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716
한자 李天相
영어공식명칭 Lee Cheon-sang
이칭/별칭 재백(才伯),신계(新溪),경퇴재(景退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37년연표보기 - 이천상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08년연표보기 - 이천상 사망
거주|이주지 이천상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만방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이천상 묘소 -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어지리 산40
사당|배향지 종산사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만방리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전의(全義)

[정의]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효자.

[개설]

이천상(李天相)[1637~1708]은 효행과 학문으로 참봉에 천거되었다.

[가계]

이천상의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재백(才伯), 호는 신계(新溪)·경퇴재(景退齋)이다. 아버지는 이군정(李君靖),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민효남(閔孝南)의 딸 영천민씨(榮川閔氏), 할아버지는 군자감봉사을 지낸 이덕량(李德良), 증조할아버지는 충의위 이백춘(李百春)이다. 부인은 허수(許洙)의 딸 양천허씨(陽川許氏)와 배윤길(裵胤吉)의 딸 흥해배씨(興海裵氏)이다. 이천상의 선대는 한양에 거주하였는데, 고조할아버지인 이민도(李敏道)가 1546년(명종 1) 이홍윤(李洪胤)의 옥사를 피해 영천군(榮川郡)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이민도의 후손이 지금의 영주시 부석면 용암리문수면 만방리 일대에 세거하게 되었다.

[활동 사항]

이천상은 어린 시절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9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고기반찬을 입에 대지 않았으며, 할아버지 상례 때에도 13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삼년상을 정성껏 치렀다. 90세가 넘은 할머니가 위중해지자 항상 곁에 있으며 시중을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도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이질에 걸려 극진한 간호에도 차도가 없었는데, 하루는 꿈속에서 노인이 나타나 약화제(藥和劑)를 주는 꿈을 꾸었고, 잠에서 깬 뒤 그 약화제와 똑같이 처방하니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이천상은 일찍이 배유장(裵幼章)[1618~1687]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이황(李滉)[1501~1570]의 학문을 계승하였다. 이에 이황을 흠모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서재를 ‘경퇴재’라고 이름 지었다. 효성과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학문에도 두각을 나타내어 『가례통례(嘉禮通解)』, 『성리후설(性理後說)』, 『성리지남(性理指南)』, 『이기호발변(理氣互發辨)』 등 성리서 및 예학서를 저술하였다.

[묘소]

이천상의 묘소는 봉화군 법전면 어지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천상영주시 문수면 만방리에 세워졌던 종산사(鍾山祠)에 제향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 1981년에는 후손들이 이천상의 유고를 엮어 『신계선생문집(新溪先生文集)』을 간행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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