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1174
한자 敬老所
영어공식명칭 Gyeongnoso(Place for the Elderly)
이칭/별칭 순흥 경로소,기로소,경로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임기원

[정의]

조선시대부터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 지역에서 활동해 온 향촌 조직.

[개설]

순흥 지역의 연로한 사족(士族)들이 중심이 된 향촌 조직인 경로소(敬老所)는 조선시대 퇴임 관리들의 조직인 기로소(耆老所)에서 유래하였다. 순흥 경로소가 조직된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경로소 회원에 의하면 명 홍무제(洪武帝)[1368~1398]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내용]

경로소의 회원 자격은 순흥 지역에 세거하는 사족에 한정되어 있다. 현재도 과거부터 경로소 입적 자격을 갖추었던 순흥 지역 사족의 후손 500여 명이 경로소의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경로소는 해방 이전까지 지역의 노인을 위해 의약을 제공하는 의국(醫局)의 역할도 하는 경로국(敬老局)이었다. 그 때문에 해방 이후 경로소로 명칭이 변경된 이후에도 경로소의 대표는 소장(所長)이 아닌 국장(局長)으로 불린다.

경로소의 임원으로 국장 1인, 유사 2~3인이 있다. 국장이 되려면 순흥향교 전의, 소수서원 원장, 금성단 전교를 역임하여야 하는 조건이 있는 만큼 지역 유림사회에서 인정받는 원로만이 맡을 수 있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국장은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부모상을 당하면 사임하여야 한다. 유사는 전·현직 국장과 덕망 있는 원로들로 구성된 당회를 열어 선출하며 임기는 2년이다.

경로소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칸반 규모에 중당협실형 평면 형태이며 구조는 몰익공 장여소로 수장한 전후퇴 5량가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중앙 마루방을 중심으로 양측 칸에 온돌방 1칸씩을 배열한 전형적인 중당협실형이고 각 온돌방 뒤로는 반칸 온돌방을 확장하였다. 전면 전체로 퇴를 두어 바닥을 우물마루로 마감하였고 각 온돌방 측면에는 쪽마루를 설치하였던 흔적이 남아있다. 축댓돌 기단에 제형 강화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기와를 이었다.

[현황]

경로소는 보유한 토지를 통해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충당하고, 인근 지역의 노인들에게 세찬(歲饌)을 베풀었다. 그러나 토지 개혁으로 토지를 모두 몰수당한 이후 경로소의 경제적인 기반이 약화하였다. 1960년대까지는 지역 노인들에게 전례대로 세찬을 제공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섣달그믐에 김을 한 첩씩 돌리는 것으로 간소화되었다. 또한, 정례 모임도 1년 중 봄에 한차례 이루어지고 있다.

경로소에 있는 임원록에는 약 80여 년간의 기록이 보존돼 있다. 경로소 회원들에 의하면 고려 말·조선 초에 해당하는 시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회원 명부와 『임원록(任員錄)』이 전해지다 일제강점기에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경로소 건물인 봉도각 내에 일제강점기부터 2015년까지 역대 국장의 명단이 기록된 『임원록』이 남아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