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722
한자 金斗甲
영어공식명칭 Kim Du-gap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김두갑 이강년 의진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김두갑 김상태 의진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09년연표보기 - 김두갑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1년연표보기 - 김두갑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김두갑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김두갑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지도보기
활동지 김두갑 활동지 - 경상북도|충청북도 일원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개설]

김두갑(金斗甲)[?~1909]은 이강년(李康秊)[1858~1908]이 1907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08년 7월 이강년이 체포된 뒤에는 의진의 지휘권을 인계받은 김상태(金尙台)[1864~1912]의 의진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가계]

김두갑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출신이다.

[활동 사항]

김두갑은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하는 을사늑약에 이어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한국군 강제 해산 등과 같은 일제의 노골적인 침략정책에 분개하던 중 1896년 경상도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이강년이 1907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투신하여 충청북도 제천·단양, 경상북도 순흥·풍기 일대를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7월 2일 이강년이 충청북도 청풍 작성전투(鵲城戰鬪)에서 중상을 입고 일본군에 붙잡힌 뒤 김상태가 부대의 지휘권을 인계받고 의진을 이끌었다. 김상태는 이강년의 중군장으로서 본진과 분리와 연합을 계속하며 충청도와 경상도의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이강년이 체포되자 부대를 독자적으로 편성하여 1911년 체포될 때까지 친일분자를 처단하고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김두갑은 김상태 의진에 소속되어 충청북도 영춘·단양, 경상북도 풍기·순흥·봉화 등지에서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김두갑은 일본군의 의병 대토벌작전에 밀리다가 1909년 11월 17일 제천경찰서와 영주수비대의 공동수색대에 의해 윤영석(尹永錫)[?~1909]·윤우석(尹遇錫)[?~1909]·윤영구(尹永九)[?~1909]·김수갑(金守甲)[?~1909]·김봉정(金鳳政)[?~1909]·김치순(金致順)[?~1909]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김두갑은 영주수비대로 압송되던 중 탈출을 하려다가 총살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두갑은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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