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820
한자 選擧
영어공식명칭 Election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경희

[정의]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선거권을 가진 주민이 대통령·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원 등을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개설]

선거란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고 정치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행위이다. 2019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는 주요 선거로는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의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지방선거[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선거] 등이 있다. 이외에 국정의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 국민이 행하는 투표인 국민투표, 「대한민국 헌법 제8호」[유신 헌법]에 의해 신설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1972년 12월 15일과 1978년 5월 18일에 실시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 선거, 1981년 「대한민국 헌법 제9호」[제5공화국 헌법]에 따라 시행된 대통령선거인단 투표 등이 있다. 영주 지역의 선거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전개됐다.

[대통령 선거]

2019년 현재까지 19차례 대통령이 선출되었는데, 제1·4·8·9·10·11·12대 선거는 간접선거제로 치러졌으며, 나머지는 직접선거로 시행되었다. 직접선거제로 치러진 첫 번째 대통령 선거는 제2대 대통령 선거로 1952년 8월 5일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는 자유당 이승만이 유효 투표수의 74.6%에 해당하는 523만 8769표를 획득해 당선되었다. 영주군에서는 유권자 5만 2378명 중 4만 8411명이 참여해 92.4%의 투표율을 보였으며, 이승만이 4만 1996표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제3대 대통령 선거는 1956년 5월 15일 실시되었으며, 자유당 이승만과 무소속 조봉암의 양자 대결로 치러져 이승만이 유효 투표수의 70.0%인 504만 6437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영주군에서는 자유당 이승만이 유효 투표수의 71.5%인 2만 9834표, 무소속 조봉암이 28.5%인 1만 1864표를 얻었다. 제4대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이 신병 치료를 위해 미국에 갔다가 선거를 한 달 앞둔 2월 15일 사망함으로써, 이승만이 단일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투표율은 97.0%였으며, 지지율은 88.7%였다. 영주군의 투표율은 97.7%로 집계되었으며, 이승만은 이 중 90.0%인 5만 1059표를 획득했다. 그러나 이 선거는 부정선거로 무효화되었으며, 제4대 대통령 선거는 1960년 8월 12일 국회에서 간접선거로 실시되었다.

제1공화국에서는 제1대에서부터 제5대까지 부통령 선거도 시행되었는데, 초대와 제2대 부통령은 국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되었다. 제3대 부통령 선거는 제2대 대통령 선거와 함께 실시되었는데 함태영이 당선되었다. 이때 함태영은 영주군에서 3만 7765표를 얻었다. 제4대 부통령 선거는 제3대 대통령 선거와 함께 실시되었고, 장면이 당선되었다. 영주군에서는 전체 유권자의 89.6%인 5만 6768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장면이 1만 8236표, 이기붕이 2만 3862표를 얻었다. 제5대 부통령 선거는 제4대 대통령 선거일인 1960년 3월 15일 실시되었으며, 투표율은 대통령 선거와 같은 97.0%로 나타났다. 개표 결과 이기붕이 유효 투표의 79.2%에 해당하는 833만 7059표를 얻어 제5대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영주군의 투표율은 89.6%로 전국 평균에 비해 다소 낮지만, 이기붕은 유효 투표의 91.1%인 4만 9388표를 획득하여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그러나 국회에서 무효가 되었다.

제5대 대통령 선거는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군사혁명정부가 국회를 해산하고 만든 제3공화국 헌법에 따라, 1963년 10월 15일 실시되었다. 개표 결과 민주공화당의 박정희가 전체 유효 투표자 1008만 1198명의 46.6%인 470만 2640명의 지지를 받아 454만 6614표를 얻은 민주당 윤보선을 누르고 당선했다. 전국 투표율은 85.0%였으며, 영주군의 투표율은 86.4%로 나타났다. 영주군에서의 후보별 지지율은 박정희 52.5%, 윤보선 39.0% 등으로 집계되어 박정희에 대한 지지도가 전국 평균보다 다소 높게 나타난다. 제6대 대통령 선거는 1967년 5월 3일 실시되었다. 투표 결과 민주공화당의 박정희가 568만 8666표로 유효 투표의 51.4%를 얻어 당선이 확정되었다. 영주군의 투표율은 89.6%였으며, 박정희가 3만 3159표[57.5%], 윤보선이 1만 8808표[32.6%]를 얻었다. 제7대 대통령 선거는 1971년 4월 27일 실시되었고, 박정희가 유효 투표의 53.2%인 634만 2828표를 얻어 539만 5900표를 획득한 신민당의 김대중을 94만 6928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영주군의 경우 민주공화당의 박정희가 유효 투표의 73.7%인 4만 4527표를 얻어 1만 5060표를 얻은 김대중을 압도적으로 눌렀다.

제8대 대통령 선거는 1972년 12월 23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선거로 시행되어 단일 후보로 나선 박정희가 당선되었으며, 제9대 대통령도 1978년 5월 18일 치른 선거에서 단일 후보로 나선 박정희가 당선되었다. 제10대 대통령 선거는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으로 1979년 12월 6일 실시되었으며, 최규하가 단일 후보로 추천되어 당선되었다. 제11대 대통령 선거는 1980년 8월 27일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 집회에서 시행되었으며, 전두환이 단독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제12대 대통령 선거는 1981년 2월 25일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해서 실시되었으며, 민주정의당 전두환 후보가 90.2%의 압도적 다수표를 얻어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는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확정된 새 헌법에 의거하여 1987년 12월 26일 직접선거로 치러졌다. 선거 결과 투표율은 89.2%를 기록했고, 민주정의당 노태우가 828만 2738로 유효 투표의 36.6%를 얻어 당선되었다. 영주 지역[영주시와 영풍군 합계] 투표율은 89.9%로 전국 평균보다 조금 높았으며, 노태우에게 유효 투표의 62.3%인 5만 2004표를 몰아주었다. 1992년 12월 18일 치른 제14대 대통령 선거는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이어졌던 군부 중심의 집권 세력을 청산하고 ‘문민정부’를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개표 결과 김영삼이 997만 7332표, 유효 투표자 42.0%의 지지를 얻어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영주 지역에서는 전국 평균보다 다소 높은 83.3%의 투표율을 나타내었는데, 개표 결과 김영삼 5만 1566표[67.2%], 정주영 1만 365표[13.5%], 김대중 7066표[9.2%]로 나타나 보수정당 후보인 김영삼에 대해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1997년 12월 18일 실시된 제15대 대통령 선거는 한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해 여당과 야당 간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개표 결과 김대중이 1032만 6275표, 유효 투표자 40.3%의 지지를 얻어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영주시에서는 유권자 9만 9209명 중 7만 6,887명이 투표해 79.9%의 투표율을 보였다. 개표 결과 이회창이 4만 4944표, 59.4%의 지지율로 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인제가 2만 108표[26.7%], 김대중이 8434표[11.2%]로 그 뒤를 이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는 2002년 12월 19일 실시되었고 새천년민주당 노무현이 유효 투표의 48.9%인 1201만 4277표를 얻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영주시에서는 전체 유권자 9만 5379명 중 6만 9933명이 투표에 나서 73.3%의 투표율을 보였으며 한나라당 이회창에게 75.2%인 5만 1660명, 노무현에게 20.3%인 1만 356명이 투표함으로써 지역이 가진 보수적 성향을 드러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는 2007년 12월 19일 치러졌다. 개표 결과 한나라당의 이명박이 1149만 2389표, 48.7%의 득표율로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영주시의 선거인 수는 9만 1618명이었으며, 6만 3686명이 투표에 참여해 69.5%의 투표율을 보였다. 영주시에서 이명박의 득표수는 4만 3029표로 나타났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2012년 12월 19일 실시되었으며, 총 유권자 4050만 7842명 중 3072만 1459명이 참여하여 75.8%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개표 결과 새누리당 박근혜가 1577만 3128표[득표율 51.55%]를 얻어 당선됨으로써,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게 되었다. 영주시에서는 유권자 9만 2433명 중 7만 2614명이 참여해 78.6%의 투표율을 보였고, 박근혜의 지지율이 78.0%[5만 6360표]로 전국 평균보다는 훨씬 높았지만, 경상북도 평균 지지율인 80.8%보다는 다소 낮았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원래 2017년 12월 20일 실시될 예정이었으나,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함에 따라 2017년 5월 9일 실시되었다. 투표는 총 유권자 4247만 9710명 중 3280만 7908명이 참여하여 77.2%의 투표율을 기록했으며,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이 1342만 3800표[득표율 41.1%]를 얻어 당선되었다. 영주시에서는 유권자 9만 2117명 중 7만 861명이 참여해 76.9%의 투표율을 보였다. 후보별 지지율은 전국 평균과 달리 홍준표[3만 4504표, 49.1%], 문재인[1만 5280표, 21.7%], 안철수[1만 444표, 14.8%]의 순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원 선거]

제헌국회의원 선거는 1948년 5월 10일 실시되었으며, 영주군에서는 당선자 1명을 선출하는 단일 선거구로 투표가 진행되었다.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제31선거구로 편성된 영주군에서는 6명이 후보로 나섰고[이 중 1명은 중도 사퇴], 대동청년단 소속 최석홍이 당선되었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는 1950년 5월 30일 실시되었다. 경상북도 제32선거구로 편성된 영주군에서는 9명의 후보자가 나섰고 대한청년단 소속 김정식이 유효 투표의 23.4%인 1만 289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제3대 국회의원 선거는 휴전협정 체결 이듬해인 1954년 5월 20일 실시되었다. 영주군은 경상북도 제32선거구로 지정되었으며, 투표 결과 자유당 후보로 나선 이정희가 유효 투표의 51.7%인 2만 3262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제4대 국회의원[민의원] 선거는 1958년 5월 2일 실시되었으며, 영주군은 경상북도 제36선거구로 편성되었다. 제4대 국회의원[민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당 공천을 받은 이정희, 민주당 공천을 받은 전기석, 무소속 황호영, 무소속 박용만 등 4명이 입후보했고, 자유당 이정희가 1만 8815표로 무소속 박용만보다 1443표를 앞선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당시 선거는 자유당 후보의 지원을 위해 행정력이 총동원된 부정선거로 밝혀져 1960년 1월 2일 일부 재선거가 시행되었지만, 재선거 결과가 공표되기 전 4.19혁명이 일어남으로써 당선자가 확정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었다.

경상북도 제36선거구로 편성된 제5대 영주군 국회의원[민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황호영이 유효 투표의 34.7%인 1만 7883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영주군과 봉화군이 하나의 선거구[경상북도 제20선거구]로 통합되어 투표가 진행되었다. 개표 결과 민주공화당의 김창근이 유효 투표의 44.0%인 3만 5660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는 1967년 6월 8일 실시되었다. 영주군은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처럼 봉화군과 함께 경상북도 제20선거구로 편성되었다. 투표 결과 민주공화당 김창근이 당선되었는데, 주민들은 유효 투표의 59.4%인 5만 9602표를 주어 지난 선거에서보다 훨씬 높은 지지도를 보여 주었다. 제8대 국회의원 선거는 1971년 5월 25일 실시되었으며, 영주군은 경상북도 제20선거구로 편성되었다. 투표 결과 민주공화당 김창근이 3선에 성공하게 되는데, 영주 지역 유권자의 지지율은 59.2%, 3만 6673표였다. 제9대 국회의원 선거는 1973년 2월 27일 실시되었으며, 영주군은 봉화군·영양군과 함께 중선거구로 개편되어 경상북도 제10선거구가 되었다. 개표 결과 신민당 박용만과 민주공화당 권성기가 각각 5만 3041표, 3만 4281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제10대 국회의원 선거는 1978년 12월 12일 실시되었고 영주군은 봉화군과 합쳐져 경상북도 제10선거구로 편성되었다.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김창근과 신민당 박용만이 각각 5만 9768표와 3만 8291표를 얻어 제1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제11대 국회의원 선거는 1981년 3월 25일 실시되었다. 그런데 영주군은 1980년 4월 1일 영주읍 지역이 영주시로 승격함에 따라 영주시와 영풍군 지역으로 분리되었고, 이에 따라 선거구도 영주시·영풍군·봉화군·영양군 4지역이 통합되어 경상북도 제9지역구로 편성되었다. 투표 결과 민주정의당 오한구와 민주한국당 홍사덕이 각각 4만 9530표와 2만 1199표, 각각 34.5%와 14.8%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지역별로는 민주정의당 오한구의 득표율이 영주시·영풍군보다 영양군·봉화군에서 더 높게 나타났으며, 홍사덕의 득표율은 영주시 지역에서 가장 높았고 봉화군에서는 가장 낮은 5위로 나타났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는 1985년 2월 12일 실시되었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영주시는 영풍군·봉화군·영양군과 함께 경상북도 제9지역구로 편성되었다. 투표 결과 민주정의당의 오한구와 신한민주당의 홍사덕이 각각 유효 투표의 44.5%인 6만 6130표, 24.1%인 3만 5828표를 얻어 제1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는 1988년 4월 26일 실시되었는데, 중선거구 제도가 소선거구제로 환원되면서 영주시는 영풍군과 함께 하나의 선거구로 편성되었다. 투표 결과 민주정의당 김진영이 유효 투표의 50.2%인 3만 9354표를 얻어 3만 4367표를 얻은 김창근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김창근은 영주시 지역 득표율에서 2.5%가량 김진영에 앞섰지만, 영풍군 지역에서 15% 이상 뒤져 낙선되었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는 1992년 3월 24일 실시되었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영주시와 영풍군은 하나의 선거구로 편성되었고, 민주자유당 금진호가 유효 투표의 64.0%인 4만 7198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는 1996년 4월 11일 실시되었는데, 1995년 1월 1일 영풍군이 영주시와 통합됨으로써, 이후부터 영주 지역 선거구는 영주시 단일 선거구로 편성되었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6명의 후보가 나섰는데 무소속 박시균이 유효 투표의 32.4%인 2만 3027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0년 4월 13일 실시되었으며, 제15대 국회의원 당선 후 한나라당에 입당했던 박시균이 유효 투표의 58.9%인 3만 8259표를 얻어 재선에 성공했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4년 4월 15일 실시되었는데, 선거 사상 처음으로 정당별 비례대표제가 채택되었다. 영주시 지역구에서는 한나라당 장윤석이 유효 투표의 52.8%인 3만 2187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비례대표를 뽑기 위한 정당별 득표율은 한나라당 62.9%, 열린우리당 21.5%, 민주노동당 10.5% 순이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8년 4월 9일 실시되었다. 영주시 선거구에서는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이어 가장 적은 3명이 후보로 나섰는데, 개표 결과 한나라당 장윤석이 유효 투표의 52.5%인 2만 7579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정당별 득표율은 한나라당 51.4%, 친박연대 24.1%, 통합민주당 5.6%, 민주노동당 4.5%, 자유선진당 3.4%, 국민실향안보당 2.6% 순으로 나타났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는 2012년 4월 11일 실시되었으며, 영주시 선거구에서는 새누리당 장윤석이 유효 투표의 57.1%인 3만 2038표를 얻어 당선했다. 정당별 투표율은 새누리당 66.3%, 민주통합당 15.4%, 통합진보당 6.5%, 한나라당 1.9%, 친박연합 1.8% 순이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는 2016년 4월 13일 실시되었고, 영주시는 문경시·예천군과 함께 복합 선거구로 편성되었다. 투표 결과 새누리당 최교일 후보가 유효 투표의 57.2%인 7만 131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그런데 지역별 지지도에 있어서 최교일은 영주시에서만 74.5%[4만 2116표]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을 뿐, 문경시와 예천군에서는 무소속 김수철의 지지율이 각각 52.0%[2만 744표], 46.7%[1만 2284표]로 가장 높았다. 정당별 지지율은 새누리당 61.1%, 국민의당 14.7%, 더불어민주당 11.8%, 정의당 5.3%의 순으로 나타났다.

[지방자치 선거]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중단되었던 지방자치 선거는 1991년 3월 26일 시·군·구 등 기초자치단체의 의회의원 선거가 시행됨으로써, 30년 만에 재개되었다. 2018년 현재 영주시에서 지방자치 선거는 기초의회[영주시의회]의원 선거, 기초자치단체장[영주시장] 선거, 광역의회[경상북도의회]의원 선거, 광역자치단체장[경상북도지사] 선거 및 교육감 선거 등이 동시에 시행되고 있다.

1. 광역자치단체장[경상북도지사] 선거

민선 경상북도지사 선거는 1960년 12월 29일 처음 시행되었다. 이때 이호근이 당선되었지만 5.16군사정변으로 지방자치제도는 중단되고 말았다. 1995년 6월 27일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광역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부활하였고, 제1대 민선 경상북도지사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이의근이 당선되었다. 그런데 당시 영주시에서의 득표수는 총 유효 투표의 32.6%인 2만 4819표에 그쳐 득표율 52.0%에 3만 8478표를 얻었던 무소속 이판석에게 크게 뒤졌다. 제2대와 제3대 도지사도 한나라당 이의근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영주시에서의 득표율도 각각 74.8%, 86.6%로 압도적 지지율을 보였다. 제4대 경상북도지사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김관용이 당선되었으며, 영주시에서 득표율은 78.4%로 나타났다. 김관용 도지사는 제5대와 제6대 도지사 선거에서도 연이어 당선했으며, 영주 시민의 지지율은 각각 74.8%, 77.6%로 나타났다. 제7대 경상북도지사 선거에서는 자유한국당의 이철우가 당선되었고 영주시의 지지율은 51.6%[3만 1646표]였다.

2. 기초자치단체장[영주시장] 선거

1995년 6월 27일 시행된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무소속 김진영이 민주자유당 공천을 받은 박시균을 누르고 민선 초대 영주시장이 되었다. 김진영은 1998년 6월 4일 실시된 제2대 영주시장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강은구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제3대 영주시장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권영창이 당선되었고, 2006년 5월 31일 실시된 제4대 영주시장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김주영이 당선되었다. 제5대 영주시장 선거는 2010년 6월 2일 시행되었는데, 김주영이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장욱현을 누르고 재선하였다. 이어 제6대 민선 영주시장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가운데 공천을 받은 장욱현이 당선되었으며, 이후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꾼 제7대 영주시장 선거에서도 잇달아 출마해 당선되었다.

3. 광역의회[경상북도의회]의원 선거

경상북도의회의원 선거는 1952년 5월 10일 처음 치러졌고, 1960년까지 모두 세 차례 시행되었다. 이 기간 영주 지역에서는 2명의 경상북도의회의원을 선출하였다. 이에 제1대 의원은 국민회의 엄창섭과 민주당 송도봉, 제2대 의원은 자유당 강석일과 엄창섭, 3대 의원은 민주당 김창용과 황원락이 당선되었다.

지방자치 선거의 부활과 함께 1991년 6월 20일 실시한 제4대 경상북도의회의원 선거에서는 영주시 3명, 영풍군 2명, 총 5명의 의원을 선출했다. 영풍군 제1선거구에서는 민주자유당 김계하, 제2선거구에서는 민주자유당 강성국, 영주시 제1선거구에서는 민주자유당 권영창, 제2선거구에서는 민주당 박찬극, 제3선거구에서는 민주자유당 전동호가 각각 당선되었다. 1995년 6월 27일 실시된 제5대 도의원 선거에서는 영풍군이 영주시에 통합됨으로써 영주시 지역에 5개 선거구가 만들어졌다. 투표 결과 제1선거구에서는 무소속 김영관, 제2선거구에서는 민주자유당 우영복, 제3선거구에서는 민주자유당 전동호, 제4선거구에서는 민주자유당 김창언, 제5선거구에서는 민주자유당 강성국이 각각 당선되었다.

제6대 도의원 선거에서는 영주시 지역 선거구가 2개로 조정됨으로써, 2명의 의원만 선출하였다. 투표 결과 영주시 제1선거구에서 한나라당 우성호, 제2선거구에서 한나라당 박성만이 당선되었다. 제7대 선거에서는 영주시 제1선거구에서 한나라당 김종천, 제2선거구에서 한나라당 손진영이 각각 당선되었으며, 제8대 선거에서는 영주시 제1선거구에서 한나라당 김종천 후보, 제2선거구에서 친박연합 박성만이 각각 당선되었다. 2014년 6월 2일 시행된 제9대 선거에서는 영주시 제1선거구에서 무소속 황병직, 제2선거구에서 무소속 박성만이 당선되었고, 2018년 7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된 제10대 선거에서는 제1선거구에서 무소속 황병직, 제2선거구에서 자유한국당 임무석이 당선되었다.

4. 기초의회[영주시의회]의원 선거

1991년 3월 26일 시행된 제1대 영주시의회의원 선거에서 영주시는 각 읍·면·동마다 1개씩 개설된 21개 선거구에서 총 21명의 의원을 선출하였다. 제2대 영주시의회의원 선거에서는 동(洞)이 2개 늘어나 23명의 의원을 선출했으며, 제3대와 제4대 영주시의회의원의 정수는 동 선거구를 3개소 줄여 20명을 선출했다. 제5대 영주시의회의원 선거에서는 각 읍·면·동 선거구를 가·나·다·라의 4개 선거구로 구획한 후, 각 선거구당 3명을 선출하고, 비례대표 2명을 더한 14명의 의원을 선출하였다.

제6대 의원선거부터는 각 읍·면·동 선거구를 영주시 가선거구[순흥면·단산면·부석면], 영주시 나선거구[상망동·하망동·영주1동·영주2동], 영주시 다선거구[가흥1동·가흥2동], 영주시 라선거구[평은면·문수면·장수면·이산면], 영주시 마선거구[휴천1동·휴천2동·휴천3동], 영주시 바선거구[풍기읍·안정면·봉현면]로 나누어 각 선거구 당 2명의 의원을 선출하고, 여기에 비례대표 의원 2명을 더한 총 14명의 의원을 선출하게 되었다.

[선거 관련 기관]

영주시의 선거 관련 기관으로는 영주시선거관리위원회가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 제114조의 규정에 따라 설치된 국가기관으로서,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과 정치자금에 관한 사무를 처리한다.

2018년 기준 영주시의 선거인 수는 9만 1850명으로 영주시선거관리위원회는 19개 읍·면·동의 47개 투표구를 관리한다. 관할 선거구는 국회의원 선거구 1개[영주시·문경시·예천군 선거구], 도의원 선거구 2개[영주시 제1선거구, 영주시 제2선거구], 시·군의원 선거구 6개이다.

[참고문헌]
  • 『영주시사』 1(영주시사편찬위원회, 2010)
  • 경상북도의회(http://council.gb.go.kr)
  • 영주시(http://www.yeongju.go.kr)
  • 영주시의회(http://council.yeongju.go.kr)
  • 중앙선거관리위원회(http://www.nec.go.kr)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