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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일제의 침략에 대한 저항 운동을 한 사람들. 일제 강점기의 제주 지역 항일운동가들의 직업 구성을 보면, 농수산업·상업·신문기자의 순으로 나타난다. 일제 강점기 제주도민의 주업은 농업이었으므로, 주도 세력 가운데 농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농업을 제외하면 항일운동가들의 직업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특히 상업·금융업·해운업·자영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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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강필주(姜弼周)이다. 딸은 2007년 현재 광복회 제주특별자치도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강혜선이다. 한림공립보통학교 재학 중 협재소년회에 가입하였고, 한글 잡지 『어린이』를 읽으면서 민족 의식이 싹텄다. 1931년 6월 윤한진(尹漢珍)의 단추 공장에 취직하였으며, 1933년 1월 독서회에 가입하여 사회주의 서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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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우도에 있는 사립 영명의숙(永明義塾) 4년 과정을 마치고, 1926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영명의숙 교사로 재직하면서 계몽극을 만들어 공연하고 야학에서 문맹 퇴치 운동을 하였다. 1931년 3월 조선공산당원 신재홍(申才弘)·오문규(吳文奎)·문도배(文道培)·김시곤(金時坤)·김성오(金聲五) 등과 함께 사회주의 항일 단체인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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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호는 문소(文巢)·소범(素凡)이다. 아버지는 강모수(姜毛遂)이며 어머니는 한정순(韓貞順)이며 부인은 임남철(林南喆)이다. 3세 때 아버지를 잃었다. 화북사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어머니를 따라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삼열리 815번지로 이사하여 어려운 소년기를 보냈다. 12세 때 어머니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저사구(猪飼區)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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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8년 3월 제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3월 강기찬은 고병희(高秉禧)·조대수(趙大洙)·고영희(高永禧)·김형수(金炯洙)·임상국(任祥國) 등과 함께 무정부주의 연구에 필요한 문고(文庫)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문고 마련을 위해 각자 월 3원씩 갹출(醵出)하여 사상 서적을 구입하였고, 매달 1회 회합하여 공동으로 연구하였다. 동지를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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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어릴 때 2년간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1922년 애월읍 신엄리에 있는 일신학교(日新學校)에서 1년 동안 배웠다. 1926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 있는 금구소학교(金歐小學校) 야간부에서 5년 동안 공부하였다. 전기제작소 공원으로 일하던 중 일본 공산당 당원 김귀영(金貴榮)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 사상에 공감하였다.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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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 강현순(姜炫淳)의 아들로 제주읍 삼도리 58번지에서 태어났다. 1932년 충청북도 예산농업학교 재학 시 비밀 결사체를 조직하고 동맹 휴업을 주도하는 등의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이다. 강봉주는 전주제이공립보통학교와 제주공립농업학교를 거쳐 1930년에 예산농업학교로 옮겼다. 예산농업학교 4학년 재학중인 1932년 5월 1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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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강수오는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의 선봉대장 강창규의 동생으로, 형과 함께 거사에 참여하였다. 이때 체포된 사람들은 1919년 2월 4일 첫 재판에서 선고를 받았으나 강수오는 이 재판이 있기도 전인 1918년 12월 27일 고문으로 사망하였다. 거물급 주동자인 형을 붙잡지 못하자 더 심한 고문을 하다 숨지게 한 것으로 보인다.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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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아버지 강기업(康基業)은 민족 교육에 뜻을 두고 화북사립보통학교 설립에 기여한 인물이었다. 광주보통고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300여 명의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투쟁하였다. 이 사건으로 1930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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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진주. 가명은 강양일(姜良一)이다. 아버지는 강제원(姜齊元)이며, 항일운동가강창보(姜昌輔)의 아우이다. 제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1925년 4월 제주공립농업학교에 입학하였다. 제주공립농업학교 2학년 재학 중 일본인 교사 야나기다(柳田彦二)의 조선인 학생 차별에 항거하여 동맹 휴학을 하였다가 주모자로 지목되어 퇴학당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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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강제원(姜齊元)이며 부인은 김윤성(金允聲)이다. 김석익(金錫翼)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서울에 있는 중동학교에서 중등 과정을 수료하였다. 1921년 제주도에서 반역자구락부를 조직하여 항일 운동에 나선 이래 평생 항일 투쟁으로 일관하였다. 1925년 송종현(宋鍾炫)·김택수(金澤銖) 등과 함께 제주도 최초의 사상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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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춘근은 평소에 법정사 인사들과 교류가 있던 관계로 법정사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거사 당일인 1918년 10월 7일에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체포된 사람들은 1919년 2월 4일 첫 재판에서 선고를 받았지만 그는 일제의 가혹한 고문을 받다가 재판에까지 가지 못하고 1918년 1월 6일에 사망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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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 본관은 진주. 본명은 강년국(姜年國)이며 세례명은 아가다이다. 아버지는 강두훈(姜斗勳)이며 어머니는 홍소사(洪召史)이다. 1910년 신성여학교에 입학하여 1915년 3월 졸업하였다. 1919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전라남도에 있는 진도공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21년 제주에서 최정숙(崔貞淑)과 함께 여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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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고경수가 제주공립농업학교 2학년에 재학하고 있던 1931년은 일제의 황민화 정책이 시작되고 있던 시기였고, 특히 황민화 교육이 강도 높게 실행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조선인 학생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제주공립농업학교 1931년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는 교내 행사에서 일황(日皇)의 칙어를 낭독하면 묵념을 하게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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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가명은 김민우(金民友)·차석동(車石東)·남해명(南海明)·김영두(金永斗)이다. 아버지는 한학자 고성집(高性輯)이다. 항일운동가 고순흠(高順欽)과는 가까운 인척 사이이다. 서울에 있는 정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1923년 4월 경성공립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25년 제주의 첫 사상 단체인 신인회(新人會)를 창립하였고,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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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조천공립보통학교 6학년 재학 중이던 1931년 1월 학교 신년식 행사의 불참을 주동한 주모자로 지목되어 졸업 사정회에서 제외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항일 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중학교를 졸업하였고, 주오대학교[中央大學校] 법학부에 입학하였다. 주오대학교 재학 중이던 1938년 학우 고운봉 등 5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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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8년 제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 입학하였다. 세이소쿠영어학교 재학 중 조선 유학생들의 무정부주의 비밀 결사인 형설회(螢雪會)와 박렬(朴烈)이 조직한 흑도회(黑濤會)에 가입하였다. 흑도회가 박렬이 주도하는 흑우회(黑友會)와 김약수(金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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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유생. 본관은 제주. 자는 경지(景志), 호는 초광(樵㹰), 초명은 고구훈(高龜訓)이다. 일명 고승천(高承天)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유학(幼學) 고영길(高永吉)이다. 고사훈은 나이 30살에 이르러서야 한학에 열중하고 북학을 배워 이용후생을 실천하려 하였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체결되자 육지에서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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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자는 자유(自由), 호는 죽암(竹岩). 아버지는 성균관 교수였던 능봉(菱峰) 고성겸(高性謙)[1856~1899]이며,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고경흠(高景欽)[1910~?]의 8촌 형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현재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 23-1에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고순흠의 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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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4년 구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6학년 때 일본인 교장 나카야마[中山重義]가 조선어 사용을 억제하는 것에 항의하여 정학 처분을 받았다.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심상고등소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노동 현장에서 조선인에 대한 극심한 차별을 체험한 후 항일 투쟁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1942년 4월 중학교 동창 윤병윤(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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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김장환이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의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1919년 3월 16일 제주에 도착하였다. 조천 지역 유지인 김시범(金時範)을 만나 서울의 상황을 설명하였고, 김시범은 거사를 결심하였다. 김시범은 김시은(金時殷)·김장환과 함께 3월 17일부터 조천리 미밋동산에서 거사를 발의하고 동지 규합에 나섰다. 3월 19일까지 14명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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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0년 협성청년회가 운영하던 노동 야학에서 제주청년동맹 회원 김두성(金斗性)·김일준(金日準) 등과 함께 마을 부녀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31년 1월 15일 일본 도쿄에서 사망한 동향 출신의 항일운동가 한영섭(韓永燮)의 시신이 1월 19일에 도착하자, 제주청년동맹은 동지장(同志葬)으로 치루기로 하였다. 상가(喪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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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1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 졸업 사정회에서 학교 당국은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를 제적하고, 양두옥(梁斗玉)·신창진(愼昌珍)에게 유급 조치를 내렸다. 이들이 학교 의식에서 천황의 칙어를 낭독할 때 묵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1931년 3월 7일 김원요가 일본인 담임교사에게 부당한 조치를 철회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항의하자,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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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3년 12월 제주공립보통학교 5년을 중퇴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사카의 여러 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공산주의 항일 지사 이익우(李益雨)를 만나 공산주의 계열의 비밀 조직에 가담하였다. 1929년 9월 귀향하여 한림리에서 양화상(洋靴商)을 운영하면서 항일 운동을 시작하였다. 1932년 5월경 양병시(梁秉時)·장한호(張漢鎬) 등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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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9년 3·1운동 당시 제주도 조천 지역에서 만세 시위 운동을 촉발시킨 사람은 김장환(金章煥)이었다. 김장환은 서울에서 3·1운동에 참여하다 쫓기게 되자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3월 16일에 제주에 도착하였다. 김장환은 김시범(金時範)을 찾아 거사를 논의하고, 김경희를 비롯하여 고재륜(高載崙)·황진식(黃鎭式)·김용찬(金容燦)·백응선(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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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제주에도 그 영향이 미쳤다. 김장환(金章煥)이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제주에 도착하여 김시범(金時範)과 협의하여 조천리 미밋동산에서 거사하기로 결정하고 3월 17일부터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때 동지로 참여한 사람은 김년배를 비롯하여 김시은(金時殷)·고재륜(高載崙)·김형배(金瀅培)·황진식(黃鎭式)·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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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광주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1929년 5월 최규문(崔圭文)·김상환(金相奐)·김보섭(金普燮) 등과 함께 독서회를 결성하였다. 이 독서회는 광주 지역의 항일 학생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결성된 독서회 중앙본부의 하부 조직이었다. 독서회는 전 회원을 5개조로 나누었고, 김대원을 비롯한 오쾌일·김상환·김보섭·윤창하(尹敞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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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츨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안동. 호는 철초(鐵草). 아버지는 한성전보사 주사를 지낸 김병원(金炳元)이며, 어머니는 양갑생(梁甲生)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서 태어났다. 제주공립보통학교(제주북초등학교의 전신)를 거쳐 1929년 3월에 부산사립실업중학교를 졸업한 뒤 귀향해 농사를 지었다. 1931년 6월에 제주청년동맹 제주읍지부에 가입하여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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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때 제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선비. 당시 의병장이었던 고사훈(高仕訓)[1871~1909]은 1908년 7월에 제주도가 일본인의 손에 들어간다는 소문을 당시 제주군수였던 윤원구(尹元求)로부터 전해 듣고 의병 활동을 도모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김석윤(金錫允)[1877~1949], 노상옥(盧尙玉)과 함께 제주읍 이도리 광양에 대장간을 차려 무기를 제조하는 한편 황사평에서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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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제주공립보통학교(제주북초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제주공립농업학교(제주관광산업고등학교의 전신)를 다녔다. 문제가 된 제주공립농업학교의 부당한 졸업사정사건의 발단은 교내 행사에서 일황의 칙어 낭독을 거부한 김원요(金源堯)와 일제의 황민화 교육과 민족적 차별에 대해 모멸감과 저항심을 갖고 있던 양두옥(梁斗玉)[1914~1966]과 신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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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자는 경덕(景德), 호는 송산(松山) 또는 솔뫼. 아버지는 정의현감이었던 김문주(金汶株)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 소재하고 있던 의흥학교(義興學校)에서 초등과정을 마쳤다. 1908년(순종 2)에 한성고등보통학교(경기고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하였고, 1911년 4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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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제주3.1운동을 주도했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호는 목우(木牛). 아버지는 김중진(金重珍)이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3월에 사립 의신학교(義信學校)를 졸업하였으며, 1912년에 제주공립농업학교(제주관광산업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였다. 1915년에는 경기도 수원의 조선총독부 수원고등농업학교를 졸업하였는데 졸업 동기생으로 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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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삼만은 법정사에 살면서 인부일을 하던 사람으로 법정사 항일운동의 사전 준비단계부터 참여하였다. 1918년 9월 14일부터 봉기에 쓰일 곤봉, 깃발, 그리고 각 마을에 배포할 격문 등을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인 1918년 10월 7일에는 후군대장으로서 군중의 후미에서 지휘하였다. 체포된 뒤 191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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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 일명 김읍언. 제주시 외도동 1715번지에서 태어났으며, 법정사의 주지로서 교도들에게 항일사상을 고취하였다. 김상언은 법정사의 항일 운동에 참여하여 1918년 10월 7일 강창규와 함께 중문 경찰관 주재소의 건물과 기구·문서 등을 파괴하고 불태웠으며, 일본인을 구타하여 부상을 입혔다. 강창규의 명령을 받아 전선과 전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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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7년 제주 광양서재 김병규 문하에서 통감, 사서, 사략 등을 사사하고 1891년에는 같은 광양서재에서 김설월에게 금강반야경을 마쳤다. 18세가 되던 1894년에는 전주 위봉사에서 박만하를 은사로 출가하였다. 1898년 해남 대흥사에서 내전 초등과를 수료하였고, 1902년 통영군 용화사에서 사교과를 수료하였다. 1916년 범어사에서 이회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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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제주 출신의 한학자이자 향토사학자. 본관은 광산. 자는 윤경(胤卿)·윤경(允敬)·홍점(鴻漸), 호는 심재(心齋)·일소도인(一笑道人)·해상실사(海上佚史). 초명은 김석조(金錫祚)이다. 아버지는 김창규(金昌圭)이며, 조선 말기에 의병운동을 벌였던 김석윤(金錫允)[1877~1949]의 동생이다. 여덟 살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의 기초를 배웠으며, 열세 살 때 할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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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아버지는 김용익(金用益)이다. 일제강점기 우도에서 강관순·신재홍과 더불어 항일 운동의 삼천재(三天才) 또는 삼총사라 불리웠을 만큼 우도 출신의 대표적인 항일운동가이다. 1930년 3월 구좌읍에서 신재홍·오문규(吳文奎) 등과 함께 비밀 결사 혁우동맹을 결성하였다. 1931년 4월 혁우동맹이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혁우동맹을 해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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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직공으로 일하는 동안 제주 출신의 문맹(文盲) 교포들이 일제로부터 부당한 착취와 압박을 받는 것에 분개하였다. 1938년 1월경부터 이봉춘(李奉春)·김주삼(金柱三)·고갑평(高甲平) 등과 함께 한인야학교 성심야학(誠心夜學)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문맹 퇴치와 민족 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다. 성심야학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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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자는 익성(翼成), 호는 고봉(孤峰). 아버지는 김용서(金龍瑞)이다. 1930년 3월 구좌읍에서 사회주의 사상 고취 및 대중 계몽 운동을 벌이기 위한 비밀 결사 혁우동맹(革友同盟)이 결성될 때 참여하였다. 혁우동맹은 조선공산당에 입당한 신재홍(申才弘)이 주도하는 급진적인 단체였으며, 소집 책임은 김순종이 담당하였다. 1931년 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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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28년부터 하도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30년 3월 구좌읍에서 신재홍(申才弘)·문도배(文道培)·오문규(吳文奎)·강관순(康寬順)·김성오(金聲五)·김순종(金順鐘) 등과 함께 혁우동맹을 조직하였다. 혁우동맹은 사회주의 이념 아래 민족 해방을 목표로 내걸었던 비밀 결사였다. 193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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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자는 선구(善驅), 호는 양오(養吾). 김진호(金振鎬)의 4남이며, 김주호(金周鎬)에게 입양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제주시 조천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4차례 걸쳐 연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지역도 조천에서 함덕·신흥·신촌 등으로 확대되었다. 최초의 거사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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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호는 석연(石淵). 아버지는 월방(月舫) 김창호(金昌鎬)이다. 태어난 지 4일 만에 아버지를 잃었고 4세 때에 어머니마저 여의었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8년 6월 선배가 부당한 이유로 퇴학당하자 동맹 휴학을 단행하였고, 동맹을 주도한 대표 학생 25명과 함께 퇴학당하였다. 그 뒤 일본으로 건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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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여성 항일운동가. 숙부 김문주(金汶株)에게 “책 속에 세계가 있고 글 속에 개화 문명이 있다”는 가르침을 받고 40살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919년 3월 조천 지역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을 때, 갓 스무 살이 지난 친척 동생과 조카가 만세 운동을 이끄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1925년 최정숙(崔貞淑)·강평국(姜平國)·이재량(李載良)·고수선(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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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아버지는 김태호(金泰鎬), 어머니는 고유흠(高柔欽)이다. 외숙부는 제주의 대표적인 무정부주의 사상가 고순흠(高順欽)이다. 1925년 5월 1일 노동절을 기하여 김시균(金時均)·김성온(金成溫) 등과 함께 오일회(五一會)를 조직하고 노동 야학을 운영하였다. 부친이 설립한 조천의 신명의숙(新明義塾)을 졸업하고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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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호는 농산(聾山). 아버지는 김봉호(金奉鎬)이다.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제주에도 그 영향이 미쳐왔다. 제주 출신 김장환(金章煥)은 휘문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하여 쫓기게 되자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조천으로 왔다. 조천 지역 유지 숙부 김시범(金時範)에게 서울의 상황을 설명하였고 김시범은 거사를 결심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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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제주청년동맹 조천지부의 맹원으로서, 소년 운동 지도, 여성 계몽 운동 등 활발한 사회 운동을 전개하였다. 제주청년동맹 조천지부 맹원들은 신좌문고(新左文庫)의 운영과 노동 야학을 통한 계몽 활동에 주력하였다. 또한 금주 운동에도 앞장서서 밀주를 금지시켰다. 1929년 초 일제는 금주 운동이 항일 운동으로 발전할 것을 차단하기 위하여 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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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9년 11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일본인 학생들이 한국인 학생에게 모욕적인 언동을 한 것이 발단이 되어 양쪽 학생 간에 폭력 충돌이 발생하였다. 일제가 이를 불공정하게 수습하려 하자, 동맹 휴학과 집단 시위가 전국에서 발발하면서 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광주고등보통학교에 비밀 결사로 조직되어 있던 독서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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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김여석은 서당 훈장으로서, 1910년 한일병합 때 제주도 유림이 조선총독부에서 주는 기로금(耆老金)을 받은 것을 보고 노쇠한 유림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민족 의식을 담은 한문 교육을 실시해왔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김여석은 저지리 서당 훈장 박세현(朴世賢), 낙천리 서당 훈장 조무빈(趙武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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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당시 제주경찰 토벌대장. 중국 상하이 성요한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인천상업전수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에 취임하였다. 서울대학교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다가 1947년 3월 31일 강인수 후임으로 제주도 경찰 감찰청장에 임명되었다. 1947년 4월 9일 공식 취임할 당시 제주는 3·1절 기념 시위 사건 및 3·10총파업 등의 여파로 어수선한 분위기여서 치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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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호는 해강(海岡). 가명은 김제민(金濟民)이며 호적상의 이름은 김신배(金申培)이다. 아버지는 김희수(金熙穗)이다. 일찍이 한문을 익혔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시즈오카[靜岡]에서 군밤 장수를 하면서 공부하고자 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지 않자 귀국하여 민중 계몽 운동에 힘썼다. 1919년 3월 조천 만세 운동에 가담하였고, 동지들이 체포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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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제주 4·3사건 때 국방경비대 제9연대장을 역임한 군인. 일본 육군예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소위에 임관되었다. 1945년 8월 광복 직후 일본군 학병으로 귀환하였고, 1946년 1월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소위에 임관되었다. 1947년 9월 제9연대 부연대장(소령)으로 제주에 부임하였다. 1948년 2월 제9연대장(중령)으로 승진한 직후 제주 4·3사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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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7년 3월 조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10월 서울의 중동학교를 중퇴하였다. 1930년 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신문 배달을 하면서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하며 민족 의식을 키웠다. 1930년 11월 귀향하여 조국 광복을 위한 동지로 송건호(宋健浩)·김유환 등을 규합하였다. 1931년 일본에서 병으로 죽은 항일운동가 한영섭(韓永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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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아버지는 김홍지(金洪祉)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1297번지[세화남길 8-7]에서 태어났다. 1932년 3월에 사립 하도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2년 4월에 협성실업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학년 때 사립 경신학교로 전학하여 1학년을 수료하였다. 이후 경성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 고등과에 입학하여 1학년 때 퇴학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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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항일운동가인 김시학(金時學)[1881~1949]의 장남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에 일어난 조천 3·1만세운동은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휘문고등학교의 전신)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조천 출신 김장환이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귀향하면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조천에서는 이미 김시범(金時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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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1년 1월 15일 도쿄에서 함덕리 출신의 항일운동가 한영섭(韓永燮)이 사망하여 1월 19일에 시신이 고향에 도착하자 동지장(同志葬)으로 할 것을 결의하였다. 1월 22일 한영섭의 할아버지 한정권(韓程權)의 집에서 대흘리 장지까지 운구하면서 동지들과 적기가(赤旗歌)를 합창하고 ‘한영섭 만세’를 삼창하였다. 1931년 5월 6일 조천읍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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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일명 김정익(金精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김원규(金元圭)이다. 두모리 서당에서 3년 간 한글과 한자를 수학한 후 한림공립보통학교에 편입하였다. 1930년 여름 신창리 출신의 사회주의 항일운동가 좌응신(左應信)의 권유로 신창독서회에 가입하였다. 1931년 5월 5일 한림공립보통학교 재학 중 홍창주(洪昌柱)와 함께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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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1년 1월 15일 일본 도쿄에서 함덕리 출신 항일운동가 한영섭(韓永燮)이 사망하여 1월 19일 시신이 고향에 도착하자 동지장(同志葬)으로 치룰 것을 결의하였다. 1월 22일 한영섭의 할아버지 한정권(韓程權)의 집에서 대흘리 장지까지 상여를 운구하면서 동지들과 함께 적기가(赤旗歌)를 합창하고 ‘한영섭 만세’를 삼창하였다. 또한 한영섭 추모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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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군수를 역임한 관인. 1901년 2월 17일에 제주군수로 임명되어 김희주의 후임으로 부임했다. 1901년 1월에 제주목사였던 이상규(李庠珪)가 불법으로 돈을 거둔 죄로 면직되어 있던 상태여서 제주목사 서리를 겸직했다. 같은 해 3월 유배와 있던 천주교도 이범주(李範疇) 구속 사건으로 1900년 6월에 제주 담당 신부로 와 있던 프랑스 신부 구마슬(具瑪瑟, Marc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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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지사를 역임한 정치인. 1910년 의신학교를 거쳐 서울의 보성학교에 재학 중 한일합방이 되자 1911년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하였다. 구좌읍에 있는 사숙(私塾)에서 1년 동안 교사로 일하였고, 외도동에 희문의숙(熙文義塾)을 개설하여 숙장으로서 후학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며 청년 운동을 주도하였다. 1949년 11월 15일 제5대 제주도지사로 부임하여 제주 4·3사건으로 인한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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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7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서울의 보성전문학교 1학년을 수료하고 돌아와 주류 판매업에 종사하였다. 1920년 명신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1921년 제주도 최초의 청소년 항일 단체인 반역자구락부를 창립하였다.1922년 제주청년수양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명신학교의 경영 지원에 힘썼다. 1924년 3월 11일 제주도 최초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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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할아버지는 항일운동가 김희정(金羲正)이며 아버지는 전 명월만호 김항유(金恒裕)이다. 항일운동가 김평원(金平遠)·김지원(金志遠)는 모두 종형제(從兄弟)이다. 1919년 3월 21일 제1차 조천리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항일 운동은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인 김장환(金章煥)이 서울 3·1운동에 참가한 뒤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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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김형수는 제주공립농업학교 동창인 고병희(高秉禧)·조대수(趙大秀)를 비롯해 고영희(高永禧)·강기찬(康箕贊)·임상국(任祥國) 등과 함께 1927년 3월경에 무정부주의 연구에 필요한 문고(文庫)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또한 매달 1회 모여 공동으로 연구 발표하고, 동지를 규합하여 조직을 확대하기로 하였다. 1928년 4월경 비밀 결사 독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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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9년 3월 21일 제1차 조천 만세 시위 운동이 일어났다. 이 항일 운동은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인 김장환(金章煥)이 서울 3·1운동에 참가한 뒤 3월 15일 귀향하여 김시범(金時範)·김시은(金時殷) 등에게 서울의 소식을 알리면서 구체화되었다. 김시범을 주축으로 하여 14명 동지를 규합하는 것으로부터 거사가 준비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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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일본 선박의 선원으로 강제 징용되어 상하이·홍콩 등지에서 근무하다가 1940년 탈출하여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1940년 중국의 광시성 유림(柳林)과 계림(桂林) 전투에 참가하였다. 1942년 10월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비대원에 임명되었으며, 1943년 10월 2일에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전라도 대표의원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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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7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30년 3월 신재홍(申才弘)·오문규(吳文奎)·강관순(康寬順)·김성오(金聲五)·김순종(金順鐘)·김시곤(金時坤)·부대현(夫大炫) 등은 문도배의 집에서 혁우동맹을 조직하였다. 1930년 11월 초순 혁우동맹 조직이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1931년 1월 하순 해체를 논의하여 1931년 4월 혁우동맹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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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 초대 제주도지사를 지낸 정치인. 본관은 밀양. 호는 우석(友鉐). 아버지는 제주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을 지낸 박종실(朴宗實)이다. 동생은 국무총리 서리를 지낸 박충훈(朴忠勳)이다. 일제강점기 경성공립중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호남은행에 입사하여 순천지점의 차장을 거쳐 전라남도 광주 본점에서 근무하였다. 광복 후 1946년 8월 1일 미군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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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순창. 아버지는 박이민(朴离旼)이며 형은 항일운동가 박교훈(朴喬壎)이다.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일 때 3·1운동이 일어나자, 학교 앞에서 전단 60여 매를 살포하고 만세 시위를 벌여 3월 8일 하숙집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경성고등보통학교 동창생이자 제주 출신 홍형표(洪亨杓)에게 “2천만의 대표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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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6년 3월 제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목포공립상업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났다. 1929년 11월 16일 이광우(李光雨)의 집에서 학우들과 함께 목포공립상업학교 학생을 규합하여 동맹 휴학을 결행하고 항일 시위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총독부 폭압 정치 절대 반대’, ‘치안유지법 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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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어릴 때 2년 동안 한문을 배우고 1926년 8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에서 금구소학교(金甌小學校) 야간부를 졸업하였다. 화하류전기제작소(靴下留電氣製作所)에서 공원으로 일하던 중 일본 공산당 당원 김귀영(金貴榮)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에 공감하였고, 무산 아동에게 항일 의식을 교육하는 것이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할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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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반남. 자는 자순(子純), 호는 춘고(春皐) 또는 현현거사(玄玄居士). 초명은 박무량(朴無量)이다. 아버지는 공조판서를 역임한 박원양(朴元陽)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한말 개화파를 대변하는 인물로 개화 운동을 이끌었으나, 한일합방 후에는 일제의 후작 작위를 받는 등 일제강점기 동안 친일파로 활동하였다. 1872년(고종 9) 철종의 부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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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대표적 기업가. 본관은 밀양. 호는 청암(晴巖). 아버지는 박원길(朴元吉)이며 어머니는 탐라최씨이다. 부인은 진주강씨이다. 아들은 초대 제주도지사를 지낸 박경훈(朴景勳)과 국무총리 서리를 지낸 박충훈(朴忠勳)이다. 5살 되던 해 아버지를 따라 큰댁이 있는 전라북도 부안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큰댁의 형제들과 어울려 한학을 공부하며 유년 시절을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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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출신의 경제 관료. 본관은 밀양. 아버지는 제주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을 지낸 박종실(朴宗實)이다. 동생은 초대 제주도지사를 지낸 박경훈(朴景勳)이다. 박충훈은 제주도 출신 가운데 국무총리 서리와 대통령 권한 대행을 역임하여 최고위 관직에 오른 인물이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 일본 교토의 도시샤상업고등학교를 나왔다. 1948년 상공부 무역국장을 거쳐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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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수원. 호는 천야(天耶). 아버지는 백찬규(白燦奎), 부인은 안요원(安堯媛)이다. 1919년 3월 21일 제1차 조천 만세 시위 운동에서 주동자 9명이 체포된 후, 백응선은 박두규(朴斗圭)·김필원(金弼遠) 등과 더불어 3월 22일 제2차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제2차 시위에서 박두규·김필원이 체포되었다. 3월 23일 제3차 시위가 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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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녀의 항일 투쟁을 주도한 해녀. 13세부터 잠수를 하였다. 하도강습소에서 하도리 출신 김순종(金順鐘)·오문규(吳文奎)·부승림 등으로부터 한글·산수·농민 독본 등을 배우면서 항일 의식이 싹텄다. 1930년대 일제가 해녀에 대한 착취와 인권 유린을 일삼자, 이에 항거하여 부춘화(夫春花)·김옥련(金玉蓮) 등과 함께 항일 투쟁에 앞장섰다. 1932년 1월 7일 세화리 5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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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아버지는 부병익(夫秉益), 어머니는 김종윤(金鍾允)이다. 동생은 항일운동가 부장환(夫章煥)이다. 조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9월 일본으로 건너가 피혁공장 공원으로 일하면서 1931년 6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화학노조 오사카지부에 가입하였다. 1932년 7월 구로주미[黑住剛]의 권유로 일본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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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부두전(夫斗栓)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부기남(夫基楠)이며 어머니는 김태규(金太圭)이다. 부인은 한옥순(韓玉順)이다. 일본에 있는 니혼대학 부설 오사카전문학교에 재학 중 1940년 5월 김봉각(金奉珏)·강금종(姜金鍾)·김병목(金丙穆) 등과 함께 흥아연구회를 조직하였다. 흥아연구회는 1940년 5월 26일 계림동지회라고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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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호는 백도. 일명 부건(夫鍵)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한학자 부정규(夫正奎)이며 부인은 한월계(韓月桂)이다. 동생은 항일운동가 부기준(夫己準)이다. 11세 때 조기 결혼하였으나 신식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 전문부 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 니혼대학 재학 중 민족주의에 눈을 떴고 1년 후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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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자는 화종(華鍾), 호는 설파(雪波). 아버지는 부만천(夫萬千), 어머니는 김완희(金完熙)이다. 1928년 조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와 오사카 등지에서 노동을 하면서 열악한 노동 조건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조선인들을 보면서 민족주의 의식이 싹텄다. 귀국 후 장사를 하면서 제주청년동맹 함덕지부에 가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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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자는 자문(子文)이다. 아버지는 부병익(夫秉益), 어머니는 김종윤(金鍾允)이다. 조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 때 중퇴하고 1931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문 배달을 하면서 1932년 2월 시마나카[島中信雄]의 권유로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출판노조 오사카지부에 가입하여 오사카지부의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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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녀 항쟁을 주도한 해녀. 구좌읍 하도리에 있는 보통학교 야학부에서 공부하였다. 1928년 제주도 해녀조합 산하 조직인 구좌면 해녀조합 대표로 선임되어 해녀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해녀조합은 어용화되어 해녀조합을 통한 일제의 수탈이 심하였다. 1931년 해녀조합이 하도리 해녀들이 수확한 감태와 전복 값을 터무니없이 강제로 싸게 매기려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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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때 조선경비대 제9연대장을 지낸 군인. 일본군 지원병 출신으로, 1946년 2월 군사영어학교를 제1기로 수료하고 국방경비대 소위로 임관되었다. 광복 후 창군 당시 제5연대의 소대장과 중대장을 거쳐 제8연대 대대장을 역임하였다. 1948년 7월 제주에서 재편된 제9연대의 연대장(소령)이 되었다. 연대장 재임 중인 1948년 10월 17일 “제주성의 해안에서 5㎞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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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여산(礪山). 아버지는 송해옥(宋海玉), 어머니는 고명주(高明珠)이며 부인은 고복진(高福珍)이다. 1921년 제주 최초의 항일 청소년 단체인 반역자구락부를 창립하였다. 명신학교(明新學校) 교사로 후진을 양성하였고, 김성숙(金成淑)이 설립한 가파도의 신유의숙(辛酉義塾)의 교사로도 있었다. 1925년 반역자구락부 구성원 중 사회주의 좌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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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우도(牛島)의 첫 기독교 신자로 목사 이경필(李敬弼)에게 세례를 받았다. 성안교회에 부설된 여아(女兒) 교육 기관인 영흥학교의 교사로 재임하였다. 1927년 8월 조선공산당원이며 고려공산청년회 전라남도 책임자였던 김재명(金在明)의 권유로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30년 3월 구좌읍 일대에서 혁우동맹이 결성되었을 때 주도적인 역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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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1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 졸업 사정회에서 학교 당국은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에게 제적 조치를, 신창진(愼昌珍)과 양두옥(梁斗玉)에게 유급 조치를 내렸다. 김원요·양두옥·신창진 등이 학교 의식에서 천황의 칙어가 낭독되었을 때 묵념을 거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1931년 3월 7일 졸업식이 열렸을 때, 김원요는 교무실로 가서 담임 야마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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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1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 졸업 사정회에서 학교 당국은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에게는 제적 조치를, 신창진과 양두옥에게는 유급 조치를 내렸다. 김원요·양두옥·신창진 등이 평소 일본 천황의 칙어를 학교 의식 때 낭독해도 묵념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1931년 3월 7일 졸업식에서 김원요는 교무실에 들어가 담임인 야마가와[山川助夫]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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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의 농촌 계몽 운동과 신불교 운동을 주도한 승려. 전라남도 순천 태생이다. 일본에서 불교 공부를 마치고 백양사에서 수학하였다. 1934년경 백양사 제주포교사로 왔다. 1934년 11월에 외꼴절이라 불리는 함덕 포교당을 설립하여 이곳을 근거지로 농촌 계몽 운동을 펼쳤다. 1948년 4·3 사건 당시 토벌대에 의해 총살당했다. 신홍연은 불교의 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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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죽산. 호는 근해(槿海). 일명 안요검(安堯儉)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안태환(安台煥)이다. 유년기에 고향의 서당에서 한학을 익힌 후, 전라남도 광산군 하남면 장덕리로 가서 다시 부해(浮海) 안병택(安秉宅)에게 한학을 배웠다. 1914년 조천리에 근대식 서당인 신명사숙(新明私塾)이 개설되자 김순탁(金淳鐸)과 함께 사장(師丈)이 되어 후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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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8년 2월 신창리의 야광소년단에 입단하였으며 1928년 3월 한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 졸업 사정회에서 학교 당국은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를 제적하고, 신창진(愼昌珍)과 양두옥에게는 유급 조치를 내렸다. 평소 학교 행사에서 일황의 칙서가 낭독될 때 묵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193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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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아버지는 양달하(梁達河)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대림리 1461에서 태어났다. 1931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 졸업 사정회에서 학교 당국은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를 제적하고 신창진(愼昌珍)과 양두옥(梁斗玉)에게 유급 조치를 내렸다. 이들이 평소 학교 행사에서 일본 천황의 칙어가 낭독되어도 묵념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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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의 마지막 무장대원. 고향인 구좌읍 송당리에서 칠순이 넘은 아버지와 아내 및 생후 8개월 된 아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제주 4·3사건이 일어난 후 1948년 가을, 국군과 경찰 합동 토벌대가 진압 작전을 전개할 때 송당리 마을이 소각되고 그 과정에서 아내를 잃었다. 토벌대에 의해 해안 지대로 소개되었으나 식량이 없어서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가 무장대에 가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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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제주의 불교를 발전시킨 승려. 본관은 화순. 속명은 이현(彛炫), 법명은 한수(漢秀), 법호는 이화(利化). 아버지 오인규와 어머니 김계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에 태어나 주변에서 “훌륭한 불자(佛子)가 될 인물이다.”라고 했다 한다. 1914년 10월 15일에 해남 대흥사에서 안도월을 은사로, 박만하를 사미계사로 득도했다. 10년 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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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본관은 해남(海南). 아버지는 윤덕언(尹德彦)이다.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영풍리 603번지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동 193번지로 이주한 후 제주에서 활동하였다. 제주 시내 중앙이발관의 이발사로 일하였고, 1939년부터 천주교를 믿어 제주성당에 다녔다. 제주에서 천주교의 항일 운동은 신부 패트릭 도슨(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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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군수를 역임한 문신. 1905년 조선시대 마지막 제주목사 조종환(趙鍾桓)이 이임한 뒤 제주목사는 폐지되고 제주군수로 바뀌었다. 1906년(광무 10) 동래군수이던 윤원구가 초대 제주군수로 부임하였다. 윤원구가 제주군수로 부임하던 때는 일본에 의해 조선의 행정제도가 개편되고 있던 시기였다. 목(牧)·현(縣)제도의 면 행정, 즉 풍헌(風憲), 경민장(警民長) 등의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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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때 제주도 인민유격대 지휘관.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장사를 하던 큰형 이호구 밑에서 둘째형 이좌구와 함께 공부하였다. 미오키모리국민학교와 상업고등학교를 거쳐 리츠메이칸대학 경제학과 4학년 재학 중에 학병으로 일본 육군에 입대해 광복과 함께 소위로 제대하였다. 해방 후 큰형 이호구는 고향에 신촌중학교를 설립하였으며, 둘째형 이좌구는 1946년 11월 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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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9년 3월 21일 오후 3시경 이문천을 비롯한 5,6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미밋동산에 모여들었을 때 김시범(金時範)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어 김장환(金章煥)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이문천을 비롯한 군중은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후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연창하면서 시가지를 향하여 시위하였다. 3월 23일의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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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불교의 혁신 운동에 앞장섰던 승려. 초명은 이임생(李壬生), 호는 고산(古山), 법명은 세진. 어려서부터 내장사의 백학명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주창하던 내장선원(內藏禪院)과 서울의 불교 전문 강원인 대원강원(大圓講院)에서 수학하였다. 1934년까지 대교과(大敎科) 및 수의과(隨意科)를 모두 이수하였다. 일제강점기의 친일 불교를 극복하고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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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본관은 함평. 이계하(李啓夏)의 장남이다.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870번지에서 태어났고, 18살 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제주읍 삼도동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제주에서 천주교의 항일 운동은 패트릭 도슨(Patrick Dawson)[일명 손 신부], 오스틴 스위니(Austin Sweeny)[일명 서 신부], 토마스 라이언(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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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전주. 양부는 이한구(李漢九)이며 부인은 장경렬(張璟烈)이다. 조선 말기 제주군수를 역임한 김창호(金昌鎬)의 생질로, 김창호의 아들 김정순(金正舜), 김정로(金正魯)와는 외종형제(外從兄弟) 사이이며 모두 항일운동가이다. 한림공립보통학교와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호세이대학교[法政大學校]를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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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때 활동한 승려. 이일선은 선운사에서 출가한 백양사 소속의 승려이다. 불교중앙학림의 학생 시절인 1920년에는 조선불교청년회 활동을 하였고 1922년 불교유학생학우회 체육부장을 했다. 1930년대에는 농촌을 부흥시키기 위한 사회 계몽 운동에 참여하였다. 1937년에 제주에 내려와 백양사의 서귀포포교소, 제주포교소, 제주중앙포교당과 정광사를 근거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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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 의병의 의병장. 1909년(순종 3) 2월 25일 이중심을 비롯한 고사훈·김석명·노상옥·김재돌(金在乭)·양남석(梁南錫)·한영근(韓永根)·김만석(金萬石) 등이 조병생의 집에서 회합하여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의병장에 고사훈·이중심을 추대하였다. 이들은 거사 날짜를 3월 3일로 정하고 대정군부터 병력을 동원하기로 하고 제주도민들에게 격문과 통문을 돌렸다. 고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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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7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가서 법률 공부를 한 뒤 1921년 8월 보통문관 시험에 합격하였다. 1924년 3월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10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1925년 10월 서울 기독청년회관에서 조선농민사가 결성될 때 김준연(金俊淵)·최두선(崔斗善) 등과 함께 이사로 선임되었다. 제주출신유학생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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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8년 제주청년동맹 화북지부의 활동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소년 단체에 대한 지원과 지도였다. 화북소년단의 단원들은 대부분 화북보통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1929년 5월 하순 화북보통학교 교사 문재순이 학생들을 강압적으로 대하자, 임삼호를 비롯한 제주청년동맹 맹원들은 학생들과 함께 교사 배척 운동을 벌였다. 1931년 2월 12일 화북보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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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인동. 일명 장석호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장문환(張文煥)이다. 구우공립보통학교에 다니던 11살 때 협재소년회에 가입해 덕육부장을 맡았다. 1928년 봄 일본으로 건너가 나고야·교토·오사카 등지에서 노동에 종사하다가 1930년 귀향하였다. 귀향 직후 윤한진(尹漢珍)의 집에서 고창순(高昌淳)·장정호(張楨鎬)·김이규(金二奎)·김승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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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6년 구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1930년 귀국하였다. 1930년 장병윤(張炳允)·고창순(高昌淳)·장정호(張楨鎬)·김이규(金二奎)·김승옥(金昇玉)·강공흡(姜公洽) 등과 함께 윤한진의 지도 아래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1931년 5월 5일 일어난 한림공립보통학교 동맹 휴학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되어 이익우(李益雨)·최복렬(崔福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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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3년 구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7살 때 한림소년회에 들어갔고 18살 때 한림청년회에 가입하였다. 한림청년회는 제주청년동맹 한림지부로 이름을 바꾸었다. 1931년 4월경 제주청년동맹 간부이자 공산주의 항일운동가 이익우(李益雨)의 지도를 받아 김경봉(金京奉)의 주도로 결성된 독서회에서 활동하였다. 독서회는 1932년 3월 이익우 등이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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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한양. 아버지는 조휴주(趙休周)이며 부인은 이원랑(李元娘)이다. 1920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3~4월에 고병희(高秉禧) 등과 함께 무정부주의 연구 기관의 문고를 설치하여 사상 서적을 구입하여 서로 돌리며 읽었다. 1929년 5월 5일 우의돈목(友誼敦睦)·경조상문(慶弔相問·생활 향상 등을 위해 제주 지역 최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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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어려서 서당을 다녔고 19세 때 서울로 유학하여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설립한 기독교계 경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04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귀향하였고 1906년 23세 때 결혼하였다. 경신학교 재학 때 접한 기독교 신앙이 깊어 1908년(순종 2) 제주에 온 목사 이기풍(李基豊)과 신자 김재원·홍순흥·김행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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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평강(平康). 아버지는 채수용(蔡洙鎔)이다. 채수용은 1926년 제주공립농업학교 동맹 휴학 때 장용견(張容堅)·홍순녕(洪淳寧)과 함께 수습 실행위원으로 뽑혀 문제를 해결하였다.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 서울 안국동에 있는 박태병 집에서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김종현(金宗鉉), 전라남도 함평 출신의 최강윤(崔康潤) 등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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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탐진(耽津). 아버지는 초대 제주지방법원 법원장을 지낸 최원순(崔元淳)이다. 유치원에 다닐 때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1909년(순종 3) 4월 신성여학교에 입학하여 1914년 3월 강평국(姜平國) 등과 함께 제1회로 졸업하였다. 1915년 서울의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18년 3월 졸업하였으며, 1919년 경성관립여자고등보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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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하태숙(河泰淑)이다.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수동 114번지에서 태어났고, 1932년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동 108-1번지로 이사하였다. 1930년 천주교 신자가 되었으며 제주중앙성당의 전도사장(傳道師長)으로 신부 패트릭 도슨(Patrick Dawson)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제주도 축항사무소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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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읍장을 지낸 관리. 1894년(고종 31) 제주관찰부의 주사 및 제주지방재판소의 판임관으로 관리 생활을 시작하였다. 1905년(고종 42)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그만두었다. 1900년(고종 37)을 전후한 시기에 김윤식(金允植) 등의 유배인과 어울리면서 개화사상에 눈을 떴고 시 동인 모임인 귤회(橘會)의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김윤식은 홍종시에 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