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15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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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同張氏 |
영어음역 | Indong Jangssi |
영어의미역 | Indong Ja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집필자 | 김동전 |
[정의]
장금용을 시조로 하고 장보한 등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연원]
시조 장금용(張金用)은 고려 때 삼중대광에 올라 신호위 상장군을 역임했고, 장금용(張金用)의 아들 장선(張善)이 고려 문종조에서 금오위 상장군을 지냈다. 그 후 자손들이 본향지인 인동현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인동으로 삼게 되었다.
[입향경위]
① 장윤태(張允泰)는 시조 장금용(張金用)의 21세손이다. 1605년(선조 38) 경주부윤으로 재직할 때 당쟁에 휘말려 환관의 모함으로 제주에 유배되었다. 제주목 봉개리에 정착하여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② 장보한(張輔漢)은 시조 장금용(張金用)의 23세손, 중조 장백(張伯)의 8세손이다. 1609년(광해군 1)에 영창대군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인목대비를 둘러싼 폐모론이 일어나 정국이 혼란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녹도에 유배중인 형 장기한(張起漢)을 만난 후 제주에 낙향하여 제주 애월포에 정착하였다.
③ 장철(張澈)은 시조 장금용(張金用)의 23세손으로 1604년(선조 37)에 한양에서 출생하여 문과에 급제하였고 판교사감서(判校事監書)를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제주목 고내리에 피난 입도하였다. 입도 후에는 후학을 가르치는 데 전념하여 해은(海隱) 선생이라 일컬어졌다. 하가리(下加里)를 설촌하였다.
[현황]
제주도에 세거하고 있는 인동장씨는 태상경(太常卿) 장백(張伯)의 8세손인 장보한(張輔漢)의 후손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인동남산파(仁同南山派)와 진가파(眞佳派) 및 종파 등이 살고 있다. 인동장씨 종파는 제주입도조 장철(張澈)을 기리기 위해 매년 음력 3월 3일 묘제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