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586
한자 權垕
영어공식명칭 Gwon Hu
이칭/별칭 후지(厚之),청오당(聽梧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02년연표보기 - 권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33년 - 권후 진사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60년 - 권후 증광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63년 - 권후 유곡도찰방 제수
몰년 시기/일시 1667년연표보기 - 권후 사망
거주|이주지 권후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묘소|단소 권후 묘소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문단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안동(安東)
대표 관직 성균관전적|형조좌랑|유곡도찰방

[정의]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개설]

권후(權垕)[1602~1667]는 1660년(현종 1)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성균관전적, 형조좌랑, 유곡도찰방 등을 역임하였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지역의 많은 명현과 교유하였다.

[가계]

권후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후지(厚之), 호는 청오당(聽梧堂)이다. 아버지는 진사 권주(權𪐴)[1576~1651], 어머니는 계공랑 류탁(柳濯)의 딸 의인 진주류씨(晉州柳氏)인데, 큰아버지 진사 권점(權點)의 양자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통례원좌통례를 지낸 권두문(權斗文)[1543~1617], 증조할아버지는 장악원정을 지낸 권유년(權有年)이다. 부인은 진사 채간(蔡衎)의 딸 평강채씨(平康蔡氏)이다.

[활동 사항]

권후는 17세 때 정경세(鄭經世)[1563~1633]로부터 『소학(小學)』을 배웠다. 이때 정경세는 권후에 대하여 “성격이 고요하고 뜻이 독실하다”라고 평가하였다. 일찍이 학문에만 뜻을 두었는데, 부모의 지시로 여력이 있을 때 과거를 준비하였다.

권후는 1633년(인조 11)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1660년(현종 1)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성균관전적, 공조좌랑, 형조좌랑을 거쳐, 1663년 유곡도찰방에 제수되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고향 영천(榮川)으로 돌아왔다. 권후는 시문으로 명성이 높아 한양에까지 이름을 떨쳤으며, 조경(趙絅)[1586~1669], 채유후(蔡裕後)[1599~1660], 류진(柳袗)[1582~1635], 김응조(金應祖)[1587~1667], 홍여하(洪汝河)[1620~1674], 정칙(鄭侙)[1601~1663], 김계광(金啓光)[1621~1675] 등 명현들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저술]

권후의 유고로 『청오유집(聽梧遺集)』이 있다.

[묘소]

권후의 묘소는 봉화군 봉화읍 문단리 방현(方峴)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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