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흥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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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영주 지역의 역사. 고려시대에는 여러 차례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고을 명칭의 변경과 승격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에 영주 지역에는 강주(剛州)·기주(基州)·흥주(興州)·순안현(順安縣)·영주(榮州)·흥녕현(興寧縣)·순흥부(順興府) 등 고을이 두어졌다. 문화적으로도 영주 지역은 고려시대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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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방(金埅)[1706~1778]은 문과 급제 후 명릉별검, 예조정랑, 자인현감 등을 지낸 문신이다. 김방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거경(巨卿), 호는 쌍암(雙巖)이다. 아버지는 김홍렬(金弘烈), 어머니는 정언을 지낸 김창석(金昌錫)[1652~1720]의 딸 의성김씨(義城金氏)이다. 할아버지는 생원 김가주(金可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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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계승해나가는 선비정신. 영주시는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최초로 도입한 안향(安珦)과 성리학의 나라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鄭道傳)의 고향이자, 관학의 부진으로 조선의 교육이 위태롭던 시기 주세붕(周世鵬)이 최초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하여 조선의 수많은 인재와 지도자를 배출한 선비 교육의 요람으로 일컬어져 왔다. 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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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마을의 수호신을 모셔두는 제당. 영주 지역에서는 마을에서 동제를 지내는 제당으로 수목과 비슷한 정도로 성황당[당집]을 이용한다. 성황당 내에는 대개 종이나 나무에 ‘성황신위’ 또는 ‘성황지신’이라고 쓰여 있는 신위가 많으며, 산신 또는 여자, 남자가 그려져 있는 화상이 있는 경우도 보인다. 특히 영주 북부 지역은 역사적으로 단종의 유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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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오고 있는 성씨. 한국의 성씨는 중국의 영향으로 받아 나타났으나, 점차 한국 고유의 제도로서 변화해왔다. 한국의 성씨는 성과 본관은 가문, 이름은 가문의 항렬과 구별 가능한 자(字)로 구성된 특이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고대 국가 시기에 왕족과 일부 귀족에게만 나타났으나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하여 성씨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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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미를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주시의 세거 성씨. 순흥안씨(順興安氏)의 시조는 고려시대 흥위위(興威衛) 보승별장(保勝別將)을 역임한 안자미(安子美)이다. 순흥안씨는 영주시 순흥면을 관향으로 하여 영주 지역에 오랫동안 세거하고 있다. 순흥안씨 시조 안자미는 고려 신종 때 군사 조직인 흥위위의 정7품 보승별장을 지냈다. 이후 순흥에 정착하여 관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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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전통가옥. 순흥안씨 서파공파종택(順興安氏西坡公派宗宅)은 ‘대룡산 순흥안씨종택’이라고도 한다. 안리(安理)[1393~?]가 건립하였다. 안리의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서파(西坡)이며, 의령현감과 예천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아버지는 목사 안종약(安從約)[1355~1424]이다. 안정면행정복지센터에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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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문신. 안상(安瑺)[?~?]은 16세기 문신이자 음악행정가였다. 영천군수(榮川郡守) 재임 중에는 이황(李滉)[1501~1570]의 건의로 이산서원(伊山書院)을 건립하였다. 안상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이며, 해주목사를 역임한 안종약(安從約)[1355~1424]의 5세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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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여륵1리에 있는 순흥안씨 집성촌. 순흥안씨(順興安氏)는 영주시 순흥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순흥안씨의 시조(始祖) 안자미(安子美)는 고려 신종 때 흥위위보승별장을 역임하고 신호위상호군에 추봉되었다. 조선조에 들어와 생활 관련 근거지가 파주 금촌으로 옮겨졌는데, 여러 사화를 겪으면서 전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으며, 관향지 순흥에 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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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영주 지역의 역사. 소백산 아래 교통의 요충지였던 영주는 고대부터 삼국의 쟁탈지가 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부석사(浮石寺)가 창건되어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安珦)이 배출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설립되는 등 유교문화를 꽃피워 나갔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기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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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안향의 향려비. 영주 안향 향려비(榮州安珦鄕閭碑)는 고려 후기 문신 안향(安珦)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안응창(安應昌)이 1656년(효종 7)에 건립한 것이다. 영주 안향 향려비는 2013년 8월 19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11호로 지정되었다. 안향은 고려 후기 문신으로 흥주(興州)[지금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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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오여벌(吳汝橃)[1579~1635]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문과 급제 후 홍문관수찬·창원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오여벌의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경허(景虛), 호는 남악(南岳)·경암(敬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의현감 오언의(吳彦毅)[1494~1566], 할아버지는 오수정(吳守貞)[1510~1574], 할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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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로 처향을 따라 이거해 온 삼판서인 정운경·황유정·김담의 고택 이야기.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에는 아주 특별한 종택이 있다. 바로 예안[선성] 김씨 종택이다. 삼판서 고택은 원래 영주시 영주동에 있었으나 1961년 영주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2008년 10월 구학공원 내 현재 위치에 복원하였다. ‘삼판서’라는 이름은 이 고택에서 세 명에 달하는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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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용산2리에 있는 순흥안씨 집성촌. 영주시 안정면 용산2리 대룡산마을은 순흥안씨(順興安氏)가 세거하고 있는 동족마을이다. 입향조는 안리(安理)로 500여 년 전 계유정난과 단종 폐위에 반발해 낙향한 뒤 관향인 순흥으로 낙향해 마을을 개척하였다. 대룡산(大龍山)은 대촌(大村)이라고도 하는데, 사계마을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입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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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이유(李愉)[1365~1423]는 형조참판·함길도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동북면 지역에 있는 백성들을 교화하고, 여진족들을 회유하는데 힘썼다. 이유의 본관은 덕산(德山), 자는 명보(明普), 호는 은재(隱齋)이다. 아버지는 판도판서를 지낸 이영(李英), 어머니는 정부인 여흥민씨(驪興閔氏), 할아버지는 집현전대제학을 지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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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863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영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영주는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영천군(榮川郡)·풍기군(豊基郡) 3개 고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록 작은 고을이었지만 영주는 조선시대 동안 우리나라 선비 문화의 중심지였다.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지금의 영주 소수서원]이 설립되었으며, 황준량(黃俊良)·박승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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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이어져 살아오고 있는 성씨. 토성 중 영주 지역에서 높은 벼슬과 학식을 겸비하여 명망이 높았던 대표적인 세거 성씨는 봉화정씨(奉化鄭氏), 순흥안씨(順興安氏), 풍기진씨(豊基秦氏)이다. 봉화정씨는 고려 때 호부령을 지낸 정공미(鄭公美)를 시조로 하며, 아들 정영찬(鄭英粲)이 비서랑을 지냈고 손자 정균(鄭均)이 검교군기감정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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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유정(黃有定)[1343~?]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사환하였던 문신으로 초계군수·예조판서 등을 지냈다. 황유정의 초명은 지정(知定), 호는 미균(米囷),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황지정(黃之挺), 할아버지는 영해부사 황원로(黃原老)[1270~?]로 영천(榮川) 초곡[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조암동]에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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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인채(黃鱗采)[1716~1799]는 문과 급제 후 종부시주부·제주판관을 지냈으며, 소수서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황인채의 자는 국량(國亮)·계칙(季則), 호는 양몽재(養蒙齋),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증 좌승지 황이무(黃以茂), 증조할아버지는 증 대사헌 황정(黃渟), 할아버지는 수직으로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된 황도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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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현(黃鉉)[1369~1434]은 조선 태종 대에 출사하여 거듭 과거에 급제한 후 경승부소윤·성균관대사성 등을 지냈다. 황현의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증조할아버지 영해부사 황원로(黃原老)[1270~?]가 영천(榮川)으로 이주한 이래 이 가문은 영천과 봉화 등지의 사족들과 혼인을 이어갔다. 황원로는 단양우씨(丹陽禹氏)와 혼인하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