과할 때, 일곱 곳에서 격문을 살포하고 만세를 고창할 계획을 세웠다.

김영기는 이들의 활동에 뜻을 같이하여 순종 인산일에 모인 사람들에게 배포할 격문과 태극기 제작에 참여하였다. 격문에는 일제의 침략 아래 놓인 조선의 경제적 참상과 정치적 부자유에 대한 것, 기미년 독립만세 사건을 계승하여 전국적인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 등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 관헌의 탄압으로 6.10만세운동 관련자들이 거사를 전후하여 대거 검거되었다. 김영기도 이 과정에서 검거되어 조사를 받고, 반 달 동안 옥고를 치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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