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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384
한자 金順鐘
영어음역 Kim Sunjong
이칭/별칭 익성(翼成),고봉(孤峰)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1629[하도서길 13]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박찬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가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1629[하도서길 13]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9년(고종 36)연표보기
몰년 1972년연표보기
본관 김해
대표경력 혁우동맹원|구좌읍 인민위원회 위원장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본관은 김해. 자는 익성(翼成), 호는 고봉(孤峰). 아버지는 김용서(金龍瑞)이다.

[활동사항]

1930년 3월 구좌읍에서 사회주의 사상 고취 및 대중 계몽 운동을 벌이기 위한 비밀 결사 혁우동맹(革友同盟)이 결성될 때 참여하였다. 혁우동맹은 조선공산당에 입당한 신재홍(申才弘)이 주도하는 급진적인 단체였으며, 소집 책임은 김순종이 담당하였다.

1931년 음력 정월 제주읍 내에서 김순종을 비롯하여 강창보(姜昌輔)·부태환·김민화(金玟華)·김한정(金漢貞)·장종식(張鍾植) 등이 모여서 제주도 사회주의 운동자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조선청년동맹 해소, 신간회 해소, 농민 문제, 여성 문제, 기타 운동 방법에 대하여 협의하였다.

1932년 1월 해녀 항쟁이 일어났을 때, 이를 주도한 해녀들은 하도리 출신으로서 김순종과 오문규(吳文奎)가 교사로 재직하던 야학을 다닌 인물들이었다. 김순종은 동지들과 함께 1932년 해녀 항쟁의 배후자로 지목받아 체포되었다.

1933년 2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아 항소하였고, 1933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광복 직후 구좌읍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상훈과 추모]

2005년 3·1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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