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1211
한자 國望峰-裵店
영어공식명칭 Gungmangbong Peak and Baejeom(Folktal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 「국망봉과 배점」 『영주시사』2에 「국망봉과 배점」으로 수록
관련 지명 배점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지도보기
관련 지명 국망봉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지도보기
성격 설화|전설|지명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배순|배순의 처|이황
모티프 유형 충신|효자|마을의 명칭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의 명칭과 관련된 이야기.

[개설]

「국망봉과 배점」의 주인공인 배순(裵純)[1534~1614]은 무쇠 장인 출신으로 이황(李滉)의 제자이다. 선조가 승하하자 삼년상을 치렀다. 사후에 배순의 덕을 기리기 위해 배순이 살던 마을의 이름을 ‘배점(裵店)’이라 하고, 또 배순이 산에 올라 궁성을 바라보며 임금의 명복을 빌었던 곳을 ‘국망봉(國望峰)’이라 부른다. 배점리에는 배순을 기리는 배순 정려각(旌閭閣)이 남아 있다.

[채록/수집 상황]

「국망봉과 배점」은 2010년 영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주시사』2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영주시 순흥면 읍내에서 초암사(草庵寺)로 가는 길 3.5㎞ 되는 지점에 수령 600년 정도 되는 느티나무 세 그루가 서 있다. 이곳을 삼괴정(三槐亭)이라고 하는데, 느티나무의 남쪽 도로변에는 작은 정려각이 있다. 원래 이 배순 정려각은 배점초등학교[현재 폐교] 운동장 서편에 있던 것인데, 학생들이 운동하는 데 지장이 있다 하여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정려각의 주인은 배순이라는 충신으로, 마을에서는 동신(洞神)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배순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 배점리에 와서 대장간을 차려 놓고 좋은 물건을 만들어 양심적으로 수요자에게 공급하였다. 배순은 행실이 착하고 특히 어버이에게 효도가 지극하였으며, 조상을 정성으로 모셨다. 일례로 가을 타작 때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곡식은 다른 마당에서 정결하게 타작을 해서 따로 보관하였다.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지을 때도 정성껏 철물을 공급하여, 배순에 대해 상인이나 유림의 칭찬이 자자했다. 이황도 그런 배순을 불러 칭찬했다. 이황이 세상을 떠나자, 배순은 철물로 상(像)을 만들어 놓고 삼 년 동안 상복을 입었다. 선조가 붕어했을 때에는 매달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에 정성 들여 장만한 음식을 들고 뒷산에 올라가서, 북쪽 궁성을 향해 곡을 하며 삼 년 동안 제사를 지냈다.

그 슬픈 소리가 궁 안에까지 들리어 나라에서 정려를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배순이 음식을 들고 산에 오를 때 밟은 바위에 아직도 나막신 자국이 남아 있다. 그리고 궁성을 바라보며 곡을 했다는 산은 지금 사람들이 국망봉이라고 한다. 또 이 지역의 이름을 배순의 대장간이 있던 곳이라 하여 모두 ‘배점’이라고 불렀다. 배순이 78세의 나이로 죽을 때는 맑은 날에 큰비가 오고, 집 앞뜰에는 갈까마귀 떼가 모여들어 슬피 울었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배순의 처가 어느 날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집을 보니 모두 화염에 싸여 타고 있는데, 남편 배순이 화염에 싸여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 황망히 집에 와보니 집에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사랑방에 가보니 남편이 평소처럼 누워 있었는데 운명했더라는 것이었다.

[모티프 분석]

「국망봉과 배점」 이야기의 기본 모티프는 ‘충신’과 ‘효자’이다. 배순이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여 3년 동안 매월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에 제사를 지냈던 뒷산을 ‘국망봉’이라 부르고, 배순의 대장간이 있던 마을 이름을 ‘배점’이라고 부르게 된 지명유래전설에 해당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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