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령재와 죽지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1233
한자 竹嶺-竹旨郎
영어공식명칭 Jungnyeongjae Pass and Jukjirang(Folktal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다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 「죽령재와 죽지랑」 『영주시사』2에 「죽령재와 죽지랑」으로 수록
관련 지명 죽령재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지도보기
성격 설화|전설|인물담|지명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죽지랑|술종공|거사|부인
모티프 유형 신이담|환생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죽지랑과 관련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죽령재와 죽지랑」죽지랑(竹旨郞)[죽지(竹旨)]과 관련한 인물 전설이다. 「죽령재와 죽지랑」의 배경이 되는 죽령재는 보통 죽령(竹嶺)이라 일컫는데, 해발고도는 689m이다. 「죽령재와 죽지랑」은 여러 설화 중에서도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의 「효소왕대 죽지랑(孝昭王代竹旨郎)」 편에 수록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죽지랑은 신라 화랑 출신의 장군으로 신라의 백제 및 고구려 정벌에 참전하였고, 이후에는 재상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채록/수집 상황]

「죽령재와 죽지랑」은 2010년 영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주시사』2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진덕여왕 때 술종공(述宗公)이라는 사람이 삭주도독사가 되어 임지인 춘천으로 가게 되었다. 당시 나라에 병란이 있어 기마병 3,000명으로 술종공을 호송하였는데, 도독 일행이 죽지령[죽령]에 이르자, 한 거사(居士)[집에서 불교를 믿는 사람]가 잿길을 닦고 있었다. 술종공이 잿길을 닦는 그의 모습과 잘생긴 외모에 대해 칭찬하였다. 거사 또한 공의 늠름한 모습과 위세 당당함에 매료되었으니, 이때부터 서로가 마음에 감동되는 바가 있었다.

공이 춘천에 부임한 지 한 달이 되어 밤에 꿈을 꾸었다. 꿈에 그 거사가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술종공은 꿈에서 깨 부인에게 거사에 관해 물었다. 부인이 그곳 사람들에게 거사에 대해 수소문했다. 그러자 사람들에게 들려오는 소식은 거사가 죽은 지 며칠이 지났다는 것이었다. 거사가 죽은 날짜를 따져보았더니 술종공이 꿈꾸던 날과 일치했다. 공이 “아마도 거사가 우리 집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군사를 보내어 거사를 죽령 북쪽에 장사 지내고 돌로 미륵불을 만들어 거사의 무덤 앞에 세웠다. 그 후 부인은 꿈을 꾸었는데 꿈을 꾼 날로부터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를 ‘죽지’라 이름 지었다. 죽지는 장성하여 김유신 장군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고, 이후에는 재상이 되었다.

[모티프 분석]

「죽령재와 죽지랑」의 주요 모티프는 ‘환생(還生)’이다. 서로 흠모했던 술종공과 거사는 거사의 죽음으로 인해 이별을 맞게 된다. 하지만 거사가 술종공의 아들로 ‘환생’하게 됨으로써 그들의 인연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전승 집단은 「죽령재와 죽지랑」 이야기를 통해 전생에 관한 믿음을 드러내고, 죽지랑과 술종공의 인연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자 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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