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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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德鉉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명환 |
[정의]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우리의 국권을 침탈하면서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요하여 식민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음을 절감한 이덕현(李德鉉)은 국권 회복 운동을 하고자 결심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헤이그 밀사 사건의 책임을 물어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丁未7條約)에 따라 동년 8월 1일 군대를 해산시켰다. 이에 해산된 군인들이 대거 의병 대열에 참여하자 항일 의병 활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1908년 음력 정월 경기도 양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연기우(延基羽) 의병 부대의 병사인 홍명원과 오영옥이 이덕현에게 국권 회복 운동을 함께 할 것을 권유하자 이에 동참하였다. 이덕현은 경기도 양주군 광릉곡, 대궐 기지, 덕사, 송산동 등지에서 군량을 모집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곧 일본 경찰에 체포된 이덕현은 1908년 9월 22일 경성공소원에서 유형 7년을 선고 받고,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0월 2일 대심원에서 기각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