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지도』 「영천군·순흥부·풍기군지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278
한자 嶺南地圖榮川郡順興府豊基郡地圖
영어공식명칭 『Youngnam Jido(Atlas of Korea)』 「Yeongcheon-gun·Sunheung-bu·Punggi-gun Map」
이칭/별칭 비변사인방안지도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감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8년 12월 22일 - 영남지도 보물 제1585호 지정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지도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조선 후기에 제작된 『영남지도』에 수록된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 지도.

[개설]

『영남지도(嶺南地圖)』는 1리 방안(方眼) 위에 각 군현을 그림으로 나타낸 지도책으로 지도의 크기는 군현의 대소(大小)에 따라 차이가 난다. 지도책에는 비변사(備邊司)의 도장이 찍혀 있어 조선 정부가 지방의 원활한 통치를 위해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영남지도』는 같이 간행된 『호서지도』 등과 함께 ‘비변사인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라고 명명되기도 했다.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영남지도』 안에 수록된 71개 고을 지도 중 하나이다.

[제작 발급 경위]

『영남지도』는 지도 뒷면에 찍혀져 있는 비변사 도장을 통해 정부 주도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간행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지명의 변경 사항을 통해 유추해 보면, 제1책 「하동지도」에는 하동의 읍치가 1745년(영조 21) 이전에 이동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제5책의 「창원지도」에는 1760년(영조 36) 설치된 조창인 반산창(盤山倉)이 생략되어 있다. 또 산청(山淸)과 안의(安義)의 군현명이 개칭 이전인 산음(山陰)과 안음(安陰)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영남지도』는 1760년 이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형태]

『영남지도』는 조선 후기 경상도의 71개 군현이 모두 수록된 지도책으로 총 6책 71매로 구성되어 있다. 지도책의 크기는 가로 22.2㎝, 세로 36.3㎝이며, 방안의 크기는 7~8.5㎝이다. 영천군은 제6책, 순흥도호부풍기군은 제2책에 수록되어 있다.

[구성/내용]

조선시대 영주는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으로 구성되었기에, 『영남지도』에서는 이들 고을을 각각의 지도로 그렸다.

「영천군지도」는 제목이 오른쪽 위에 있으며 그 왼쪽으로 영천의 조세 항목과 함께 소속 면(面), 타 군현 등과의 거리가 자세하게 주기 되어 있다. 채색된 형태로 전체적인 군현의 모습은 지도 하단에 배치해 놓았다. 산천은 ‘∧’ 모양이 연접한 산맥으로 표현되어 있고, 하천은 청색 바탕으로 그려 넣었다. 읍치는 적색 바탕의 방형으로 표기했으며, 소속 면은 적색 테두리에 황색 바탕의 장방형으로 되어 있다. 창보역(昌保驛)은 분홍색 바탕의 장방형으로 표현하였다. 각종 누각과 향교·읍창·서원·암자 등은 건물 모양을 회화식으로 나타내었고, 봉수대는 적색의 불씨 모양으로 표현해 놓았다. 지도 상단에는 두 곳의 영천군 월경지인 북면(北面)과 임지면(林只面) 등이 각각 순흥과 봉화에 있다.

「순흥부지도」는 제목이 오른쪽 위에 있으며, 제목 왼쪽으로 조세와 행정에 관련된 주기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지도에는 소백산맥을 넘어가는 총 4개의 재가 표현되어 있으며, 산지는 ‘∧’자 모양을 연결한 산맥으로 표시하였다. 하천은 엷은 청색의 바탕으로 그려 넣었고 백운동서원[현 소수서원]·단계서원·향교·읍창·부석사 등의 건축물은 회화식으로 표기하였다. 읍치는 적색 바탕의 방형으로 표현되었고, 소속 면은 적색 테두리에 황색 바탕의 장방형으로 해당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관아와 객사 등의 주요 건물은 생략되었으며, 도로는 적색과 회색 선으로 구별하여 그려 넣었다. 순흥의 북쪽은 태백산과 소백산이 접해 있고 3개의 월경지인 창락면·대룡산면·와룡면이 각각 풍기·안정·봉화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풍기군지도」도 오른쪽 위에 제목을 기재하였다. 그 옆으로는 풍기군의 조세와 함께 각 면과 인접한 군현과의 거리가 주기 되어 있다. 산맥은 ‘∧’이 연달아 접해 있는 모양으로 표현하였으며, 하천은 엷은 청색으로 그려 넣었다. 읍치는 적색 바탕의 방형 안에 표시하여 부각했다. 또 소속 면은 적색 테두리 안에 황색 바탕의 장방형으로 표현하여, 읍치와 면을 구분해 놓았다. 북쪽으로는 소백산죽령을 표기하였고, 향교·서원·창고·사찰·영정원참(永貞院站) 등의 건물은 그림으로 묘사하였지만, 객사와 관아 같은 주요 시설물은 지도에서 생략하였다.

[의의와 평가]

18세기 중엽에는 전국적으로 다양한 지도류와 읍지류가 간행되었다. 그중에서도 『영남지도』는 방안 위에 제작되었기에 이후의 지도 제작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지도 안에 각 군현의 정보를 수록하고 있어, 지도가 편찬되던 18세기 중반 무렵 영주 지역의 상황을 살펴보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