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6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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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緯恒 |
영어공식명칭 | Jang Wi-hang |
이칭/별칭 | 천응(天應),운소(雲巢),와은(臥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67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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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05년 - 장위항 생원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727년 - 장위항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731년 - 장위항 전적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732년 - 장위항 사헌부감찰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733년 - 장위항 자인현감 부임 |
몰년 시기/일시 | 1747년![]() |
출생지 | 장위항 출생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면 |
거주|이주지 | 장위항 이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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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가|처가 | 장위항 외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면 |
부임|활동지 | 장위항 부임지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
묘소|단소 | 장위항 묘소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월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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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인동(仁同) |
대표 관직 | 자인현감 |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장위항(張緯恒)[1678~1747]은 지금의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영조 연간 색목(色目)이 만연했던 현실을 개탄하며, 이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향촌에서는 향교·서당·서원의 기문과 상량문 등을 지었으며, 직접 운곡서당(雲谷書堂)을 경영하는 등 문풍 진작을 위해 힘썼다.
장위항의 자는 천응(天應), 호는 운소(雲巢)·와은(臥隱),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장여화(張汝華)[1566~1621], 증조할아버지는 장용경(張龍慶)[1604~1695], 할아버지는 장련(張璉), 아버지는 장옥상(張玉相)이다. 어머니는 이세구(李世龜)[1646~1700]의 딸 선성이씨(宣城李氏)이며, 부인은 통덕랑 전만중(全萬重)의 딸 옥천전씨(沃川全氏)이다.
장위항은 1678년(숙종 4) 외가인 안동부 풍산현에서 출생하였다. 17세 때 이유장(李惟樟)[1625~1701]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때때로 재종조인 장신(張璶)[1629~1711]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704년(숙종 30) 아버지가 위독하여지자 증세를 살피며 시약(侍藥)하였다. 1705년에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1727년(영조 3)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다.
장위항은 1731년 전적, 1732년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었다. 1733년 자인현감으로 부임하였으며, 1735년(영조 11) 임기를 마친 후 귀향하였다. 1736년 영천군(榮川郡) 남쪽의 와운곡에 숙야재(夙夜齋)와 역락헌(亦樂軒)을 짓고 ‘운곡유거(雲谷幽居)’라고 하였으며, 둑을 쌓아 소나무·대나무·매화·국화를 심은 뒤 ‘사우포(四友圃)’라 명명하였다. 당시 와운곡 남쪽에는 장신이 세웠던 운곡서당이 있었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폐허가 된 상태였다. 이에 동네 부로 들과 논의하여 운곡서당 곁에 재와 당을 옮겨 세우고는 전토를 갖추었으며, 이곳에서 동네 수제자들과 책을 읽으며 학문을 토론하였다.
장위항의 문집으로 6권 3책의 『와은집(臥隱集)』이 전한다. 『와은집』은 1767년(영조 43)에 증손자 장성구(張成矩)가 편집하였고, 1897년(광무 1)에 7대손 장사후(張師厚)가 간행하였다.
장위항의 묘소는 영주시 문수면 월호리 노평산(魯坪山)에 있다.
장위항의 동생 장위방(張緯邦)[1697~1753]이 가장, 1747년(영조 23) 이광정(李光庭)[1674~1756]이 묘지명, 1751년(영조 27) 권상일(權相一)[1679~1759]이 행장을 각각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