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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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간행된 조선 후기 영주 출신 문신인 성이성의 시문집. 『계서일고(溪西逸稿)』는 성이성(成以性)[1595~1664]의 시문집으로 1863년(철종 14)에 간행되었다. 성이성의 자는 여습(汝習), 호는 계서(溪西),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1627년(인조 5) 문과에 급제한 후 사헌부지평·전라도암행어사·강계부사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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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권성오(權省吾)[1587~1671]는 1612년(광해군 4) 문과 급제 후 칠원현감, 사헌부감찰, 형조정랑 등 관직을 지냈으며, 정묘호란 때 인조를 강화도까지 호가하였다. 권성오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수(子守), 성지(省之), 호는 동암(東巖)이다. 아버지는 경기전참봉을 지낸 권호신(權虎臣)[1558~1629],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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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백1리에 있는 창원황씨 집성촌. 영주의 창원황씨(昌原黃氏)는 고려시대 의창현[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호장을 지낸 황양충(黃亮沖)을 시조로 하고, 황석주(黃石柱)를 중시조로 한다. 입향조는 황승후(黃承厚)로, 선대의 세거지이자 관향인 창원에서 순흥 병산으로 이거하였다. 옛날에는 마을 주변에 억새가 많이 자랐는데, 가을이면 억새꽃이 지천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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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년 11월 17일부터 1520년 9월 8일까지 조선 전기 영주 출신 문신인 황사우가 쓴 일기. 『재영남일기(在嶺南日記)』는 중종 대에 경상도도사를 지냈던 황사우(黃士祐)[1486~1536]가 재임 중에 있었던 일을 날짜순으로 적은 일기이다. 황사우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국보(國輔), 호는 용헌(慵軒)·사우(士佑)이다. 아버지는 황희성(黃希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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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병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 첨모당(瞻慕堂)은 1429년(세종 11) 황전(黃躔)[1391~1459]이 세운 정자이다. 황전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형보(亨甫), 호는 첨모당이다. 아버지는 황처중(黃處中)이다. 세종 연간에 통례원봉례를 지낸 문신으로 증손 황사우(黃士祐)가 높은 관직에 오르자 공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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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사우(黃士祐)[1486~1536]는 문과 장원 급제 후 경상도도사·영천군수·예조판서·우찬성 등 내·외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황사우의 자는 국보(國輔), 호는 용헌(慵軒),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증조할아버지 황전(黃躔)[1391~1459]은 영일현감을 지냈으며, 할아버지 황귀경(黃貴卿)은 자헌대부 호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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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서(黃曙)[1554~1603]는 문과 급제 후 호조정랑·상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풍기가장(豊基假將)으로 임명되었다. 황서의 자는 광원(光遠), 호는 종고(宗皐),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황희성(黃希聖), 할아버지는 직장을 지낸 황사호(黃士豪), 아버지는 훈도를 지낸 황여규(黃汝奎), 어머니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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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우거한 문신. 황섬(黃暹)[1544~1616]은 문과 급제 후 사간원정언·병조참지·안동부사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지냈다. 광해군 연간 정치적 탄압을 받아 경상도 풍기군으로 낙향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황섬의 자는 경명(景明), 호는 식암(息庵) 또는 돈암(遯庵), 본관은 창원(昌原), 시호는 정익(貞翼)이다. 할아버지는 우참찬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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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우거한 문신. 황시(黃是)[1555~1626]는 문과 급제 후 병조정랑·병조참의·삼척부사 등을 지냈다. 광해군 즉위 이후 경상도 풍기군으로 낙향하여 학문 활동에 전념하였다. 황시의 자는 시지(是之), 호는 부훤당(負暄堂),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증 좌찬성 황희성(黃希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찬성 황사우(黃士祐)[1486~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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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우거한 문신. 황유중(黃有中)[1564~1620]은 문과 급제 후 성균관전적·병조좌랑 등을 지냈다. 광해군 연간에 풍기로 낙향하여 학문 연구에 힘썼다. 황유중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중정(仲正), 호는 조대(釣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우찬성 황사우(黃士祐)[1486~1536], 할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 황응규(黃應奎)[1518~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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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응규(黃應奎)[1518~1598]는 문과 급제 후 전생서주부·호조정랑·청도군수·동지돈녕부사 등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켰다. 황응규의 자는 중문(仲文), 호는 송간(松澗),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아버지는 우참찬 황사우(黃士祐)[1486~1536]이며, 어머니는 정경부인 영일오씨(迎日吳氏)이다. 부인은 의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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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인채(黃鱗采)[1716~1799]는 문과 급제 후 종부시주부·제주판관을 지냈으며, 소수서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황인채의 자는 국량(國亮)·계칙(季則), 호는 양몽재(養蒙齋),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증 좌승지 황이무(黃以茂), 증조할아버지는 증 대사헌 황정(黃渟), 할아버지는 수직으로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된 황도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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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 독립운동가. 황정흠(黃鼎欽)[1889~1955]은 1919년 4월 9일 영주군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황정흠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이경(耳敬), 호는 후송(後松), 이명은 황승흠(黃昇欽)이다. 대사헌을 지낸 황섬(黃暹)[1544~1616]의 11대 종손이며, 아버지는 황재석(黃在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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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 독립운동가. 황정흠(黃政欽)[1881~1949]은 1919년 4월 9일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헌병들에게 체포되었다. 황정흠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도민(道敏), 이명은 황정흠(黃正欽)이다. 아버지는 황재훈(黃在薰)이다. 황정흠은 어려서부터 신체가 강건하고 힘이 매우 세었으며, 무인의 기질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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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효공(黃孝恭)[1496~1553]은 문과 급제 후 승문원·성균관·사간원·사헌부 등에서 재직하였다. 낙향한 후에는 구암정사(龜巖精舍)를 짓고 학문 연구와 후학을 양성하였다. 역학과 도상학에 밝았으며 이황(李滉)[1501~1570]과 교유하였다. 황효공의 자는 경보(敬甫), 호는 구암(龜巖),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증조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