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632
한자 孫興慶
영어공식명칭 Son Heung-gyeong
이칭/별칭 경여(景餘),명암(鳴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43년연표보기 - 손흥경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68년 - 손흥경 진사시 급제
몰년 시기/일시 1611년연표보기 - 손흥경 사망
거주|이주지 손흥경 이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우곡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손흥경 묘소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보계리 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경주(慶州)
대표 관직|경력 진사

[정의]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학자.

[개설]

손흥경(孫興慶)[1543~1611]은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이황(李滉)[1501~1570]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가계]

손흥경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여(景餘), 호는 명암(鳴巖)이다. 아버지는 기자전참봉을 지낸 손난(孫蘭), 어머니는 숙부인 원주변씨(原州邊氏), 할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을 지낸 손의형(孫義亨), 증조할아버지는 회령판관을 지낸 손근(孫瑾)이다. 부인은 참봉을 지낸 이봉령(李鳳齡)의 딸 의인 우계이씨(羽溪李氏)이다. 현재 손흥경의 후손은 영주시 부석면 보계리 각암(角岩) 일대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다.

[활동 사항]

손흥경은 1568년(선조 1)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1568년 이황의 문하로 들어가 학문을 배웠다. 이 무렵 부모의 병환이 심해지자 봉양을 위하여 거처를 경상도 영천군(榮川郡) 우곡리(愚谷里)[지금의 영주시 부석면 우곡리]로 옮겼다. 이후 과거에 뜻을 버린 채 학문 연구에 주력하였다.

손흥경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같은 고을의 김개국(金盖國)[1548~1603]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곽재우(郭再祐)[1552~1617]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만년에는 거처 인근에 명암정(鳴巖亭)을 짓고 소요하였다. 이곳에서 20년간 맏형 손흥국(孫興國)을 모시고 살았기에 주위 사람들이 그 우애를 높이 칭송했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손흥경의 문집으로 『명암집(鳴巖集)』이 전한다.

[묘소]

손흥경의 묘소는 영주시 부석면 보계리 각암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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