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944 |
---|---|
한자 | 柳海容 |
이칭/별칭 | 덕용(德容),강재(剛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명환 |
[정의]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고흥. 자는 덕용(德容), 호는 강재(剛齋)이다.
[활동 사항]
유해용(柳海容)[1884~1938]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유해용은 1906년 4월[윤달] 8일 최익현(崔益鉉)이 일제의 침략을 응징하기 위하여 각지에 격문을 보내고 궐기를 촉진하여 일으킨 의병 부대에 들어가서 활동하였다. 일본군이 아닌 대한제국의 군대와 싸울 수 없었던 최익현은 1906년 6월 11일 의병 부대를 해산하였고 의병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였다. 전라북도 순창에서 담양으로 진군할 준비를 할 때 진위대의 공격을 받자 유해용은 최익현을 지키기 위하여 최후까지 의병 부대에 남았다. 그러나 다음 날 다른 11명의 지사(志士)와 함께 진위대에 체포되었다. 유해용은 최익현 등과 함께 전주를 거쳐 서울의 일본군 사령부로 압송되어 조사를 받았으며 태형 100대를 맞고 풀려났다.
[상훈과 추모]
1993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