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1292
한자 南川集
영어공식명칭 Namcheonjip(Literary Work)
이칭/별칭 남천선생문집,남천문집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864년연표보기 - 『남천집』 간행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5년 - 『남천집』 『한국문집총간』속5에 영인 수록
간행처 구호서원 - 경상북도 영주시 영주동 지도보기
성격 시문집
저자 권두문
간행자 권동철
권책 4권 2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반곽: 세로 19.7㎝, 가로 16.3㎝|광곽: 세로 29.7㎝, 가로 20.2㎝
어미 상하이엽화문어미
권수제 남천선생문집
판심제 남천선생문집

[정의]

1864년 간행된 조선 전기 영주 출신 문신인 권두문의 시문집.

[개설]

『남천집(南川集)』권두문(權斗文)[1543~1617]의 시문집으로 1864년(고종 1)에 간행되었다.

[저자]

권두문의 자는 경앙(景仰), 호는 남천(南川),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572년(선조 5)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평창군수·봉상시주부·사섬시정·통례원정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적들에게 포로로 잡힌 적이 있었는데, 탈출 후 적의 정세를 관군에 보고하기도 하였다. 영주 구호서원(鷗湖書院)에 제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당초 권두문의 저술로 『남천유고(南川遺稿)』와 『호구일록』 등이 가장되어 있었다. 『남천유고』는 4권 2책의 유고로 권미에는 권두남(權斗南)의 묘갈명을 수록해 놓았다. 이후 8세손 권석온(權錫溫)이 1843년(헌종 9)에 유고 등을 수판(繡板)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864년 10월에 이르러서야 10세손 권동철(權東轍)이 영주 구호서원에서 『남천집』을 간행하게 된다.

[형태/서지]

『남천집』은 4권 2책의 목판본으로 표제는 ‘남천집’이며, 권수제와 판심제는 ‘남천선생문집’이다. 규격은 광곽이 세로 29.7㎝, 가로 20.2㎝이며, 반곽은 세로 19.7㎝, 가로 16.3㎝이다. 행자수는 10행 20자로 유계(有界)에 사주쌍변이다. 어미는 상하이엽화문어미(上下二葉花紋魚尾)이다.

[구성/내용]

『남천집』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1833년(순조 33) 류심춘(柳尋春)이 지은 서문이 있고, 권미에 1864년 권동철이 지은 지(識)를 수록해 놓았다. 권1은 시와 만사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김개국(金蓋國)·김대현(金大賢)·송응순(宋應洵)·박려(朴欐)·배삼익(裵三益)·김륵(金玏)·박승임(朴承任)·배응경(裵應褧) 등과 교유하면서 지은 것이고, 만사는 김호신(金虎臣)·송복원(宋福源)·강희철(康希哲) 등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것이다.

권2는 「호구일록」으로 1592년 8월 7일부터 9월 13일까지 일기이다. 「호구일록」에는 임진왜란 당시 평창군수였던 권두문이 일본군에게 사로잡혀 8월 11일부터 20일간 포로 생활을 하다가, 9월 2일 탈출하여 영천(榮川) 본가로 돌아오는 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권3은 소 1편, 전(箋) 1편, 서(書) 3편, 제문 6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예해주행재소진정소(詣海州行在所陳情疏)」는 포로로 있으면서 목격했던 일본군의 동향을 보고하고, 피폐해진 영남 백성의 안집 방도를 개진하였다. 「기제경성자점서(寄弟景星子點書)」는 포로로 잡혀 있을 때 동생과 장남에게 보낸 편지로 당시 권두문의 절박한 심정이 담겨 있다. 「상호소사관찰사조방장서(上號召使觀察使助防將書)」는 포로로 잡혀 있을 때 일본군의 군정을 적어 보낸 것이다.

권4는 부록으로 문인 김응조(金應祖)가 지은 행장, 이민구(李敏求)가 지은 묘갈명, 김응조가 지은 「호구일록발(虎口日錄跋)」, 홍여하(洪汝河)가 지은 「서호구일록후(書虎口日錄後)」, 구호서원 봉안문 및 상향축문, 만사 4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남천집』에 수록되어 있는 「호구일록」과 각종 편지 및 상소문은 임진왜란 당시 전황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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