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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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根培 |
영어공식명칭 | Kim Geunbae |
이칭/별칭 | 광원(光元),매하(梅下)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상범 |
출생 시기/일시 | 1847년 7월 15일 - 김근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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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5년 - 김근배 성균관박사를 사임하고 낙향 |
몰년 시기/일시 | 1910년 12월 13일 - 김근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31년 - 김근배 매곡사에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김근배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
출생지 | 모현 -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
성격 | 항일 애국지사 |
성별 | 남 |
본관 | 김해(金海) |
대표 경력 | 성균관 박사 |
[정의]
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애국지사.
[가계]
김근배(金根培)[1847~1910]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자는 광원(光元), 호는 매하(梅下)이다. 아버지는 김현교(金顯敎)이고, 아들은 김종호(金鍾昊)이다.
[활동 사항]
김근배는 1847년 7월 15일 지금의 익산시 모현동에서 태어났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조옥승(曺玉承)에게서도 시문을 배웠다. 1866년 병인양요 때 동지를 규합하여 「토적의거격문(討賊義擧檄文)」을 상소하였으며,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외교권을 박탈당하자 성균관 박사를 사임하고 낙향하여 청장년들에게 항일 독립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교육에 힘을 쏟았다.
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로 국권을 상실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김근배는 일본 정부의 회유와 은사금(恩賜金)을 거부하며 나주, 김제, 옥구 등에 은거하면서 청장년을 모집하고 항일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1910년 12월 13일 몸에 돌을 묶고 우물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근배의 저서로는 1947년 아들 김종호가 간행한 5권 2책의 시문집인 『매하유고(梅下遺稿)』가 있다.
[상훈과 추모]
김근배는 1931년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에 건립된 매곡사(梅谷詞)에 배향되었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근배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