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967
한자 草庵寺
영어공식명칭 Choamsa Temple
이칭/별칭 초암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죽계로315번길 330[배점리 525-3]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수|중창 시기/일시 1935년 - 초암사 중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982년 - 초암사 중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2010년 - 초암사 염불당·안심당·심검당 건립
중수|중창 시기/일시 2017년 - 초암사 범종각 중수 및 일주문 건립
최초 건립지 초암사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죽계로315번길 330[배점리 525-3]
현 소재지 초암사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죽계로315번길 330[배점리 525-3]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의상
전화 054-633-2322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개설]

초암사(草庵寺)의상(義湘)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하고 나서 세운 사찰로 전해지고 있다. 창건 당시에는 소백산에서 비로사(毘盧寺) 다음으로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초암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초암사의상이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화가 전한다. 하나는 676년(문무왕 16) 의상부석사를 창건하기 위해 절터를 보러 다닐 때, 이곳에 임시로 초막을 지은 뒤 기거하는 장소로 삼았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의상이 지금의 부석사 터를 찾아서 불사를 시작했는데, 서까래가 없어져 도력(道力)으로 살펴보니 이곳에 떨어져 있음을 발견하였고, 이것을 부처의 뜻이라 생각한 의상이 여기에 초암(草庵)을 짓고 한동안 수행한 뒤 부석사를 건립했다는 설이다.

이후 초암사의 내력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16세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8세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19세기 후반에 편찬된 『영남읍지(嶺南邑誌)』와 『교남지(嶠南誌)』에도 ‘초암’ 혹은 ‘초암사’로 기록되어 있어 조선 말기까지 사세가 계속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순흥지(順興誌)』에 따르면 1728년(영조 4) 순흥도호부사(順興都護府使)로 부임한 신필하(申弼夏)가 소백산을 유람할 때 초암의 법당 앞 바위에 ‘죽계제일수석(竹溪第一水石)’, ‘일곡(一曲)’이라고 새겼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죽계1곡이 초암의 법당 앞에 있다고 했지만, 지금의 절 위치에서 죽계1곡까지는 먼 거리이다. 만약 죽계1곡 앞까지 사찰 건물들이 세워졌다면, 조선 후기 초암사의 규모가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후기까지도 건재하던 초암사가 언제 폐사하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1920년경 반승반속(半僧半俗)의 한 늙은이가 쓰러져가는 초막에서 감자 농사로 살고 있었는데, 1935년 무렵 승려 김상호(金祥鎬)가 이곳에 30여 칸 사찰을 중건하였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초암사가 불타고 김상호 주지마저 영주시 이산면 흑석사(黑石寺)로 옮겨가, 초암사는 다시 폐사 지경에 이르렀다. 그 뒤 승려 이영우가 3칸 규모 법당을 세웠고, 승려 민덕기가 주석하다가 비로사로 자리를 옮겼다. 1982년 비구니 이보원(李寶元)이 대웅전, 대적광전, 삼성각, 요사, 범종각 등을 중건했다. 2001년 현재 주지 용운(龍雲)이 부임하였고, 2010년에 염불당·안심당(安心堂)·심검당(尋劍堂)을 지었다. 2017년에는 범종각을 중수하고 일주문을 세웠다.

[활동 사항]

초암사는 현재 사암연합회를 통해 지역 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또 경찰관 불자를 위한 정기 법회와 안동 지역 군부대에서 정기 법회를 개최하고 있다. 불자들 중심으로는 초하루와 보름의 정기 기도회 때 발우공양 체험행사를 하고, 사물놀이패를 준비하고 있다. 정기적인 기도회는 물론 천불천배 참회기도, 국태민안기도 등 특별 기도회도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초암사의 가람은 중심 불전인 대적광전을 비롯해 대웅전, 삼성각, 염불당, 안심당, 심검당, 범종각, 일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적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구조로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을 협시로 하는 삼존불상을 봉안하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구조로 석가여래와 관세음보살·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삼성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내부에는 칠성·독성·산신 탱화가 걸려 있다. 특히 삼성각 옆에는 돌로 만든 개[犬] 석상이 있는데, 개 석상을 세운 이후에는 도둑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소백산초암사(小白山草庵寺)’ 현판이 있는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쪽 산기슭에 초암사 동부도·초암사 서부도가 있으며, 최근에 조성한 ‘비구니명덕보원(比丘尼明德寶元)’의 석종형 부도가 있다. 초암사 입구의 마지막 개울을 건너기 전 좌측 공터에는 주지 이보원이 초암사를 일으킨 내력을 기록한 소백산초암중창사적비(小白山草庵重創事蹟碑)와 석등이 조성되어 있다.

[관련 문화재]

초암사 경내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점이 소장되어 있다. 초암사 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6호]은 통일신라시대 일반형에 속하는 석탑으로 법당인 대웅전 앞이 아니라 한 축 아래에 있는 염불당 앞에 있다. 현재 기단의 맨 윗돌 일부가 파손되어 시멘트로 보완했고, 갈라짐이 심한 위층 기단은 철사로 감아 더 이상 파손을 막고 있다.

초암사 동부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8호]와 초암사 서부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9호]는 2010년 요사인 염불당 앞에서 현 일주문 왼쪽 산기슭으로 옮겼다. 초암사 동부도초암사 서부도는 팔각원당형으로 전체적인 양식과 석재의 조립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암사 동부도초암사 서부도보다 조금 앞서 조성된 듯하다. 한편, 국보 제78호로 지정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이 바로 초암사에 모셔져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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