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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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淳甲 |
영어공식명칭 | Hong Soongap |
이칭/별칭 | 홍순(洪淳)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혜영 |
출생 시기/일시 | 1896년 11월 12일 - 홍순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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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9월 - 홍순갑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징역 1년형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1월 - 홍순갑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신의주로 이송 |
몰년 시기/일시 | 1929년 10월 6일 - 홍순갑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9년 - 홍순갑 추모비 건립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홍순갑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
출생지 | 용화리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 |
거주|이주지 | 만주 - 중국 지린성 |
학교|수학지 | 와세다대학 - 일본 도쿄시 |
활동지 | 만주 - 중국 지린성 |
묘소 | 신의주공동묘지 - 평안북도 신의주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신민부 민정부 중앙집행위원|고려국민당 검사부 위원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홍순갑(洪淳甲)[1896~1929]은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경제과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9월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홍순갑은 출옥 후에 만주로 건너가서 신민부(新民府)에 가입하여 민정부(民政部)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홍순갑은 고려국민당에 가입하여 검사부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29년 1월 하얼빈에서 체포되어 신의주로 이송되었다.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았지만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평양복심법원에 징역 5년형이 확정되었다. 홍순갑은 1929년 5월 하순 신의주형무소로 이감되어 복역하던 중 10월 6일 폐결핵으로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홍순갑의 묘소는 평안북도 신의주시 신의주공동묘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홍순갑의 공적을 기려 1977년 건국포장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68년 지역민들이 홍순갑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