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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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이후 고구려의 남하로 인한 영주 주변의 상황. 고구려는 광개토왕[재위 391~412]과 장수왕[재위 413~491] 시대에 걸쳐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해 나갔다. 특히 장수왕이 475년(장수왕 63) 한성[지금의 서울]을 공격해 백제의 개로왕을 살해했을 무렵에는 신라 내정을 간섭하는 한편, 죽령 일대까지 영역을 확장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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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부터 통일신라 말기까지 영주 지역의 역사. 영주 지역에는 진한(辰韓) 소국(小國) 가운데 하나인 기저국(己柢國)이 있었다는 학설이 제기되어 있다. 영주 지역은 소백산맥의 남북 지역을 연결하는 군사 및 교통의 요충지로 중시되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북방의 고구려나 남방의 신라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였다. 500년(소지마립간 22) 9월 신라의 소지마립간이 날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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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영주 지역의 역사. 고려시대에는 여러 차례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고을 명칭의 변경과 승격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에 영주 지역에는 강주(剛州)·기주(基州)·흥주(興州)·순안현(順安縣)·영주(榮州)·흥녕현(興寧縣)·순흥부(順興府) 등 고을이 두어졌다. 문화적으로도 영주 지역은 고려시대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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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757년까지 영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급벌산군(及伐山郡)은 삼국시대부터 757년(경덕왕 16) 급산군(岌山郡)으로 명칭이 변경되기 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일대에 있었던 행정구역이다. 급벌산군은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지방 통치를 위해 설치된 행정구역으로 고구려의 영역이었다.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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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940년까지 영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행정구역. 급산군(及山郡)은 757년(경덕왕 16)에 설치되었다. 본래는 고구려 때 급벌산군(及伐山郡)이었다고 한다. 판본에 따라 ‘급산군(岌山郡)’ 혹은 ‘급산군(岋山郡)’으로 기록되어 있다. 757년 군현제(郡縣制)를 강화하고, 명칭을 한자식으로 아화(雅化)하는 과정에서 급벌산군이 급산군으로 변경되었다.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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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940년까지 영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군사 행정구역. 기목진(基木鎭)은 신라 때 설치되어 940년(태조 23)까지 존속했던 군사 행정구역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일대로 추정된다. 군진(軍鎭)은 대체로 신라의 변경지역 가운데 핵심적인 군사 요충지에 설치되어 방어 기능을 담당하였다. 기목진 역시 소백산맥 일대를 관제하고, 신라의 북쪽 변경을 안정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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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757년까지 영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내기군(奈己郡)은 본래 백제의 영토였으나, 신라의 파사이사금[재위 80~112]이 빼앗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삼국을 통일한 후 경덕왕이 내기군을 내령군(奈靈郡)으로 고쳤다. 내이군(奈已郡)·날이군(捺已郡)이라고도 부른다. 내기군은 중앙집권적 고대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지방 통치를 위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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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이루어지는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영상, 공연 등의 분야에서 표현되는 모든 활동과 그 작품. 소백산 자락에 있는 영주시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문화를 형성하였다. 선사시대의 영주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가흥동 암각화와 곳곳에 분포하는 고인돌과 선돌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특히 암각화는 영주문화의 오랜 역사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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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며 수행하는 종교.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공인된 시기는 삼국시대이다. 372년(소수림왕 2) 고구려에서 처음 공인하였으며, 백제는 384년(침류왕 1), 신라는 가장 늦은 527년(법흥왕 14)에 공인하였다. 영주 지역에 본격적으로 불교가 보급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로 보이며, 기록상으로는 669년(문무왕 9) 영전사(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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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와 태장리에 걸쳐 있는 산. 비봉산(飛鳳山)[431m]은 영주시 순흥면의 내죽리와 태장리에 연하여 있는 산이다. 영주에 전해 내려오는 내방가사 중 「덴동어미화전가」는 비봉산에서 벌어지는 화전놀이를 주제로 만든 가사이다. 비봉산은 『재향지(梓鄕誌)』에는 “고을의 진산(鎭山)이다. 소백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여러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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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국망봉 아래에 있었던 삼국시대 절터. 석륜암지(石崙庵址)는 소백산 국망봉 아래에 소재했던 절터로 연혁은 명확하지 않으나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명인이 석륜암을 방문한 기록이 있다. 석륜암은 석륜사(石崙寺)라는 사찰로 창건되었다. 창건 연혁과 관련된 기록은 없으며, 다만 신라의 사찰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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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영주 지역의 역사. 소백산 아래 교통의 요충지였던 영주는 고대부터 삼국의 쟁탈지가 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부석사(浮石寺)가 창건되어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安珦)이 배출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설립되는 등 유교문화를 꽃피워 나갔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기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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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에 있는 삼국시대 벽화고분. 영주 순흥 벽화고분(榮州順興壁畵古墳)은 내부 구조나 벽화의 내용 및 수법으로 보아, 고구려 벽화고분의 영향을 받았지만 강한 지역적 특색을 가미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영주 순흥 벽화고분의 주인공이 고구려인이거나 신라에 귀화한 인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영주시 순흥면의 진산인 비봉산에서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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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의상(義湘)[625~702]은 속성이 김씨(金氏)이고, 아버지는 김한신(金韓信)이다. 대한불교화엄종(大韓佛敎華嚴宗)의 개조(開祖)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의상전교조(義湘傳敎條)에 따르면, 의상은 29세 때인 653년(진덕여왕 7) 경주 황복사에서 출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삼국유사』의 전후소장사리조(前後所藏舍利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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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940년까지 영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인풍현(鄰豐縣)은 삼국시대 때 이벌지현(伊伐支縣)으로, 757년(경덕왕 16)에 설치되었다. 지금의 영주시 부석면 일대로 추정하고 있다. 757년 군현제(郡縣制)를 강화하고, 명칭을 한자식으로 아화(雅化)하는 과정에서 이벌지현에서 인풍현으로 변경되었다. 『삼국사기』 권35 지리지 삭주조에 “급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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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행위의 총칭. 영주시는 경북 북부 내륙 지역으로 야외 노지(爐址)나 빗살무늬토기와 같은 신석기시대 유적이 처음으로 발굴된 곳이다. 또한, 고인돌을 비롯해 선돌, 바위그림과 같은 청동기시대 유적 또한 상당수 발굴되었다. 그리고 삼한시대에는 진한 12국 가운데 기저국(己柢國)이 자리하던 곳으로 비정된다. 이런 사실들을 종교적 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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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희방사역과 죽령 사이에 위치한 도보여행길. 죽령 옛길은 영주와 단양을 연결하던 옛길로 소백산국립공원 내에 있다. 1999년에 영주시에서 죽령 옛길을 도보여행길로 복원하였고, 2007년 12월 17일 명승 제30호로 지정되었다. 죽령은 158년(아달라왕 5)에 열린 길이다. 1999년 영주시에서 죽령의 의의를 되살려 보존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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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에 죽지랑과 관련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죽령재와 죽지랑」은 죽지랑(竹旨郞)[죽지(竹旨)]과 관련한 인물 전설이다. 「죽령재와 죽지랑」의 배경이 되는 죽령재는 보통 죽령(竹嶺)이라 일컫는데, 해발고도는 689m이다. 「죽령재와 죽지랑」은 여러 설화 중에서도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의 「효소왕대 죽지랑(孝昭王代竹旨郎)」 편에 수록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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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의 소백산 제2연화봉과 도솔봉이 이어지는 지점의 해발고도 696m의 고갯길. 죽령 옛길은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과거 영주와 단양을 연결하던 옛길이었으며 소백산국립공원 내에 있다. 죽령 옛길은 ‘대재’라고도 부르며 삼국시대 이래로 봄·가을에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또 소백산맥이 영남과 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