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 「영천군·순흥부·풍기군지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280
한자 地乘榮川郡順興府豊基郡地圖
영어공식명칭 『Jiseung(Atlas of Korea)』 「Yeongcheon-gun·Sunheung-bu·Punggi-gun Map」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감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776년연표보기 이후 - 『지승』 「영천군·순흥부·풍기군지도」 제작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지도

[정의]

조선 후기에 제작된 『지승』에 수록된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 지도.

[개설]

『지승(地乘)』은 전국의 군사 요충지와 군현을 총 5책으로 나누어 제작한 회화식 지도책이다. 지도의 전반적인 형태와 내용은 『안동도회 좌통지도』, 『해동지도』, 『여지도』 등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에 동일 필사본 계통으로 분류된다. 지도책 중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의 지도는 3책 경상도 편에 수록되어 있다.

[제작 발급 경위]

18세기 중·후반 조선 정부는 지방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여러 종의 관찬 지도를 제작하였는데, 『지승』도 같은 목적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군현 명칭 가운데 1776년(정조 즉위년) 개칭된 충청도 이성(尼城)과 평안도 초산(楚山)이 확인되는 반면, 1789년(정조 13)에 이전한 수원의 읍치와 1795년(정조 19) 개칭되는 경기도 시흥(始興)은 나타나지 않아, 1770~1780년대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지승』은 총 6책으로 구성된 채색지도로 크기는 가로 19㎝, 세로 27㎝이다.

[구성/내용]

조선시대 영주는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으로 구성되었기에, 『지승』에서는 이들 고을을 각각의 지도로 그렸다.

「영천군지도」의 경우 오른쪽 위에 제목이 명기되어 있고, 군을 아우르고 있는 산맥은 연접한 산도(山圖)의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읍치는 고을의 진산인 철탄산이 감싸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객사를 비롯하여 우민루(宇民樓)·쌍청당(雙淸堂)의 건물들이 회화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읍치 북쪽으로는 성내산봉대(城內山烽臺)를 붉은색으로 그려 넣었다. 소속 면은 적색 테두리 안에 표시해서 배치하였고, 도로는 적색 실선을 이용하였지만, 역원은 생략되어 있다. 또 하천은 청색 바탕으로 표현하였으며, 이 밖에도 명승지인 남암(南岩)을 비롯하여 사찰·서원·향교·창고 등도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다.

「순흥부지도」의 제목 위치와 산맥 표현은 「영천군지도」와 같다. 지도 상단에는 태백산과 소백산을 확인할 수 있으며, 죽령을 비롯한 여러 고개도 함께 그려져 있다. 도로는 적색 실선을 이용하였고, 대로(大路)라고 명기하였다. 읍치의 아사·객사·향교와 백운동서원[현 소수서원], 부석사 등은 회화식으로 표현하였다. 소속 면은 적색 테두리로 된 장방형 안에 표기하였다.

「풍기군지도」의 제목 위치와 산맥의 표현도 위 두 지도와 같다. 고을 북쪽에 소백산죽령 등 백두대간의 큰 줄기를 그려 놓고, 읍치와 주요 건물들은 서쪽을 향하도록 표현한 것이 주목된다. 위의 두 지도와 달리 객사가 다른 건물보다 크게 그려져 있으며, 그 주변으로 관아·읍창·향교 등이 있다. 읍치 앞을 흐르는 남원천은 청색 바탕의 실선으로 그려졌다. 도로는 적색 실선으로 표현하였지만, 역원은 생략되어 있다. 죽령의 봉수 대신 남쪽 망전산(望前山)의 봉수만 표현된 것도 특기할 만하다. 그 외 욱양서원과 우곡서원 등도 묘사하였다.

[의의와 평가]

『지승』 「영천군·순흥부·풍기군지도」는 18세기 후반 영주 지역의 사회·경제·군사상의 변화상을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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